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 기밀유출 두고 한동훈발 간첩죄 논란···민주당 “철저한 남 탓과 본질 흐리기” 비판

문광호·신주영 기자 2024. 7. 3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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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국군정보사령부의 비밀요원 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간첩법 개정 논란이 불거졌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형법상 간첩죄 적용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법 개정을 더불어민주당이 막았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다. 국가 정보기관 내 정보 유출, 뒤늦은 사건 인지 등이 밝혀지면서 정부 책임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시선을 야당과 정보 유출범 처벌 문제로 돌리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간첩법 개정을 민주당이 막았다는 한 대표의 주장 또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표는 지난 3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중국 국적 동포 등이 대한민국 정보요원 기밀 파일을 유출했다”며 “황당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간첩죄로 처벌을 못 한다. 우리나라 간첩법은 적국인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을 누가, 왜 막았나”라고 민주당을 겨냥했다.

이에 민주당 정책위는 기자들에게 보낸 알림을 통해 “마치 민주당이 법 개정을 반대해 이번 사태에 대한 처벌이 어렵게 된 것처럼 사실을 왜곡했다. 이는 명백한 거짓”이라며 “당시 민주당은 법무부와 법원행정처의 합의안 마련 및 이견 조율을 전제로 법안 심사에 임했던 것으로 해당 법 개정을 반대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논쟁의 핵심인 형법상 간첩 적용대상에 대한 논의는 2004년 17대 국회 때 열린우리당(민주당 전신)의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4가지 보완방안 중 하나로 처음 나왔다. 당시 참여정부가 국보법 폐지를 ‘4대 개혁입법’(사립학교법, 과거사기본법, 언론관계법, 보안법) 중 하나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이 보안법 폐지에 대해 ‘절대 불가’로 맞서면서 관련 법 개정 논의가 흐지부지 됐다. 이후로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비슷한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총 14건 발의됐다.

국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첫 발의 이후로도 논의에 적극적인 것은 민주당 쪽이었다. 19대(2013년), 20대(2016년), 21대(2022년) 국회까지 무려 세차례 같은 법안을 발의했던 홍익표 전 의원은 2020년 12월 국민의힘이 신청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에 맞서 찬성토론을 하며 해당 내용을 거론했다. 그는 “이 법을 바꿔 달라고 여러 차례 했는데 이 법을 바꿔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2023년 11월에는 신영대 민주당 의원이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대통령실을 향해 해당 법에 대해 “사법부가 반대를 해서 지금 의결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21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지난해 3월, 6월 9월 총 3차례 소위원회 논의가 있었지만 국가기밀 범위를 두고 법무부와 법원행정처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법안이 처리되지 못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6월 소위원회에서 “법원행정처의 반대 때문에 한발 진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말할 정도였다.

마지막 회의였던 지난해 9월 소위원회에서도 법무부는 ‘국가기밀의 범위를 다르게 정할 필요가 없다’, 법원행정처는 ‘적국을 위한 국가기밀과 외국에 대한 국가기밀은 똑같은 용어를 쓰면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군사기밀 보호법 등에 대한 개정안들이 마련되고 있다고 하니 그 부분까지 같이 한번 검토를 해 봤으면 좋겠다”고 했고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동조했다. 소위원장인 소병철 전 민주당 의원은 “정부부처나 법원행정처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논의가 완전히 종결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고 위원님들 말씀도 그렇다”며 법안을 계류시켰다.

이에 민주당은 한 대표 주장이 사실관계가 잘못됐을 뿐 아니라 잇단 국가 정보기관의 허술한 정보 관리 문제라는 본질을 흐리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최근 국정원은 수미 테리 사건을 뒤늦게 인지했다고 밝혔고, 국군 첩보 업무를 수행하는 국군정보사령부도 소속 군무원의 기밀 유출 의혹을 다른 기관의 통보로 알게 됐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지난해 미국의 대통령실 도청 파문으로 정보기관 책임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해 “정보 유출의 문제가 법 때문에 생긴 건가”라며 “보안 의식, 군 기강 해이가 본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이 통째로 도감청을 당할 일이 벌어졌는데도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이게 없지 않나”라며 “철저하게 남 탓과 본질 흐리기”라고 지적했다.

강미정 조국혁신당 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내고 “국민의힘이 입버릇처럼 전 정부 탓을 하니 한 대표도 우선 민주당 탓을 해놓고 보는 것 같다”며 “그렇게 중요한 법이면 법무장관 시절에 노력을 해 보지 그러셨나. 왜 이제 와서 딴소린가”라고 지적했다. 박은정 혁신당 의원은 SNS에 “간첩법 개정안에 제동을 건 것은 민주당이 아니라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던 박영재 대법관 후보”라며 “왜 박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관련 질의를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없느냐”고 비판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신주영 기자 j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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