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사칭'에 꽃집도 당했다...90만 원어치 주문 후 잠적

윤한슬 2024. 7. 3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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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장 진급 행사에 쓸 것" 주문 전화
3단 화환 7개·수반 2개·꽃다발 배달 요청
고가 와인 대리구매 부탁도…거절하자 '잠적'
270만 원 고기 '노쇼' 업주 "동일인 같다"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과거 화환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최근 군인을 사칭한 인물로부터 노쇼(예약부도) 피해를 보는 자영업자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경북 안동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는 주로 음식점들이 피해를 봤지만 이번엔 꽃집이 타깃이 됐다.

30일 방송된 JTBC '사건반장'에 따르면 안동에서 30년째 꽃집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주문자가 잠적해 90만 원어치의 꽃을 폐기하고 말았다. 자칫하면 더 큰 손해를 입을 뻔했다.


사단장 진급 행사 목적 화환 등 배달 요구

군인을 사칭한 남성이 지난 22일 경북 안동시 한 꽃집에 90만 원어치 화환 등을 주문한 뒤 잠적했다. JTBC '사건반장' 캡처

A씨에 따르면 자신을 군인이라고 밝힌 김모씨는 지난 22일 꽃가게로 전화를 걸어 "대대장의 사단장 진급 행사에 사용할 예정"이라며 화환 등 90만 원어치를 23일 오후 5시 30분까지 군부대로 보내달라고 주문했다. 3단 화환 7개, 수반 2개, 꽃다발 등이었다. 결제는 꽃을 수령할 때 하기로 약속했다.

김씨는 화환에 들어갈 문구도 직접 미리 보내주고 "대대장님이 화려한 스타일을 좋아하니 꽃도 크고 화려하게 꽂아 달라"며 세부적인 사안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A씨는 군인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해 철석같이 믿었다고 한다.

예약 당일이 되자 김씨는 수상한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와인을 구매하기로 한 업체가 군수 과장과 단가 문제로 다퉈 주문을 안 받아준다"며 A씨에게 진급 행사에서 사용할 고급 와인을 대신 주문해달라고 요청했다. 기존 납품업체의 연락처까지 건넸다.


'꽃값에 얹어서 같이 줄 테니...' 990만 원 상당 와인 대리 구매도 부탁

군인을 사칭한 남성이 꽃 90만 원어치를 주문한 뒤 고가 와인 대리구매를 부탁하고 있다. JTBC '사건반장' 캡처

김씨는 전화를 한 데 이어 문자까지 보내 "병당 350(만 원)으로 거래했었고, 총 3병이 필요하다. 바로 연락 좀 부탁드리겠다. 오늘 조금 늦더라도 배송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A씨는 김씨가 알려준 납품업체에 연락했고, 한 병에 350만 원이지만 할인해서 3병에 990만 원이면 주겠다는 답을 받아 그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다시 부탁이 이어졌다.

김씨는 "행정부서에서도 결제가 안 되고 저희가 (결제를) 처리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라 사장님이 먼저 결제해 주면 30만~40만 원 차액금을 남겨 드리겠다"며 "사장님이 먼저 결제해 준다고 하면 제가 화환값과 와인값을 차액금이랑 같이 결제 진행하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배달 시간 다 돼 잠적… 군 "행사 없었다"

A씨는 와인 업체에 990만 원을 송금하려다 수상함을 느껴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와인값을 지불하지 않았다. 이 남성은 결국 꽃 배달 시간이 다 됐을 때쯤 연락이 끊겼다.

아니나 다를까 김씨는 군인을 사칭한 인물이었다. 사단장 진급 행사가 있다던 7월 23일 해당 군부대에선 진행된 행사가 없었다. 김씨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도 없었다.

A씨는 "주문 들어왔던 꽃은 전부 폐기해서 처음에는 많이 속상했다"며 "그나마 990만 원 안 보낸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피해자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험 많은 '꾼'의 소행으로 봤다. 오 교수는 "말투도 군인처럼 해서 속였고, 중간에서 난처하다, 괴롭다는 식으로 동정을 샀다"며 "(이번 일을 위해) 준비를 많이 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만약에 부탁을 거절하면 다른 방법으로 알아봐야 될 것 같다'고 완급조절까지 하는 일종의 '선수'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고기 '노쇼' 피해 업주 "목소리, 동일인 같다"

경북 영천에서 270만 원어치의 고기 노쇼 피해를 당한 업주가 공개한 고기 사진. 엑스(X) 캡처

이 같은 노쇼로 자영업자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올해만 여러 차례 있었다. 일부는 동일인의 소행으로 의심되고 있다.

이달 22일 경북 영천에서 자신을 군부대 상사라고 밝힌 인물에게 270만 원어치의 고기를 노쇼당한 자영업자의 사연이 알려졌는데, 해당 업주는 김씨 목소리를 들은 후 같은 사람으로 추측했다. 업주는 "전화기 웅웅거리는 것도 비슷하고, 목소리 자체가 비슷하다"며 "그때도 사투리 쓰거나 그러진 않았다. 제가 통화했을 때도 서울말 썼는데 제가 봤을 때 (같은 사람)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엔 자신을 육군 대위라고 소개한 남성이 제주도 한 음식점에 합동훈련을 이유로 사흘 치 도시락 400개를 주문한 뒤 잠적하는 일도 있었다.

주문 후 나타나지 않는 예약 부도 행위는 고의성이 입증되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270만 원어치 고기 노쇼 사건도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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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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