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약값에 치료 포기… 갈 길 먼 지원 ‘환자 발목’ [고통의 굴레, 희귀질환⑩]

김경희 기자 2024. 7. 3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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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안되는 ‘고가의 치료제’ 부담에... 희귀질환자 3명 중 1명은 복용 못해
치료비 지원되는 극희귀질환 산정특례, 도내 5개 병원뿐… 환자 ‘무한 대기’
후천성이라… 희귀질환 조건 안맞아 인정 못받는 미진단 희귀질환자도 고통

정부의 제2차 희귀질환관리 종합계획(2022~2026년)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지만, 희귀질환자들에 대한 지원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상당수 희귀질환자들이 고가의 치료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가 하면 산정특례 등록을 위해 수개월을 기다려야 하지만,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아직 희귀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한 미진단 희귀질환자들은 수십년째 고통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실정이다.

■ ‘비싼 치료제’ 의료비 부담…희귀질환자에겐 ‘그림의 떡’

그래픽. 유동수 화백

희귀질환자들은 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거나 급여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치료제들의 비용 부담에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한 조사에 따르면 희귀질환자의 30.2%는 치료제가 있음에도 복용 또는 투약을 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들은 치료가 필요하지만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급여 적용이 되지 않아서’를 꼽았다. 결국 희귀질환자 3명 중 1명은 고가의 치료제를 감당할 수 없어 치료를 포기하고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질환이 나타난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환자들도 많다. 투병 전 생활과 투병 후 현재 생활 수준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 ‘생활 수준이 낮아진 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64.8%에 달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가 지난 2022년 ‘희귀질환 치료제의 접근성 확대’를 국정과제의 하나로 선정한 뒤에도 여전히 치료제 가격이 환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얘기다.

급여 적용이 안돼 어려움을 겪는 대표적인 희귀질환으로 ‘척수성 근위축증(SMA)’이 있다. 급여 심사에 탈락한 환자들은 치료제인 스핀라자의 가격 부담이 커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척수성 근위축증(SMA) 환자 A씨는 “스핀라자 치료를 받을 때는 호흡이 안정적이었는데 심사 탈락으로 치료가 중단된 이후에는 호흡 수가 지나치게 많거나 적어지는 등의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출신인 김선민 의원(조국혁신당, 보건복지위원회)은 “치료제가 있음에도 비싼 약값 때문에 치료를 못 받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며 “약값 부담을 환자 개인에게만 지우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무한 기다림…극희귀질환 산정특례 진단요양기관 ‘허점’

극희귀질환자 B씨가 내원한 병원에서 받은 ‘극희귀질환 산정특례 등록 안내’에는 예약일에 진료를 보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B씨 제공

이 같은 치료비 부담에서 벗어나려면 산정특례 적용을 받아 치료비 지원을 받는 게 절실하지만, 극희귀질환자의 경우 오히려 산정특례 적용을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무조건 정부가 지정한 병원에 속한 특정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진단 가능 병원 및 의사의 제한은 극희귀질환자들에게는 무한 대기로 이어지게 된다.

정부는 진단의 난이도가 높고 전문적인 검사가 필요한 극희귀질환, 상세불명 희귀질환 및 기타염색체이상질환(이하 극희귀질환 등)에 대해 지난 2016년부터 진단요양기관을 지정, 극희귀질환 등의 산정특례 등록을 전담하게 하고 있다. 희귀질환 또는 유전자 클리닉이 설치돼 있는 상급종합병원 이상 요양기관만 승인이 가능하다.

이러한 규정에 따라 국내에는 47개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38개 병원(지난 1월 기준)만 산정특례 진단요양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희귀질환자가 가장 많은 경기지역의 경우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안산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순천향대학교 부속 부천병원, 아주대학교병원,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등 총 5개 병원에 그친다.

하지만 해당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라고 하더라도 산정특례 등록을 하려면 새로운 의사를 만나기 위한 별도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정부가 형평성을 이유로 산정특례 등록이 가능한 의사를 ‘해당 요양기관장이 추천하는 5인 이내’로 한정해서다.

결국 환자들은 평소 극희귀질환으로 진료를 받던 담당 전문의 대신 등록 가능 의사에게 재차 진료 예약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특히 병원 수나 의사 수가 제한적이다보니 수개월을 기다려도 지정 의사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게다가 해당 진료 예약이 실제 진료를 위한 게 아닌 간호사실에서 산정특례 신청서만 작성하기 위한 예약인 경우가 많아 옥상옥 성격의 제도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일보가 만난 극희귀질환자 B씨는 산정특례 신청을 문의한 뒤 ‘담당 교수가 아닌 지정된 교수에게 진료를 받아야 한다’며 5개월 이상 대기해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 그는 “당일 지정 교수의 진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간호사실에서 신청서만 작성하면 되는데 5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나의 병을 잘 아는 담당 교수님이 산정특례 신청서를 작성해 주는 게 왜 안 되는지 의문”이라고 푸념했다.

전문가들은 희귀질환자들이 의료비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정특례에 등록돼 있어야 하는 만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오주환 보건복지부 희귀질환관리위원회 위원은 “병원별로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극소수의 인원만 산정특례를 지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정”이라며 “정부는 환자들의 현실을 고려해 전문성을 가진 의사는 전부 산정특례를 지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러스트. 유동수화백

■ 병명조차 없는 환자들…의료사각지대에 놓인 미진단 희귀질환자

더 큰 문제는 희귀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한 ‘미진단 희귀질환자’다. 이들은 희귀질환을 앓고 있음에도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는 빠져 있다.

희귀질환관리법상 희귀질환으로 지정되려면 유병인구가 2만명을 넘어서는 안 된다. 또 ▲질환의 진단 및 치료를 위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적은 경우 ▲후천성(이차성) 질환인 경우 ▲진단 및 진단기준이 불명확한 경우 등도 희귀질환 지정에서 제외된다.

동일한 질환인데도 선천성인지 후천성인지에 따라 지정 여부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차성질환’인 후천성 단장증후군을 앓고 있는 C씨는 국가지정관리 대상으로 지정되지 못해 의료비 부담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짧아진 장 때문에 영양흡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음식을 섭취할 수 없다. 그는 “정맥 영양주사, 매일 처방받는 약값, 피검사 비용 등 의료비로 한 달에 300여만원이 든다”며 “증상이 똑같은 선천성은 등록해 주면서 왜 후천성은 차별하냐”고 토로했다.

오주환 보건복지부 희귀질환관리위원회 위원은 “병원별로 전문 분야를 나눠 증상이 나타난 환자에게 해당 병원을 이용해 빠른 진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최종 진단을 받을 때까지 소급적용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면 치료를 중도에 포기하는 환자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청 희귀질환과 관계자는 “미진단 희귀질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크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희귀질환 지정까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예산 범위 내에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α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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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기자 gaeng2da@kyeonggi.com
오민주 기자 democracy555@kyeonggi.com
이진 기자 twogeni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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