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의 도시스카프] 그늘도 도시 인프라다
과거부터 더위대피소이자 주민 소통장소 중세 이슬람에는 아치형 복도·정원 조성 급격한 산업화로 에어컨·車 의존도 높아져 도시그늘, 정체성 표현·시민 삶의 질 향상
"앗! 뜨거워!"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다. 더위는 사냥해야 하고, 추위는 가둬야 한다. 외출하기가 호랑이 만나는 것만큼이나 무서운 계절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낭만이지만, 땡볕 아래 현실은 고통이다. 대피소를 찾아 움직이듯, 모두들 냉기가 나오는 곳으로 향한다. 곡물이 익어가는데 필요한 볕이지만 뜨겁고 따가워 반가워할 이가 없다. 특히 도시는 더 그렇다.
예전에는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 그늘 아래 모여 더위도 식히고 먹을 것도 나누었다. '그늘'은 더위 대피소이자 주민들의 만남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더위 사냥'에 나무 그늘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그늘은 도시디자인의 필수적인 고려사항이었다. 요즘처럼 에어컨을 켜거나 자동차를 타고 피서를 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에는 공공 광장인 포럼 주변에 콜로네이드(Colonnade, 기둥이 줄지어 있는 복도)와 아치로 그늘을 만들고, 주변에는 정원과 분수대로 시원한 환경을 만들었다. 중세 이슬람 도시들은 건물들을 최대한 가깝게 붙이고, 아치형 복도와 정원이 있는 중정을 조성해 그늘을 만들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전기와 에어컨, 자동차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고, 급기야는 그늘에 대한 중요성을 잊게 했다. 그늘은 그저 그림자와 같은 당연한 부산물로 치부되었다. 도시나 건축 설계 과정에서 사람을 위한 그늘이 우선 순위는 아니었다. 도로나 각 건축물에는 사람이 쉬고 머물만한 그늘이 없다. 파라솔과 그늘막이 있기는 하지만 그늘이라고 시늉만 낼 뿐, 쉼을 위한 그늘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그렇게 도시가 급성장하는 사이, 온 땅과 하늘을 매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는 사람들을 열섬, 그늘 사막에 가뒀다. 누구의 잘못이라고도 할 것 없이 모두가 풀어가야 할 과제가 되었다. '그늘 사막'(shade deserts)이란 도시에 그늘이 거의 없는 지역으로, 미국의 도시설계학자들 사이에서 나온 용어다. 대부분의 국가나 도시가 마찬가지이지만, 그늘 사막은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이 거주하는 곳에 많다.
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는 파리 센 강 주변의 거리가 푸른 나무들로 그늘을 제공하니 온 파리가 그러할 것 같지만, 북편의 18구, 20구와 같은 구역들은 그렇지 않다. 그늘도 도시 인프라이기에 편중과 차별이 존재한다. 부(富)가 집중되는 공간일수록 녹지공간과 그늘이 많다. 돈이 몰리면 상거래가 활발하고, 사람이 모여드니 당연히 쉼터와 녹지공간은 늘어난다. 환경적 불평등이다.
그늘 사막은 많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터너 교수는 "그늘을 통해 햇빛 노출을 자제하는 것이 실외에서 폭염으로 인한 건강 악화를 막는 가장 효율적이고 비용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그늘 사막은 도심 전체 온도를 상승시켜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킨다. 도시민의 건강에도 큰 영향을 준다. 부족한 그늘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늘 사막을 탈피하기 위해 세계 각 도시는 '그늘 도시'(shade city)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시드니 민타(Minta) 단지의 세이드웨이(Shadeways) 프로젝트나 피닉스의 그늘 프로젝트(Shade Project), 뉴욕의 스트리트 트리(Street Tree) 프로그램, 텔아비브의 그늘 지도 프로젝트(Shade Mapping Initiative) 등은 더위 속에서 도시민들이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
호주 멜버른의 쿨 루트 맵(Cool Routes Map)은 도시민에게 그늘이 많은 공간 정보를 제공한다. 도심 곳곳에 설치된 미세 기후 센서로 실시간 온도, 습도, 바람 등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도심의 그린 스페이스와 나무 캐노피를 조사해서 그늘이 많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정보를 제공한다. 폭염 기간에는 도시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정보나 음수대 위치 정보까지 안내한다. 도시민들의 폭염 노출을 막음과 동시에 도시의 공간을 더욱 쾌적하게 만들어 준다. 그늘이 인프라가 된 셈이다.
쿨맵으로 도시민들은 그늘에서 커뮤니티와 교류하고, 도시에 대한 자부심도 느낀다. 쾌적한 경험을 한 멜버른 관광객들은 지갑을 열고, 이는 결국 도시의 경제적 이익이 된다. 바르셀로나 람블라 광장의 나무 그늘을 도시민이나 관광객들 모두가 사랑하듯이 말이다. 잘 만들어진 그늘은 도시의 인프라가 되고, 도시의 정체성이 된다.
서울시도 그늘 프로젝트를 활발히 추진해왔다. 지난해까지 약 40만 그루의 나무를 추가 식재하고 약 70여 개의 숲길을 조성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쾌적한 보행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약 400개의 그늘 쉼터도 마련했다. 이러한 노력은 경관적으로 아름답고, 잘 관리된 도시의 그늘에 대한 디자인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서울 신촌 거리에서는 대왕참나무 가지를 옆으로 늘어뜨려 만든 그늘막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무로 자연 그늘을 만들고 도심 환경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좋다. 그러나, 나무 자체의 아름다움과 수형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늘은 도시디자인의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다. 잘 설계된 그늘은 도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의 정체성도 나타낸다. 그늘도 섬세한 디자인과 관리가 필요하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여름내 무성하게 자란 플라타너스들이 겨울이 되면 몽당연필처럼 변해 여름에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간신히 나무의 모양새가 잡힐 만하면 다시 도루묵이다. 상점 간판을 가린다고 나무를 다 잘라내면 하나는 얻되 둘을 잃는다. 셈을 잘해야 한다.
그늘도 도시도 사람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 가로수 그늘 아래 떠나간 님은 혼자 그리워하면 그만이지만, 그늘진 나무를 잃으면 모두가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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