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인터뷰 : 쿠팡의 복수... 블랙리스트 폭로 그 이후
'쿠팡 블랙리스트'를 세상에 알린 제보자 A 씨가 뉴스타파와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A 씨는 블랙리스트 제보 이후 한 번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쿠팡 물류센터 직원이었던 A 씨는 블랙리스트 파일을 제보한 뒤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쿠팡의 고소로 최근 경찰 압수수색을 당했다. A 씨는 쿠팡의 보복성 고소와 경찰의 편파적 수사 행태를 보며 뉴스타파와 인터뷰를 결심했다. A 씨는 인터뷰에서 "쿠팡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보했지만, 쿠팡은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꼬투리 잡아 보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쿠팡 블랙리스트, 일명 'PNG 리스트'(PNG는 기피 인물을 뜻하는 외교 용어인 'Persona Non Grata'의 준말)는 쿠팡의 물류센터 운영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가 만든 취업 방해 명단이다. 노동자 1만 6,450명의 이름과 전화번호, 생년월일과 같은 개인정보가 들어 있다. 물류센터에서 직접 일한 적 없는 언론인 수십 명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쿠팡은 블랙리스트 등록자들이 전국 어떤 물류센터에 취업을 신청해도 채용이 안 되도록 설계했다.
현재 쿠팡과 쿠팡풀필먼트는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노동자·언론인의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무단 수집했다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취업 방해를 했다는 근로기준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관련 기사>
① '쿠팡 블랙리스트'가 합법이라고?... 불법 의혹 짙은 이유 (2024.3.13)
② 쿠팡, '블랙리스트' 제보자에 보복하려 '별건 고소' 의혹 (2024.7.9)
'쿠팡 블랙리스트' 제보자 최초 인터뷰... "검증도 없이 '이 사람 뽑지 마라'"
A 씨는 지난 2022년 10월 경기도 이천에 있는 쿠팡 호법물류센터의 계약직 노동자로 입사했다. 소속은 인사채용팀이었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일용직·계약직 노동자를 채용하고 관리하는 게 주 업무였다.
입사 후 A 씨는 곧바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알게 됐다. 회사는 채용 업무에 대해 가르쳐 주며 '받으면 안 되는 사람'들의 명단을 알려줬다고 한다. 명단은 꾸준히 갱신됐고, A 씨는 '채용 과정에서 누구를 걸러내야 하는지' 교육받았다.
블랙리스트는 호법물류센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쿠팡풀필먼트 본사 차원에서 운용됐다. 전국 각 쿠팡 물류센터가 자체적인 취업 제한자 명단을 만들어 쿠팡풀필먼트 본사에 보고하면, 본사가 이를 취합해 블랙리스트에 넣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본사가 취합한 블랙리스트는 전국 각 물류센터에 공유됐다. 각 물류센터 인사팀은 이를 토대로 블랙리스트 등록자들을 채용 과정에서 걸러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도 모른 채 '자리가 없다', '채용이 마감됐다'는 거짓말로 탈락 통보를 받았다.
지난 2월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처음 세상에 알려지자 쿠팡은 "직원에 대한 인사 평가는 회사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블랙리스트는 정당한 인사평가 자료일 뿐 취업 방해 목적의 '불법 자료'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A 씨는 "블랙리스트는 객관적이지 않다"며 "어디가 정당한 인사권이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반박했다. 쿠팡은 노동자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며 절도, 고의적 업무 방해, 정상적 업무 수행 불가, 지시 불이행, 회사 명예훼손 등을 '취업 제한 사유'로 달았다. A 씨는 그러나 블랙리스트 등록 과정에서 취업 제한 사유가 정말 사실에 부합하는지 검증하는 절차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물류센터 현장 캡틴(관리자)한테 얘기 들어보면 '이 사람이랑 진짜 일 못 하겠다', '이 사람 (채용) 확정 (문자) 주지 마라, 상부에 보고해 달라.' 이런 식이에요. 뭐, 이유를 만들어서 블랙리스트에 올려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사실상 있고요, '이 사람은 왜 받으면 안 된다.' 그런 이유조차 없는 사람도 있어요. '그냥 받지 마라' 이렇게...
- A 씨 / 쿠팡 블랙리스트 제보자
이런 A 씨의 주장은 뉴스타파가 접촉한 쿠팡풀필먼트 본사 전 직원의 증언과도 일치한다.본사 인사팀에서 근무했던 전 직원 B 씨는 "(취업 제한 사유에 대해) 검증 절차는 없다, 여기(블랙리스트)에는 사적인 감정이 많이 들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쿠팡풀필먼트 내부 규정에는 블랙리스트 등록 과정에서 '본인 확인 및 소명'을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유명무실했다고 한다. 규정 단서 조항에는 "본인이 직접 작성이 어려운 경우 사건 관련인(현장 관리자)이 대리 작성"이라고 돼 있다. 노동자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달라고 요청하는 현장 관리자가 해당 노동자 몰래, 본인 소명을 대필해도 된다는 얘기다. A 씨는 "현장 캡틴이나 매니저가 (블랙리스트 당사자의 소명을) 대신 쓰기도 한다"면서 내부 규정은 "실질적 효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A 씨는 왜 이 사람을 채용하면 안 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누군가의 일할 기회를 빼앗는 일을 반복했다. 죄책감이 쌓여갔다. 그러던 중 '폭로를 해야 겠다'고 마음 먹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 노동자가 물류센터에 처음 와 자신이 아팠던 사실을 솔직히 얘기했는데, 채용 불가 통보를 받은 것이다.
고용정책기본법에 따르면, 근로자를 모집ㆍ채용할 때 합리적인 이유 없이 병력을 이유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현재 정상적인 직업 생활이 가능한데도 과거 질병 이력이나, 병에 대한 편견으로 고용을 거부하는 건 불법이란 뜻이다. 그러나 쿠팡에서는 아프고 다친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일이 빈번했다. 이 노동자는 집으로 돌아가며 A 씨에게 항의했다.
그분이 저한테 좀 화를 엄청 많이 내셨거든요. '그럼 속여서 (병력을) 쓰고, 그냥 일하고 가면 되는 거예요?' 하면서요. '제가 여기 일하러 엄청 힘들게 차 타고까지 왔는데 그럼 저 그냥 다시 힘들게 막 가면 되는 거예요?' 이러셨어요. 저도 그날 힘든데, 뭔가 되게 기분이 그랬던 것 같아요.
- A 씨 / 쿠팡 블랙리스트 제보자
A 씨는 블랙리스트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대기업 쿠팡의 비밀을 혼자 폭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A 씨는 지난해 9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같은 물류센터 전 직원이자 노동조합 간부였던 김준호 씨에게 블랙리스트 파일을 전달했다. 김준호 씨는 곧바로 노동조합, 변호사 등이 활동하고 있는 '쿠팡 대책위원회'에 해당 사실을 공유했고 이후 블랙리스트는 언론과 국회에 제보됐다. 지난 2월 쿠팡 블랙리스트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된 배경이다.
블랙리스트 폭로 이후 A 씨가 바란 건 쿠팡이 지금보다 더 나은 기업이 되는 것이었다. A 씨 표현에 따르면 쿠팡이 블랙리스트처럼 주관적이고 주먹구구인 방식을 버리고 '대기업답게' 객관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채용하길 바랐다.
블랙리스트 뺀 쿠팡의 '별건 고소'... 무엇을 노렸나
하지만 A 씨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쿠팡은 블랙리스트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조금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2월 A 씨와 김준호 씨를 고소했다. 혐의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 유출), 업무상 배임 등이었다.
쿠팡풀필먼트가 쓴 고소장에는 A 씨가 쿠팡의 영업비밀 134건을 포함한 내부자료 148건을 무단 유출했고, 이를 통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취재 결과, 이 148건의 자료 중 쿠팡 블랙리스트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A 씨는 "고소는 블랙리스트 때문에 당했는데, 고소 내용에는 블랙리스트가 없다. 어이가 없다"며 "꼬투리를 잡아서 한 보복성 고소"라고 말했다. A 씨는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는 '유출한 게 맞다'고 인정했다. 단 그 목적은 공익 제보를 위해서였다는 입장이다.
반면 쿠팡이 고소장에서 무단 유출로 규정한 다른 자료들에 대해 A 씨는 '유출했다'는 쿠팡의 주장 자체를 부인했다. '일부는 일상 업무를 위해 개인 휴대전화 등에 다운로드한 파일이고, 일부는 아예 존재를 모르는 파일'이라는 주장이다. 쿠팡의 자료보관 서버인 '셰어포인트(Sharepoint)'는 특정 기기나 IP로만 접속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계정만 있으면 어떤 기기로든 언제 어디서나 접속, 파일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애초에 '유출'이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쿠팡 고소장에는 A 씨가 휴대전화를 통해 파일을 유출했다고 적혀 있다.
A 씨는 "내가 쿠팡풀필먼트에서 가장 낮은 직급인 레벨1이었다"며 "레벨1 권한 범위에 기밀이 있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정말로 보호해야 될 자료는 본사한테 권한을 요청하게끔 시스템이 돼 있다. 파일을 그냥 열리게 만들어 놓고 (영업비밀 유출로) 고소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쿠팡은 '유출 사실이 확실한 블랙리스트'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고, 유출 사실과 영업비밀이 맞는지도 모호해 보이는 다른 파일들은 오히려 고소장에 올렸다. 어떤 이유일까.
변호사들은 두 가지 노림수가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첫째, 블랙리스트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은 채 제보자에게 보복할 수 있다. 쿠팡은 A 씨와 김준호 씨를 영업비밀 등 내부자료 유출 혐의로 고소했다. 따라서 유출된 자료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얼마나 중요한지 등을 밝혀야 한다. 만약 블랙리스트가 고소장에 포함됐다면 쿠팡은 블랙리스트의 성격과 중요도에 대해 소장이나 수사 과정에서 설명해야 한다. 즉 블랙리스트 유출을 문제삼으려면 블랙리스트가 중요한 내부자료라고 주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블랙리스트에 대한 쿠팡의 설명이나 주장은 블랙리스트에 대한 경찰과 노동부의 수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둘째, 블랙리스트 제보자가 공익신고자로 보호를 받지 못하게 할 수 있다. A 씨와 김준호 씨는 블랙리스트 폭로와 관련해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자 보호 조치를 신청한 상태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르면 공익신고와 관련해 범죄 행위가 발견된 경우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즉, A 씨가 쿠팡 내부자료를 유출한 게 법 위반이라 해도 블랙리스트를 공익제보하기 위한 목적이 인정된다면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쿠팡은 고소장에서 블랙리스트를 제외했고, 이로 인해 A 씨와 김준호 씨가 '블랙리스트 제보와 무관한 별도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 A 씨와 김준호 씨가 공익신고자로 인정되더라도 해당 고소 건과 관련해서는 법의 보호를 못 받게 의도한 건 아닌지 의심된다. 쿠팡 대책위원회 소속 오민애 변호사의 설명이다.
만약에 블랙리스트 유출을 범죄라고 구성해 고소하면, 이에 대해선 공익신고자 지위에서 형을 감면받거나 이런 조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과 무관한 자료를 유출했다며 고소했기 때문에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정하고 있는 보호 조치를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것들을 같이 전반적으로 고려해서 고소를 한 게 아닌가 싶다.
- 오민애 변호사 / 쿠팡 대책위원회
이외에도 A 씨와 김준호 씨는 쿠팡의 고소 내용에 허술한 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고소장에는 A 씨와 김준호 씨가 파일 무단 유출로 부정한 이익을 취득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부정한 이득을 취득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전혀 없다. 또 A 씨가 상급자를 기망해 파일 보관 서버에 대한 접근 권한을 얻은 뒤 파일을 유출했다고 적혀 있지만, 역시 근거는 제시돼 있지 않다. 오민애 변호사는 "보통 고소를 할 때는 어느 정도 정황이 있을 때 하는데, '유출해서 부정한 이익을 취했다' 이런 문구는 아무 근거가 없어 보인다. 업무상 확인하거나 다운로드하는 게 당연한 파일도 고소장에 다수 들어 있는데, 이런 걸 (쿠팡이) 모르는 게 아닐 것 같다. 무리한 고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제보자 A 씨 "압수수색 온 경찰 '쿠팡 입장에서 고소 당연하다'고 했다"
쿠팡의 고소장을 토대로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과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지난 6월 12일 제보자 A 씨의 주거지, 휴대전화, 컴퓨터 등을 압수수색했다. 혐의는 쿠팡이 고소한 그대로였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경찰에 당황한 A 씨는 변호인 입회도 없이 압수수색을 당해야 했다.
압수수색을 시작한 경찰은 A 씨의 휴대전화를 가져가겠다고 했고, 당장 야간 근무를 위해 오후 출근을 해야 했던 A 씨는 곤란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A 씨의 사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의 위력을 과시하며 강압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A 씨는 "경찰이 내 휴대전화의 클라우드(휴대전화 데이터베이스)가 안 열리니까 '경찰서로 가져가야겠다. 따라오라'고 얘기했다. 내가 '휴대전화를 가져가면 일을 못 한다'고 했더니 (수사관이) '이 압수수색 영장이라는 게 저기 삼성에 들고 가면 삼성에 있는 컴퓨터를 다 들고 올 수 있을 만큼 위력이 있는 거다. 지금 안 따르면 불이익 올 수 있다'도 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경찰서로 따라갔다. 오후 3시 반까지 출근인데 그날 거의 5~6시간 조사받고 2~3시간 지각해서 회사 출근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쿠팡을 편드는 얘기도 했다고 한다.
수사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잘 아시겠지만 기업은 이미지로 먹고 살잖아요. 그런데 아시죠? 쿠팡이 이번에 겨우 흑자 전환했는데 A 씨가 그거 블랙리스트 가져와서 유포하셔서 쿠팡이 지금 피해 엄청 입은 거예요. A 씨는 개인이고, 그냥 그거 유포해 버리면 그만인데 기업은 그걸로 엄청 피해 입은 거라고, 지금 이미지 그냥 망한 거라고.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라고, 지금 고소하고 지금 이렇게 난리 치는 게...' 기업 입장에서는 지금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본다 이거겠죠.
- A 씨 / 쿠팡 블랙리스트 제보
경기남부경찰청은 A 씨에 이어 지난 24일에는 또 다른 제보자 김준호 씨의 주거지 및 개인 전자장치도 압수수색했다. 경찰이 제시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김 씨가 쿠팡 내부자료 유출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고 적혀 있었다. 압수수색이 필요한 사유로는 김 씨가 휴대전화를 4개월 만에 바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기재돼 있었다.
김 씨는 "영장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나는 원래 휴대전화를 자주 바꾸는 편이다. 그동안 휴대전화를 길면 1년 반, 짧으면 6개월 정도 쓰곤 했다. 그런 과거 기록도 안 보고, 본인들이 특정한 기간의 기록만 보고 '휴대전화 자주 바꿨다, 그러니까 압수수색해야 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부당하다"고 토로했다.
제보자는 강제 수사, 쿠팡 블랙리스트 수사는 '느긋'... "편파적이다"
지난 2월 19일, 노동·시민단체들은 쿠팡과 쿠팡풀필먼트를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 송파경찰서와 고용노동부 서울 동부지청에 고소·고발했다. 쿠팡이 블랙리스트 제보자 2명을 고소한 것과 비슷한 시기였다. 그 사이 제보자 A 씨는 고소 4개월도 안 돼 압수수색을 당했고, 반면 쿠팡에 대해선 고발 5개월이 넘은 지금까지 아무 강제수사도 없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블랙리스트 관련 쿠팡 내부 자료를 확보하는 방법도 모두 쿠팡의 자율에 맡긴 '임의 제출'뿐이었다.
뉴스타파는 쿠팡 수사를 맡고 있는 송파경찰서 수사1과에 연락해 입장을 물었다. 수사1과장은 "수사 진행 상황은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강제수사도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도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고용노동부 서울 동부지청 근로감독관은 "쿠팡, 쿠팡풀필먼트 참고인들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 참고인 조사와 자료 제출도 좀 더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 강한승, 박대준 대표이사도 조사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표 조사는 안 했다. 일단 관계자들 조사부터 먼저 진행해야 된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등은 고소·고발과 함께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지만, 이 역시 아직 진행된 바가 없다.
이에 대해 오민애 변호사는 "블랙리스트 작성은 기업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증거인멸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강제수사를 해야 된다고 경찰에 요구했는데, 전혀 진행이 안 됐다. 쿠팡에 임의로 협조를 구한다고 하는데 사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증거가 확보될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편파적이고 불공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보자 김준호 씨도 쿠팡의 증거인멸 가능성을 우려했다. 김 씨는 "쿠팡풀필먼트가 블랙리스트 폭로 후 한 달이 안 돼 본사를 이전했다. 원래 쿠팡이랑 같이 서울 잠실 건물을 쓰다가 이사를 했다. 이사 과정에 분명히 서버를 교체했을 가능성이 크다. 얼마든지 돈을 들여서 (내부 서버 등은) 교체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증거 인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쿠팡의 눈치를 보고 있다. 쿠팡에 고위직 공무원 출신이 많다. 검찰 출신, 판사 출신, 심지어 경찰 출신도 쿠팡 고위직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경찰이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8일 쿠팡에 연락해 블랙리스트 제보자를 고소하며 블랙리스트는 뺀 이유가 무엇인지, 보복 고소라는 비판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등을 물었다. 쿠팡 홍보팀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 질의에 답변할 수 없다"며 "지난 2월 전 직원 A씨가 김준호 씨와 공모해 물류센터 운영 설비 관련 자료를 포함한 수십 종의 회사 기술∙영업기밀 자료를 유출한 정황을 확인하고 고소했다”는 입장만 밝혔다.
취재진은 강한승 쿠팡 대표에게도 직접 연락했다. 블랙리스트의 불법 의혹, 블랙리스트 제보자에게 보복 고소를 했다는 비판 등에 대한 입장을 묻기 위해서였다.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강한승 대표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문자에도 전혀 답하지 않았다.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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