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한민족 디아스포라와 국내 외국인 노동자

홍순권 동아대 명예교수 2024. 7. 3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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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 주민 급격히 증가…다문화사회 전환 코앞
격변의 전환기적 현상, 포용적 정책 준비해야
홍순권 동아대 명예교수

약 한 달 전쯤의 일이다. 경기도 화성 리튬전지 제조공장 화재 사고로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 화재 사고를 접하면서 사망자 23명 가운데 20명이 중국 국적 등 외국인 노동자라는 소식에 새삼스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 사고 가운데 이렇게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희생된 것은 전례 없는 일로 알고 있다. 이번 화재 사고는 우리 사회 산업 현장의 안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 곁의 아주 가까운 이웃임을 일깨워 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제 국내 거주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소식은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지만 그리 드문 소식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취업을 위해서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와 함께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도 해마다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법무부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23년 말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은 약 251만 명으로 우리나라 총인구의 약 4.9%에 달한다고 한다. 국제적으로 한 나라의 총인구 중 외국인 거주 비율이 5%를 넘으면 다문화사회로 인정한다고 하니 이제 우리 사회는 다문화사회로의 전환을 코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위 통계 작성 이후 늘어난 외국인 주민 수까지 고려하면 우리 사회는 이미 다문화사회로 전환했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외국인 주민의 증가 현상은 부산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2022년 말 부산시 외국인 주민은 7만5687명으로 부산시 총인구의 약 2%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 외국인 주민 수에일시적으로 부산에서 체류하는 노동자들은 제외됐다. 어쨌든 부산 거주 외국인 주민의 인구 비중은 10년 전에 비해 1.5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잠시 주춤했던 외국인 주민이 2021년 이후 다시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금세기 들어서 노동자를 비롯한 외국인의 국내 유입 현상은 지난 세기 이 땅에서 일어났던 국내 인구의 해외 유출과 매우 대조적이다. 일제의 침략으로 시작된 20세기는 그야말로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시대로 기록할 만한 시기였다. 일제의 강점으로 나라와 삶의 터전을 잃은 수많은 사람이 만주와 연해주로, 미주로, 그리고 일본으로 유랑했다. 특히 조선인 노동자들이 임금 수준이 높은 일본으로 일자리를 찾아 끊임없이 바다를 건넜는데, 당시에는 이를 두고 ‘내지도항’ 또는 ‘일본도항’이라 일컬었다. 초기에 조선인의 값싼 노동력을 환영하던 일제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과잉 유입으로 본국 내 실업 문제가 발생하자 유입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꿨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으로 먹고 살길이 막힌 사람들은 그래도 조선보다 사정이 나은 일본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일제의 도항 저지로 부관연락선을 타지 못한 노동자들과 밀항했다가 발각되거나 불법 도항을 이유로 일본으로부터 강제 송환된 노동자들이 부산에 체류하면서 이로 인한 실업자의 증가가 부산의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자 일제의 민족 차별 정책을 규탄하면서 조선인의 자유도항을 요구하는 조선인들의 시민대회가 부산에서 열렸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4년 5월에 일어난 일이다. 이 부산시민대회는 부산청년회와 유지들이 합세해 5월 17일 당시 ‘부산청년회관’에서 개최됐다. 이 대회가 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독립운동가인 백산 안희제 선생이었다.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조선노농총동맹과 조선청년총동맹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호응했고, 식민지 당국은 일부 요구를 받아들여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일본으로의 도항 제한을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물론 이후 조선인 노동자들의 일본 도항이 다시 급증하자 일제는 결국 도항저지 정책으로 환원했지만 말이다.

일제강점기에 전개된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는 해방 이후에도 이민과 해외 인력 파견 형태로 지속됐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21세기 들어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한류와 함께 발생하고 있는 다문화사회 현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전혀 새로운 사회적 격변을 나타내는 전환기적 역사 현상으로 인식된다.


얼마 전 국회에 제출된 고용노동부 통계 자료에 의하면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명 피해 사고는 해마다 늘고 있는데 주로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즉 2024년 1월부터 5월까지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승인 건수 3910건 가운데 66.9%가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다문화사회로의 대전환을 맞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본 사회의 자이니치에 대한 차별과 혐한 문제의 근원을 돌이켜보며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포용적 다문화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제대로 된 준비를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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