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늘리고 유전상담 서비스… 정부 적극 관심을 [고통의 굴레, 희귀질환⑪]
조기 치료 애로·장기적 진단방랑 유발...UDP 정부 지원 중단·서울대병원 일임
신생아 선별검사 일부만 무료 지원하고...유전상담 서비스도 없어 오진단 위험↑
세계 다른 국가들에 비해 희귀질환이란 개념 자체가 늦게 도입된 우리나라는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 기회 보장이라는 복지 측면에서 한참을 뒤처져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이미 1983년부터 희귀의약법 및 희귀질환법을 제정해 희귀질환을 관리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1999년 유럽연합(EU) 차원에서 희귀질환과 희귀의약품 규제 및 지원을 했고, 일본은 1972년에 난병대책요강을 중심으로 지원 정책을 추진해 1993년 약사법을 근거로 희귀질환 지원을 제도화했다.
반면 국내 희귀질환 지원 사업은 한참 뒤에야 도입됐다. 지난 2006년 희귀난치질환에 대한 정보구축사업을 시작으로 부분적인 지원을 하기 시작, 2015년 희귀질환관리법이 제정된 뒤에야 국가 차원의 법적 지원 근거가 마련됐다. 하지만 실질적 지원 방안에 대한 무관심 속에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제도와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 중단 위기 맞은 ‘희귀질환 미진단 프로그램’
희귀질환은 특성상 유전적 원인에 의한 발병이 많으며, 개별질환의 발생빈도가 높지 않아 관련 분야의 경험 있는 임상전문의가 부족하다. 이러한 현실은 진단을 받지 못한 상태로 여러 의료 기관을 옮겨 다니며 오랜 기간 중복된 검사를 받아야 하는 불편으로 이어진다.
반면 미국은 장기적인 진단 노력에도 진단을 받지 못한 희귀질환자의 막대한 사회·경제·의료비용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8년 희귀질환 미진단 프로그램(이하 UDP)을 도입했다.
UDP는 다양한 분야의 임상 전문가가 희귀질환자를 통합적으로 평가하고 관련된 생화학적 검사, 대사 검사, 유전체 정보, 기능연구 등 다각도의 정보를 통합해 진단에 접근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환자의 진단 확실성을 높여 치료 가능성 및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희귀질환의 유전적, 병태생리적 발병기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축적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제도 도입 이후 2015년까지 8년간의 UDP 경험을 쌓았고, 이를 기반으로 희귀질환의 유전체 연구가 가지는 의학 연구에서의 가치를 극대화하고자 2015년부터 6년간 매년 약 300억원을 지원하는 등 지금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8년 미진단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현재는 연구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를 맞았다. 정부가 종전 권역별 거점센터 등을 통해 진행해 오던 K-UDP를 지난 2022년, 서울대병원에 일임하면서 예산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정부가 희귀질환 진단을 도와줄 배경을 없앤 것”이라며 “의료서비스 체계로 편입되기 위해서 질환을 정확히 진단하는 게 필수적인 만큼 UDP를 운영하기 위한 지원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 일부만 지원되는 ‘신생아 선별검사’…유전 상담도 한계
희귀질환의 80% 이상은 유전질환이다. 이 때문에 가족 내 재발 또는 대물림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과 스트레스로 가족이 해체되는 위기에 직면하기도 한다.
해외에서는 치료제가 있는 희귀질환에 한해 신생아 무료 선별검사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희귀질환 중 약 5% 정도만 치료제가 개발돼 있는 상황에서 치료제가 있는 경우 만이라도 조기에 발견해 반드시 고쳐내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신생아 선별검사를 정부 지원으로 받을 수 있는 질환이 단 50여종에 그친다. 한국은 지난 2018년부터 생후 28일 이하의 신생아를 대상으로 50여개의 선천성 대사 이상 질환 검사를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검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 비급여로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반면 미국은 모든 주에서 치료제가 있는 희귀질환에 대한 신생아 선별검사가 의무화돼 있다.
이 외에도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 시 효과가 있는 대표적인 희귀질환 척수성근위축증(SMA)의 경우 미국은 물론 캐나다, 호주, 대만 등 선진국에서 신생아 선별검사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희귀질환척수성근위축증은 신생아 선별검사 대상이 아니다. 신경근육계희귀질환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 치료를 받으면 성장 과정에서 질환에 따른 문제를 겪지 않아도 되는 만큼 신생아 선별검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더욱이 희귀질환의 조기 진단을 위해 유전자 검사를 하더라도 해석의 어려움으로 인해 오진단 되거나 진단이 미뤄지는 경우도 많다.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유전상담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 탓이다.
미국과 유럽은 1970년대 초부터 유전상담 석사과정 프로그램을 통해 인력을 배출, 이들이 유전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해 유전상담 서비스의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홍콩 및 싱가포르 등에서 유전상담사가 임상유전학 전문의와 한 팀을 이뤄 유전상담 서비스를 지원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국가 차원의 유전상담사는 없는 상태다.
■ 전문가 제언 “국립중앙희귀질환센터 설립 절실”
서울대병원 희귀질환센터 소속 권용진 교수는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 확대 및 정비로 희귀질환자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현재 희귀질환관리위원회 소속 전문가들은 자기 분야가 아닌 경우 희귀질환인지 여부에 대해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진단 방랑을 겪는 희귀질환자 지원을 위해서 미진단 상태에 있는 환자들을 상세 불명 희귀질환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권 교수는 ‘국립중앙희귀질환센터’ 설립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그는 “환자들의 동의를 전제로 미진단상태의 환자들을 한 곳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진료하고 판단하는 것이 환자들에게 유리하다”며 “국립 중앙희귀질환센터가 설립되면 미진단 환자들의 임상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축적돼 희귀질환 진단까지의 기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이어 “원인을 알 수 없는 환자들의 진단 지원을 위해 미국 등 주요국들은 미진단 질환 진단지원 프로그램(UDP)을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중단된 상태”라며 “진단지원 프로그램의 핵심은 ‘임상 연구’이기 때문에 다양한 검사와 세계 학계의 최신 연구 등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희귀질환을 더 빠르게 진단할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밖에도 권 교수는 극희귀질환 산정특례 지정 의사 수를 제한하거나 치료제가 고가인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그는 “병원에 따라 희귀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전문가의 수와 역량이 다른데 동일한 기준으로 규제하는 것은 환자들에게 중복진료를 받고 시간 낭비를 하게 만드는 일”이라며 “병원별로 임상유전체의학의 역량과 희귀질환을 진료하는 전문의 수를 반영해 지정의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김경희 기자 gaeng2da@kyeonggi.com
오민주 기자 democracy555@kyeonggi.com
이진 기자 twogeni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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