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거품 꺼지나...올 첫 공모가 하단 ‘턱걸이’
기관 수요예측서 저조한 실적
올해 기술특례 상장한 새내기주
첫날 공모가 대비 손실 이어져
공모주시장 본격 ‘옥석 가리기’
연초 공모주 수익률 호조에 적자 기업들도 줄줄이 ‘묻지마 상초(상단 초과) 베팅’에 힘입어 공모가 상단 이상 가격에 증시에 입성했던 분위기와 상반된다.
최근 들어 ‘공모가 뻥튀기’에 따른 밸류에이션 부담을 이기지 못한 기술특례 상장기업 주가가 줄줄이 부진하자 공모주 시장에도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달 코스닥 입성을 노리고 있는 코어뱅킹 솔루션 기업 뱅크웨어글로벌이 공모가를 1만6000원으로 확정했다고 31일 공시했다. 이는 희망범위 하단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이에 따라 총 공모금액은 224억원으로 결정됐다. 뱅크웨어글로벌은 지난 23일부터 29일까지 5영업일간 수요예측을 진행하기에 앞서 공모가 희망범위로 1만6000~1만9000원을 제시했다.
올해 신규 상장한 종목 가운데 희망범위 상단을 밑도는 가격에 공모가를 결정한 건 리츠를 제외하곤 뱅크웨어글로벌이 처음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신규 상장한 35개 기업 가운데 시프트업, 이노스페이스, 그리드위즈, HD현대마린솔루션 등 4곳이 희망범위 상단에서 공모가를 결정했으며, 나머지는 모두 희망범위 상단을 훌쩍 넘겨 공모가를 확정했다.
뱅크웨어글로벌에 따르면 이번 수요예측에는 국내외 기관 투자자 827곳이 참여하며 경쟁률이 155.74대1에 그쳤다. 최근까지 뱅크웨어글로벌과 유사한 규모로 공모를 진행한 다른 기업 경쟁률이 1000대1 안팎을 기록했던 점과 대비된다.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신청 가격 분포를 살펴봐도 희망범위 하단인 1만6000원 이하를 써낸 곳이 49.5%로, 상단인 1만9000원 이상 가격을 써낸 곳(48%)보다 더 많았다. 1만6000원을 제시한 기관이 28.2%, 그 미만은 21.3%였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특히 규모가 작은 자문사들이 희망 가격 하단에 많이 들어갔다”며 “주관사들도 최근 파두와 이노그리드 사태 이후 밸류에이션을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관 투심 악화에는 일차적으로 뱅크웨어글로벌의 불투명한 실적 전망이 영향을 미쳤다. 기술특례 상장을 타진하고 있는 뱅크웨어글로벌은 2026년 추정 실적을 기반으로 기업가치를 산정했다.
2026년 매출액 1233억원에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80억원, 153억원을 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당기순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다음 동종업계 PER 29.07배를 적용했다.
그에 앞서 당장 올해 예상 실적으로는 매출액 735억원, 영업손실은 59억원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회사가 6월까지 잠정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매출은 239억원, 영업손실은 74억원에 달했다. 당초 예상한 수치보다 매출액은 크게 부족했고 영업손실은 더 컸던 셈이다.
하지만 직전까지 적자를 보던 다른 기업들도 수요예측에서만큼은 크게 흥행하며 줄줄이 상단을 웃도는 공모가를 확정했던 바 있다.
일례로 세포유전자 치료제 전용 배양배지 전문기업 엑셀세라퓨틱스는 1분기 기준 자본잠식률이 96.4%에 달했음에도 지난달 말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기존 희망범위 상단(7700원)을 크게 웃도는 1만원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당시 98%에 달하는 기관이 1만원 이상 가격을 써냈기 때문이다.
라이다 기업 에스오에스랩 역시 올해 2년 연속 적자가 예상됨에도 지난달 초 진행한 수요예측을 거쳐 희망범위 상단(9000원)을 훌쩍 초과한 1만1500원에 상장했다. 당시 1만2000원 이상 가격을 써낸 기관이 87%가 넘었다.
공모주 투자 과열이 조정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이유다. 최근 상장 당일부터 공모가 대비 손실을 기록하는 새내기주가 속출한 탓이다. 연초까지만 해도 상당수 기업 주가가 상장 첫날 가격상승 제한폭인 400%까지 오른 상태에서 며칠간 버텼던 모습과 대조된다.
다만 밸류에이션 부담을 덜며 공모주 수급에는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기술특례 상장사는 확실한 성장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투자자들이 외면하리란 인식이 생기고 고평가 논란 기업은 상장 철회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공모주 시장은 정해진 파이를 여럿이 나눠가지는 게임이어서 적절한 수준의 관심이 오히려 시장에는 더욱 긍정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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