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모두 의대로! 그럼 소는 누가 키워?

김대성 전 부산시교육청 북부교육지원청 교육장 2024. 7. 3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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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 전 부산시교육청 북부교육지원청 교육장

10년도 넘은 오래전, 한 TV 개그 프로그램에 ‘두분 토론’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남녀 두 토론자가 나오는데, 토론이 진행될수록 내용이 원래 의제에서 벗어나면서 결국은 말꼬리 잡기에 인신공격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뉴스 등의 일상에서 목격하거나 겪게 되는 잘못된 토론 자세를 희화화한 것으로, 시청자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 코너의 백미는 남자 토론자 역의 개그맨이 내지른 “그럼 소는 누가 키워?”라는 대사였다. 여기서 ‘소를 키우는 이’는 어떤 분야 실무자 내지 전문가에 대한 메타포가 되며, 라나 포루하가 저술한 ‘Makers and Takers’라는 책에서 언급한, 실질적으로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만드는 자(makers)’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의 대학 입학은 이러한 소 키우는 인재, 메이커스가 되기 위해 선택한 진학이 되는 것이다.

모 입시학원에서 분석한 2024학년도 대입 현황이 최근 보도되었다. 이에 의하면 지난해 자연계 수시모집에서 내신 합격점수가 1.06등급 이내인 학생들은 모두 의약학 계열로 진학했고, 공과대학 등 자연계 학과에 진학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또한 수능 점수를 반영하는 정시모집에서도 국어 수학 탐구 백분위 점수가 상위 1.38% 이내 전원이 의약학 계열로 진로를 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성적을 가진 학생들이 의약학 계열로 진로를 정하는 경향은 미국 일본 프랑스 핀란드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의약학 계열이 고수준의 학문적 성취를 요구하며, 안정적인 직업 전망과 사회적 지위를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수한 인재가 의약학으로 진출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러나 특정 분야에만 인재가 집중되면 다른 분야의 인재 부족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기술 예술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과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불균형으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학생들이 자기 적성과 흥미를 무시하고 성적만으로 의약학 계열로 진학하는 경우, 장기적으로 개인의 행복과 직업 만족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이 자신에게 적합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교육과정 속에서 학생이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고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동시에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흥미를 고려한 맞춤형 진로상담을 강화해 자신의 성향에 맞는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의약학 계열 외에 다양한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계 및 사회 각층과 협력해 다양한 직업의 중요성과 가치를 강조하는 교육활동(연수)과 캠페인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다른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 관한 관심과 지지를 강조하기 때문에 성적 우수자가 반드시 의약학 계열로만 집중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필자는 2011년 당시 ‘부산대학진학지원센터’를 ‘부산진로진학지원센터’로 확장하여 설립했는데, 이는 공교육의 틀에서 진로교육과 진학지도에 따른 정책을 전담하는 조직으로서 전국에서 최초이기도 했다. 센터의 설립 취지는 학생이 대학이 아닌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도록 지원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맹목적인 진학지도가 아닌 진로에 바탕을 둔 진학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노력했다. 여기에는 처음으로 양성되어 일선 학교에서 활동한 ‘진로진학상담’ 교사들의 헌신도 매우 컸다. 이때 활동한 교사들은 교과가 아닌 진로 문제로 학생들과 마주하면서 점수로 매겨진 학생이 아니라 성장하는 인격체로서 학생을 대하게 되었다는 소회를 발표하기도 했다.


내년도 대입에서 의대 정원이 1500명가량 늘어난다고 한다. 의대 모집 인원이 늘어난 만큼 상위권의 의대 쏠림이 발생하면 공대를 비롯한 자연계 일반학과 합격선이 크게 하락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분야에서의 인재 양성은 더욱 어려워질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다. 입시 기관에서도 의대 증원은 내년 입시에서 의대 쏠림을 심화시킬 것으로 진단하고 있는바, 그렇다면 다른 ‘메이커스’가 필요한 곳에서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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