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7천645명 모집 마감…"지원자 대부분 한자릿수"(종합2보)

김잔디 2024. 7. 3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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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이탈한 전공의 복귀 기대와 달리 지원자 '극소수' 그쳐
폐쇄적 의사집단 '낙인찍기' 우려한 듯…교수들도 "지도 거부"
의료공백 장기화 전망…정부 '전문의 중심 병원' 등 의료개혁 박차
의정 갈등 장기화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전국종합=연합뉴스) 오는 9월 수련을 시작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 마감일인 31일 대부분의 전공의가 지원하지 않은 채 마감 시간을 넘겼다.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서울 시내 주요 병원은 물론이고 전국 곳곳의 수련병원도 전공의 지원이 극히 미미해 '한 자릿수'를 넘지 못한 곳이 수두룩했다.

정부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 지원자에 '수련 특례'를 적용하면서 복귀를 독려했지만, 전공의들이 끝내 외면하면서 의료공백은 하염없이 길어지게 됐다.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한 상황에서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이 '전문의 중심'으로 중증 환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조를 전환하는 데 속도를 낼 방침이다.

길어지는 의정갈등에 비상 걸린 응급실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빅5 하반기 전공의 지원자 '미미'…"한 자릿수 넘지 못해"

의료계에 따르면 오는 9월부터 수련을 시작할 인턴, 레지던트 등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이날 오후 5시를 기해 마감됐다. 지원 마감에 따라 병원별로 면접 등 채용 절차가 진행된다.

올해 하반기 모집에는 전국의 수련병원 126곳이 참여해 인턴 2천525명, 1년차 레지던트 1천446명, 상급년차(2∼4년차) 레지던트 3천674명 등 총 7천645명의 전공의를 뽑기로 했다.

전공의들은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직한 뒤 병원을 떠났고,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는 의료현장과 전공의들의 수련 과정을 정상화하고자 하반기 모집 응시자에게 '수련 특례'를 적용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전공의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앞서 정부는 사직 전공의들이 신속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동일 연차·과목 복귀'를 허용하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수련 특례는 하반기 모집에 응시하는 전공의에게만 적용될 뿐 복귀를 위한 추가 대책은 고려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끝내 전공의들의 마음을 돌리진 못했다.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의 하반기 전공의 모집 지원자 수는 극히 미미했다.

서울대병원은 하반기 모집에서 '사직 전공의'들의 자리를 비워둔 채 인턴 159명, 레지던트 32명 등 191명을 모집했다.

세브란스병원은 714명(인턴 146명·레지던트 568명), 서울아산병원은 440명(인턴 131명·레지던트 309명), 삼성서울병원은 521명(인턴 123명·레지던트 398명)을 모집했다.

서울성모병원 등 산하 8개 수련병원을 둔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이번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1천17명(인턴 218명·레지던트 799명)을 뽑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모집 마감 결과 이들 병원은 지원자는 아예 없거나 '한 자릿수'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은 지원자가 0명은 아니라면서도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전날 오후 5시 기준으로 정형외과에만 2명이 지원한 것으로 파악됐고, 마감 후에는 구체적인 지원 규모를 함구했다.

서울아산병원도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막판에 지원을 철회하거나, 접수 후 서류를 제출하지 않는 등의 이슈로 최종 지원자가 '0명'이 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빅5 병원 관계자는 "마감까지 기다렸지만, 분위기가 달라지진 않았다"며 "주요 병원이라고 해도 지원자가 한 자릿수를 넘는 곳이 없을 듯하다"고 말했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 31일 마감…복귀 가능성은?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전국서도 지원 '극소수'…"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씁쓸

전국 각지 수련병원의 분위기도 서울과 다르지 않다.

지역의 대학병원은 전공의들의 수도권 이탈을 우려해 사직 처리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애초 모집하는 규모도 크지 않았다.

지방 수련병원 대부분은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빚어진 결원 등 의정갈등 사태와는 무관한 인원을 충원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에서는 경북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영남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동국대 와이즈(WISE)캠퍼스, 파티마병원 모두 전공의 지원자가 전무했다. 계명대 동산병원에만 1명이 지원했다.

광주·전남에서는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이 하반기 전공의를 모집했지만, 지원자가 조선대병원 피부과 레지던트 단 1명뿐이었다. 해당 지원자는 전공의 이탈사태와 무관하게 하반기 레지던트에 응시하려는 것으로 파악됐다.

두 수련병원은 전공의들의 수도권 유출 등을 고려해 전공의 사직 처리도 보류하고 있다.

경기도의 아주대병원은 하반기에 전공의 230명을 모집할 계획이었으나 지원자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인천의 가천대 길병원과 인하대병원도 마찬가지다.

충북대병원도 지원자가 한명도 없었다.

충북대병원 관계자는 "원래도 하반기엔 지원자가 적었던데다 애초 사직 처리한 인원이 적었기 때문에 지원자가 없을 거라는 예상은 했다"며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병원이 언제까지 현 체제로 버틸 수 있을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강원대병원은 오후 4시 기준 지원자가 1명에 불과했다. 전북대병원과 원광대병원, 울산대병원, 동아대병원, 창원경상대병원, 충남대병원, 건양대병원, 순천향대천안병원도 지원자가 없거나 극히 적다.

단국대병원은 오후 4시 기준 인턴 36명 모집에 1명, 레지던트 118명 모집에 1명이 각각 지원했다.

지역의 한 수련병원 관계자는 "일부 병원에서 새로 지원하는 전공의들을 제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교수들의 입장도 나온 상황에서 누가 지원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부산대병원은 집단 이탈한 전공의 179명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아 상반기에 정원을 채우지 못한 외과 전공의 1명만 채용 중이나, 이날 마감 직전까지 지원자는 없었다.

'빅5' 병원도 전공의 지원자 없어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의사집단 '낙인찍기' 우려한 듯…정부는 '전문의 중심 병원' 속도

의료계 안팎에서는 애초에 전공의들이 하반기 모집에 무관심한 데다가 복귀하는 전공의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저조한 지원율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본다.

복귀한 전공의들의 실명이 올라온 텔레그램방이 개설되면서 폐쇄적인 의사집단 내 '낙인찍기'에 대한 우려가 크다.

여기에 일부 의대 교수들이 하반기 복귀 전공의에 대한 지도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복귀를 고민했던 전공의들도 선뜻 지원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다수 전공의는 수련을 재개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 A씨는 "주변 지인들 모두 수련 현장을 완전히 떠나서 '가을턴(하반기 전공의)' 관련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며 "접수 기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도 몰랐다"는 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예측했던 바와 다르지 않다는 반응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전공의 모집이 마감된 후 보도자료를 통해 "예상대로 지원율이 극히 미미하다"며 "정부의 갈라치기 술책과 행정명령 철회, 수련 특혜 등 당근책은 전공의들에게 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료계가 주장했듯이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는 이상 정부가 그 어떤 대책을 내놓는다 해도 실패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며 "그 사실을 아둔한 정부만 모르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전공의들이 하반기 모집에 지원하지 않으면서 의료현장의 시름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하고 병원을 떠나면서 의료현장은 진료와 수술을 대거 축소하면서 힘겹게 버티고 있지만, 하반기에도 전공의들이 충원되지 않으면서 또다시 한계에 직면하게 됐다.

수련병원들은 전공의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으면서 '전공의 없는 상태'가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앞으로 전공의 없이 어떻게 병원을 유지할지, 수련체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에 대한 고민이 이어져야 할 것"이라며 "전공의가 없는 상태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해지자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개편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를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상급종합병원에 전문의와 진료지원(PA) 간호사 비율을 늘리며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로 인한 공백을 메울 계획이다.

상급종합병원의 일반병상을 5∼15% 감축하는 등 중등증(중증과 경증 중간) 환자 비율을 줄이고, 전문의와 PA 간호사를 활용해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체질 자체를 바꾼다는 전략이다.

상급종합병원이 경증 환자까지 대거 진료하는 '박리다매' 방식으로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본래의 목적에 맞게 중증 환자 위주로 진료할 수 있는데 주안점을 둔다는 얘기다.

복지부 관계자는 "과도한 전공의 의존을 줄일 수 있도록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과 같은 실효적이고 근본적인 개혁 추진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며 "현장 의견을 반영해 9월 중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을 위한 시범사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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