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민주주의의 고민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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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이 개막했다.
그러나 올림픽이 열리는 나라 프랑스는 지금 정부가 없다.
지금, 기존 민주주의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믿는 많은 프랑스인이 반민주주의 세력으로 몰려들고 있다.
즉, 프랑스 좌파는 두 가지 처방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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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파리 올림픽이 개막했다. 그러나 올림픽이 열리는 나라 프랑스는 지금 정부가 없다. 한 달 전 실시한 조기 총선 결과에 따라 정당하게 구성된 내각이 없다는 뜻이다. 일단은 좌파 신인민전선이 최대 당선자를 낸 선거 결과를 무시하며 새 총리 임명을 미루는 마크롱 대통령의 독단이 원인이다. 하지만 신인민전선이 총선이 끝나고 한참 뒤에야 총리 후보를 정한 탓도 있다. 장뤽 멜랑숑이 이끄는 ‘불굴의 프랑스’를 비롯해 사회당, 녹색당, 공산당이 모두 합의할만한 인물을 찾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결국 7월23일에야 발표한 총리 후보는 파리 시정부(사회당)에서 경제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루시 카스테트(1989년생)다.
카스테트는 프랑스인들에게도 낯선 인물이다. 하지만 차기 정부가 해야 할 일에 관해 소신이 뚜렷하다. 대규모 시위를 불러온 마크롱 정부의 연금제도 개정안은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가계 구매력 확대와 부자 증세를 강조한다. 마침 카스테트의 전문 분야는 조세정책이다. 여기에서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에 관한 프랑스 좌파의 판단이 드러난다. 그것은 민주적 방식으로 정치를 움직임으로써 경제 현실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 수 있음을 실감하게 만드는 일이다. 지금, 기존 민주주의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믿는 많은 프랑스인이 반민주주의 세력으로 몰려들고 있다. 신인민전선의 ‘반파시즘’은 민주 정치의 효능감을 되살림으로써 극우파 지지의 동기 자체를 약화시킬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프랑스 좌파 사이에서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와 함께 절박한 시대적 과제로 대두하는 내용이 하나 더 있다. 신인민전선 총선 공약은 전면 개헌을 통해 현 제5공화국 체제를 넘어서자고 호소한다. 시민 참여 강화와 의원내각제를 골자로 하는 제6공화국을 열겠다는 것은 신인민전선 내 급진파를 대표하는 장뤽 멜랑숑의 오랜 지론인데, 이것이 좌파 전체의 정치 개혁 프로그램으로 채택된 것이다. 단지 총선 공약 문서 안에 멋있는 문장으로 남겨두는 수준을 넘어 총선 이후에도 실제로 중요시하는 분위기다. 멜랑숑의 당 운영을 비판하며 ‘불굴의 프랑스’에서 탈당해 독자적인 좌파 조직을 결성한 프랑수아 뤼팽도 정치 개혁에는 한 목소리를 낸다. 뤼팽은 시민이 직접 개헌안을 제출하고, 의회가 결정하지 못한 법안을 국민투표로 의결하며, 공직자를 소환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지지해왔다. 뤼팽은 반극우파 연립정부 결성 가능성을 타진하는 와중에도 이 개헌안의 수용을 핵심 조건으로 제시했다.
사회민주주의자 뤼팽뿐 아니라 그와 대척되는 입장에 있는 이들도 비슷한 비전을 밝힌다. 신인민전선 참여 세력 중 가장 왼쪽에 있는 반자본주의신당은 제5공화국을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제헌회의 소집을 총선 이후 핵심 과제로 강조한다.
즉, 프랑스 좌파는 두 가지 처방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첫째는 보통사람들이 체감하는 경제 현실을 민주 정치를 통해 바꿔낼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고, 둘째는 앞으로 대중의 요구와 열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민주주의의 골간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노력이 서로 얽혀 함께 추진될 때에 비로소 ‘민주주의 아닌 것’에서 답을 찾는 시대 흐름은 극복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혁명의 나라만의 별난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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