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대출 연착륙시키려는 정부, 가계에 빚 권하는 정책 멈춰야 [왜냐면]

한겨레 2024. 7. 3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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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5월29일 서울 건설회관에서 열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을 위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재환 | 인하대 경영대학원 부원장

구조조정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기업의 파산은 소속 직원과 그들이 부양하는 가족의 삶을 붕괴시키고, 파산한 기업과 관련된 또 다른 기업의 생존을 위협한다. 국가는 방법이 있다면 구조조정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개인과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종종 감당할 수 없는 탐욕의 거품을 쌓아 올린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와 2011년 저축은행 사태는 정상적인 미래 수익으로는 상환할 수 없는 수준의 부채로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린 경우다. 자산 가격의 거품은 높은 가격이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닫는 순간 순식간에 무너진다.

지난날 우리 사회에 불었던 부동산 광풍이 이러한 거품에 해당하는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거품은 그것이 꺼지고 난 후에야 확인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명확해진 것이 하나 있다. 부실의 정도를 가늠하기는 어려우나, 건설사업의 시행사 단계에서는 적어도 상당한 거품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시행사의 부실은 보증계약을 통해 건설사로 전이됐고, 이제 그 부실이 우리 사회의 마지막 안전판인 금융회사로 서서히 옮아가고 있다.

지난 5월 정부가 발표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피에프) 대책은 230조원에 이르는 개발사업 관련 대출의 ‘질서 있는 연착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구조조정될 기업 수를 줄여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고통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금융회사에 전국의 피에프 사업장을 둘로 구분하도록 요구했다. 우량 사업장은 추가 지원을 통해 사업을 마무리하도록 돕고, 부실 사업장은 매각 등을 통해 과감히 정리한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 대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예측된다. 첫째, 부실 사업장의 토지와 부동산이 경·공매를 통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낮은 분양가에 힘입어 미분양 물건이 팔려나가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낮은 가격에 이뤄지는 구조조정은 상당수 건설사를 파산에 이르게 할 것이다. 둘째, 만약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다면, 건설사는 높은 가격에 부실 사업장과 미분양 부동산을 동시에 정리할 수 있게 된다. 높은 가격에 이뤄지는 구조조정은 건설회사의 파산을 최소화할 것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상당한 시간을 끌어온 정부의 구조조정이 비로소 시작했다는 사실을 시장이 인지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였다. 올 2월, 금융감독원의 전망도 첫째 방향에 가까웠다. 당시 이복현 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가교대출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분양가가 14% 정도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낮아지는 분양가는 서민의 주거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시장은 둘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즉, 가계가 빚을 내어 더 높은 가격에 미분양 아파트를 사주고 있는 것이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2년11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고, 수도권 아파트의 분양가는 전년 대비 16% 급등했다.

가계의 이러한 비합리적 행동은 왜 발생한 것인가? 이는 일부 언론의 자기실현적 기사 생산과 정부의 가계대출 확대 정책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피에프 대책 발표 이후 언론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정사실로 하고 부동산 구매를 유도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정부는 연초부터 계속된 신생아 특례대출의 소득 기준을 완화했고, 당초 7월 도입하려던 2단계 스트레스 디에스알(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적용을 두 달 연기하면서 대출받기 좋은 조건을 조성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른바 ‘영끌’이 다시 고개를 든것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선한 의도가 때로 의도치 않은 파국을 야기할 수 있다. 정부는 직면한 피에프 문제를 연착륙시켜 건설회사의 구조조정을 최소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계가 빚을 내어 높은 가격에 미분양 아파트를 구매해 준다면 앞서 언급한 막대한 구조조정의 충격을 단기적으로 회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무주택자와 젊은 세대의 주택매입 가능성은 더 작아진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한 사회적 비용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가계의 채무 상환능력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어렵게 빚을 내어 집을 산 개인의 파산 가능성이 이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만약 가계가 건설사의 부실을 이전받은 후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가 발생한다면 우리 사회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져야 할 수도 있다. 정부가 이제라도 가계에 빚 권하는 정책을 멈추고, 피에프 문제를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단력 있게 바라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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