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서 암살된 하마스 지도자 하니예는 누구? 휴전협상 주도 정치 지도자

선명수 기자 2024. 7. 3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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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현지시간)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테헤란의 대통령실에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이란 대통령실 제공/AP연합뉴스

3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피살된 이스마일 하니예(62)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정치국의 최고 지도자이자 주요 분쟁 국면마다 하마스 측 협상 대표를 담당해온 인물이다.

그는 가자지구에서 군사조직을 이끌며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주도한 야히야 신와르와 함께 하마스를 이끌어온 양대 축으로, 이스라엘의 주요 제거 대상으로 꼽혀 왔다. 최근 몇 년간 카타르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정치 지도자로서 휴전협상을 포함해 하마스의 외교전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1962년 가자지구 북부 샤티 난민캠프에서 태어난 그는 가자 이슬람대학에서 아랍 문학을 공부하고 1987년 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 당시 하마스에 합류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이스라엘군에 여러 차례 체포돼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하마스 창립자 아흐메드 야신의 핵심 측근이자 조력자로 힘을 키워나갔고, 2004년 야신이 이스라엘군에 암살되자 복수를 맹세했다. 2006년 열린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의 대승을 이끌며 총리직에 올랐으나, 이후 선거 결과를 놓고 하마스와 파타(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주도하는 정당)가 갈등을 빚으며 해임됐다.

이듬해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파타를 축출하고 통치를 시작하며 하마스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하니예는 2017년 2월 가자지구 지도자 자리를 신와르에게 넘기고 같은 해 5월 하마스 정치국장으로 선출됐고, 카타르와 튀르키예를 오가며 망명 생활을 해왔다.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에는 이집트, 카타르, 미국이 중재하는 이스라엘과의 휴전 협상에 참여했다. 지난해 11월 말 성사된 일주일간의 휴전과 인질 교환을 위한 협상에도 그가 하마스 측 협상자로 나섰다.

지난 4월 휴전협상 와중엔 자녀 13명 중 아들 3명과 손주 4명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하니예는 당시 영상 메시지를 통해 “내 아들과 손주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하마스가 입장을 바꿀 것이라고 믿는다면 망상”이라고 이스라엘에 경고했다. 지난달에는 누나와 조카 등 가족 10명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잃었다.

일각에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가자지구에서 4만명 가까이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도 그와 정치국 지도자들이 해외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하마스에서 입지가 다소 줄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지난 5월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지난해 이스라엘 공격 당시 민간인 다수를 살해하고 납치한 혐의로 하니예와 신와르, 알카삼 여단을 이끄는 모하메드 데이프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가자지구 민간인을 희생시킨 전쟁 범죄 혐의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에 대해서도 동시에 체포영장이 청구됐다.

하마스 내 협상을 주도해온 하니예가 암살되며 최근 이탈리아 로마에서 재개된 가자지구 휴전협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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