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1인자, 이란서 피살… ‘중동 격랑’

이민경 2024. 7. 3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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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통령 취임식 참석 뒤 숙소서
하마스 “이스라엘 소행… 보복할 것”
이란 “피의 값 치를 것”… 이·‘저항의 축’ 전면전 우려
팔 가자지구 인질협상 핵심인물 사망
이란, 국가안보회의 열고 대응 나서
하메네이, 이스라엘에 강력 보복 지시
페제시키안 “후회하도록 할 것” 경고
이스라엘, 공식논평 없이 “상황 평가”
美 블링컨 “알지 못하고 관여도 안 해”
일각 “이스라엘 휴전협상 깨려는 의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서열 1위인 정치국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3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한복판에서 암살됐다. 이란 최고지도자는 자국에서 하마스 지도자를 겨냥한 공격이 일어난 것을 두고 ‘강력한 보복’을 지시했다. 지난해 10월7일부터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하니야가 이란에서 살해되면서 이스라엘과 친이란 이슬람 무장세력 ‘저항의 축’ 간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5차 중동전쟁 발발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중동 정세가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 서열 1위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 로이터연합뉴스
31일 외신 등에 따르면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성명을 내고 하니야가 이날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마스도 텔레그램 성명을 통해 하니야가 이날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하니야는 전날 열린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 반군 후티 등 저항의 축 인사들과 함께 테헤란에 머물고 있었다.

IRGC 성명에 따르면 하니야는 페제시키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숙소에서 경호원과 함께 살해됐다. 영국 가디언은 암살이 31일 오전 2시쯤 발생했으며, 숙소 건물이 ‘공중 발사체’의 폭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태어난 하니야는 하마스 고위 지도자 중 한 명이다. 2007년부터 가자지구의 하마스 지도자를 맡았고, 2017년 5월 하마스 정치국장으로 선출된 뒤에는 카타르에서 생활해왔다. 미국은 2018년 하니야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하니야는 이스라엘과의 휴전·인질 협상에 하마스 대표로 참여해 왔다.

하니야 암살로 중동 긴장은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이란의 국내외 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최고국가안보회의(SNSC)는 하니야가 살해되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관저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이스라엘 국기 밟고 지나가는 이란 시위대 3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대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 추모 시위에서 대학 평의회 회원들이 하니야의 영정을 앞세우고 암살 주체로 지목된 이스라엘 국기 위를 밟으며 지나가고 있다. 테헤란=AP연합뉴스
하메네이는 성명에서 “이란 영토에서 발생한 쓰라린 사건과 관련해 그(하니야)의 피값을 치르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여겨야 한다. 범죄자 시온주의 정권이 가혹한 징벌을 자초한 것”이라며 이스라엘을 향한 보복을 지시했다. 하메네이가 “보복은 의무”라는 수위 높은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란 역시 이스라엘 본토를 탄도미사일 등을 동원해 공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취임 직후 동맹국을 보호하지 못한 페제시키안 대통령도 이스라엘을 향해 “비겁한 행동을 후회하도록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암살은 국가의 심장부인 수도 테헤란의 방공망이 뚫리고, 기밀 정보가 실시간으로 유출됐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지도자 하니야가 어느 시간대, 어디서 머무르는지가 고스란히 노출됐고 이를 정확히 노린 암살 작전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방공 레이더를 회피할 수 있는 F-35 전투기로 이란에 접근한 뒤 유도미사일을 발사했거나 이스라엘에서 테헤란까지 약 1600㎞를 작전 반경으로 하는 드론으로 공습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마스도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다짐했다. 하마스 정치국 고위 인사인 무사 아부 마르주크는 “비겁한 그들(이스라엘)의 행동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다.
이스라엘의 소행이 맞다면 이란 본토를 이스라엘이 직접 공격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지난 4월19일 이후 103일 만이다. 이스라엘이 전날 저녁 자국 점령지 골란고원 축구장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공습, 헤즈볼라 최고위 지휘관인 푸아드 슈크르를 제거한 지 불과 몇시간 만에 이란 심장부까지 타격한 셈이다.
지난 30일(현지시각)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를 살피고 있다. AP뉴시스
이스라엘은 하니야 사망과 관련해 공식 반응을 내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오전 8시쯤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 민방위 사령부의 방어 지침에는 변화가 없다”며 “상황 평가를 진행 중이며 변경 사항이 있을 시 대중에게 업데이트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스라엘 정부 공보국(GPO)은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하니야의 얼굴에 ‘제거됨’(eliminated)이라는 빨간색 도장을 찍은 합성 사진을 올렸다가 이를 내렸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하니야의 암살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관여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하니야 피살에 대해 “따로 할 말이 없다”며 “전쟁은 불가피하지 않다. 외교를 위한 공간과 기회는 항상 있다”고 확전을 경계했다.

하니야의 급사로 진척됐던 휴전 협상은 수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알자지라는 “실용주의자인 하니예의 사망으로 이제 하마스의 강경파가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휴전 협상이 추동력을 갖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협상 중재국 카타르의 총리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한쪽이 다른 쪽의 협상 상대를 암살하면 어떻게 중재가 성공할 수 있겠는가”라며 협상 결렬을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암살에 협상을 깨려는 이스라엘의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도 있다.

이민경·이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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