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해 [똑똑! 한국사회]
원혜덕 | 평화나무농장 농부
한달 전에 독일에 다녀왔다. 베를린에서 생명역동농업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니 참석하면 좋겠다고 세계생명역동농업연합에서 일하는 이가 작년부터 남편을 설득한 결과다. 그는 독일에서 세계 유기농 포럼이 이어서 열리니까 그 포럼에도 참석하면 좋지 않겠냐고 했다.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는 안 된다고 했다. 7월에 들어서면 우리가 주 작물 중의 하나로 기르는 토마토가 익으려는 때다. 수확 전에 마지막으로 곁순을 제거하고 토마토 줄기가 늘어지지 않게 유인해주어야 한다. 열흘이나 농장을 비울 수가 없었다.
그는 계속 우리를 설득했다. 집에 일을 도와주는 아들이 있지 않으냐고 했다. 그는 2년 전에 세계생명역동농업연합 사무총장과 함께 우리 집에 와서 이틀 묵어간 적이 있다. 결국 남편은 가기로 했다. 그의 설득보다도 20년 전에 우리나라에 생명역동농업연구회를 만들고 이제까지 이끌어왔기에 스스로를 설득했을 것이다. 독일에서 시작된 생명역동농업은 유기농업의 한 갈래로 유기농업에 더해 땅에 활력을 줘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려는 농법이다.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브로도빈은 베를린 중앙역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까지 동독에 속했던 지역이다. 낮 12시에 주최 측에서 정성껏 차린 푸짐한 점심을 다 함께 하는 것으로 시작된 행사는 저녁 식사 후 두번째 포럼을 마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고 나니 밤 10시가 되었다. 축제였다. 1차 포럼에는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IFOAM) 대표가 기조연설을 하고 패널이 토론에 참여했다. 2차 포럼에서는 로마클럽 회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여러 나라에서 온 패널들이 토론에 참여했다. 이 경우는 토론이라기보다는 각 대륙에서 한두 나라씩 자기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역동농업의 현황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참여자가 발표를 하다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자 청중은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며 그녀를 응원했다.
이틀 후에 독일 남동부에 있는 뉘른베르크에 갔다. 그곳 오래된 성에서 세계 유기농 포럼이 열렸다. 포럼 참석자들의 절반가량이 생명역동농법으로 농사를 짓거나 연구하는 사람인 것을 보며 생명역동농법이 독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었다. 기조연설과 패널 토의가 이틀간 이어졌다. 그중 인상적인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집트에서 헬미 아불레이시가 화상 발표를 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인 이브라힘 아불레이시가 창립한 세켐을 어떻게 운영해나가는지 이야기했다.
독일에서 유학했던 그의 부친은 귀국해 나일 계곡과 접하고 있는 사막을 구입했다. 그는 지속가능한 유기적인 농장을 만들고 싶어서 독일생명역동농업 본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결국 그 사막을 나무와 작물이 자라는 땅으로 만들었다. 또한 자기 노동력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그 지역의 어린 여자아이들을 농장으로 불러들였다. 그 아이들이 농장에서 캐머마일을 따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게 했다. 캐머마일은 생명역동농업 증폭제의 중요한 원료가 되는 꽃이다. 그는 그 아이들에게 한나절은 공부를 가르쳤다. 성장한 뒤 윤락가로 빠지던 그 지역 여자아이들은 평범한 사회인으로 자랐다. 세켐에서 생산한 캐머마일 차의 향기가 특별히 강하다고 유럽에서 유명해지면서 ‘캐머마일 아이들’ 이야기가 함께 퍼졌다. 그의 아들 헬미 아불레이시는 자기들의 활동을 ‘사랑의 경제’라고 말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늘 불가능해 보인다’고 한 넬슨 만델라의 말을 자막으로 띄워놓고도 이야기했다.
두번의 모임은 어떻게 하면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면서 망가진 자연과 생태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듣는 시간이었다. 그것을 실천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모든 일은 사람에게서 시작된다는 것,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과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유기농업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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