예치금은 받는데 규제는 안 받는…‘시한폭탄’ 그림자금융
부실 땐 은행권 등으로 손실 확산…소비자 보호 장치 등 ‘전무’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가 발생한 전자상거래 업체 티몬·위메프는 대표적인 그림자금융이다. 사실상 금융기관처럼 돈을 차입하면서 규제는 받지 않는 ‘그림자금융’은 부실이 발생하면 시한폭탄이 돼 전 업권으로 위험을 전이시킨다. 국내 그림자금융은 e커머스뿐만 아니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융상품, 빅테크 등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 발달로 그림자금융 형태가 날로 다양해지는 만큼 규제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티몬·위메프 등 e커머스는 전자상거래 업체인 동시에 금융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판매대금 정산을 최대 70일가량 미루며 자금을 유용한 대목은 비인가 금융투자사를 방불케 한다. 그 돈을 은행에 맡겨도 수십억원에 달하는 이자수익을 거둘 수 있는데, 은행과 달리 영업행위 규제를 받지 않아 그림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31일 “판매수수료도 받겠지만, 실제 비즈니스 모델은 이자장사로 보인다”며 “에스크로(결제대금 예치) 시스템이 진작 도입되지 않은 것도 이런 돈벌이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업계 로비 때문이 아니었겠나”라고 말했다.
그림자금융은 위기 상황에서 전 업권으로 부실을 확산시킨다. 은행권이 티몬·위메프 입점업체를 상대로 내준 839억원 규모의 선정산 대출 관련 피해가 대표적인 예다. 선정산 대출은 입점업체들이 아직 정산받지 않은 결제대금을 근거로 은행에서 대출을 내주는 사실상의 담보대출이다. 미정산된 담보가 신용을 창출했는데, 대금이 중간에서 사라지면서 업체들은 판매대금 손실에 대출원금 책임까지 짊어지게 됐다. 업체들이 개인회생이나 파산을 하면 은행으로 손실이 전가될 수 있다.
문제는 국내 그림자금융이 e커머스 업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티몬·위메프에서 할인판매됐다가 최근 결제가 막혀 휴지조각이 된 해피머니와 같은 현금성 상품권 발행 회사도 자본금이나 발행한도 등을 규정한 법적 규제가 전무하다. 지급보증보험 가입도 하지 않은 채, 자본잠식 회사가 상품권 발행을 할 수 있는 구조다. 카카오·네이버·비바리퍼블리카(토스) 등 국내 빅테크도 내부통제 준수 의무나 자본건전성 강화 규제, 공시 의무 등에서 모두 제외되어 있다. 신규 고객 확보를 목표로 두고 무리한 영업을 이어가다 부실화할 위험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부동산 그림자금융은 그 증가 속도를 규제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제금융안정위원회(FSB)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비은행 금융권의 자산 규모는 10년 전에 비해 3배 늘어난 1조950억달러(약 1508조원)에 달했다. 이 중 국내 비은행권이 보유한 부동산 금융은 926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위기 시 금융회사나 건설회사의 손실, 보유 부동산의 투매로 이어져 시장 전반을 마비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현재 금융위원회 미래대응금융 태스크포스(TF)는 금융권 망분리, 금융회사 자회사 소유한도 등 다양한 형태의 규제 완화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 완화가 시작되면 그림자금융의 영역은 더 확대될 여지가 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현재 e커머스 업체에 대해선 인허가 관련 건전성 규제나 공시 등 영업행위 규제, 소비자 보호 장치가 모두 불충분하다”며 “논의되는 여러 규제 완화책과 더불어 공백이 있는 부분의 규제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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