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휴전협상 주도 하마스 내 '온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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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일 하니야는 가자시티 인근 난민캠프 출신으로 젊은 시절부터 가자시티 이슬람대에서 학생 운동가로 활동하다 1987년 1차 인티파다(민중봉기) 당시 창설된 하마스에 합류했다.
이후 하니야는 하마스 창설자인 셰이크 아메드 야신이 2004년 이스라엘에 암살되기까지 수제자 겸 보좌관 역할을 수행했다.
하니야는 가자전쟁 발발 이후 미국, 이집트, 카타르가 중재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상에서 하마스 측의 협상 대표로 활동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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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일 하니야는 가자시티 인근 난민캠프 출신으로 젊은 시절부터 가자시티 이슬람대에서 학생 운동가로 활동하다 1987년 1차 인티파다(민중봉기) 당시 창설된 하마스에 합류했다.
이후 하니야는 하마스 창설자인 셰이크 아메드 야신이 2004년 이스라엘에 암살되기까지 수제자 겸 보좌관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일찍이 1994년부터 하마스가 무장 투쟁단체를 넘어 정당 형태로 정계에 진출하는 방안을 주장했고, 2006년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압승하는 데 기여하면서 팔레스타인 총리가 됐다. 그러나 하니야는 이후 선거 결과를 놓고 하마스와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이끄는 파타 간 갈등이 두드러지며 총리직에서 해임됐다.
그는 2007년 하마스의 일방적인 가자지구 통치가 시작된 이래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지도자 역할을 맡았으며, 2017년 2월 가자지구 수장 자리를 야히아 신와르에게 넘기고 같은 해 5월 하마스 정치국장으로 선출된 뒤 카타르에서 머물고 있었다.
하니야는 가자전쟁 발발 이후 미국, 이집트, 카타르가 중재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상에서 하마스 측의 협상 대표로 활동해왔다. 그는 올해 4월 10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아들 3명과 손자 4명을 잃었다.
로이터는 하니야에 대해 "하마스의 국제외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강경한 수사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랍국가 외교관들은 그를 다른 하마스 강경파에 비하면 온건파 실용주의자로 여겼다"고 전했다.
[안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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