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교섭 의무 없다니…하청노동자 노동3권 부정 말라 [왜냐면]

한겨레 2024. 7. 3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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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법원은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노조활동을 위축시킬 목적으로 하청업체를 폐업시킨 행위는 부당노동행위라며 원청의 실질적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그런데도 원청이 자신들은 사용자가 아니라며 하청노조와의 단체교섭을 해태하는 행위는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현실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노동3권이 원청에 의해 박탈당하고 있음에도 사법부조차 원청을 단체교섭 의무를 가진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헌법 수호 기관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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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6일 오후 국회 인근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결의대회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우리는 왜 노조법 2·3조 개정이 절실한가 ②

이병락 | 금속노조 현중사내하청지회장

2010년 대법원은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노조활동을 위축시킬 목적으로 하청업체를 폐업시킨 행위는 부당노동행위라며 원청의 실질적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이를 근거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2014년과 2016년 두 차례 임단협을 진행하면서 원청인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에 단체교섭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원청인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근로계약상 사용자가 아니라며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근로계약상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 직접 고용관계에 있지 않다고 해도 원청의 실질적인 지배 아래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사내협력사들은 절대적인 갑을관계에 종속되어 있으며 원청에 인력을 공급하는 업체에 불과하다. 사내협력사들은 원청으로부터 사무실, 설비, 공구, 소모품 등 사업의 운영에 필요한 대부분을 제공받고 있으며, 하청노동자들의 작업시간, 작업장소, 작업방법 등도 원청의 통제를 받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을 얼마나 고용할지 어느 정도의 임금을 지급할지는 원청의 가이드라인에 의해 정해지고 있다. 심지어 중대재해처벌법이 강화되면서 중요해지고 있는 안전보건 관리조차 업체 자체적으로 할 능력이 되지 않아 원청의 지원을 받거나 수십개 업체가 외주관리업체를 선정해 통합관리를 받는다. 사회통념 수준의 경영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사내협력사들이 하청노조와의 단체협약을 책임질 수는 없다.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아니라 표면적인 근로계약서상 고용관계로 사용자를 판단하면 원청 사업주의 불법적인 위장도급을 허용함으로써 헌법적 권리인 노동3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게 된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이미 두 차례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는데 모두 거부당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교섭을 진행하던 업체가 폐업하고 교섭위원들이 노조 탈퇴 협박을 받아 노조를 탈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처럼 원청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 사내협력사들과의 단체교섭은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사내협력사들은 교섭자리에서 원청의 결정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반복했고, 실제로 원청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가장 최근 사례인 현대건설기계 사내협력사인 서진이엔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청노조에 집단 가입한 서진이엔지 조합원들은 2019년부터 서진이엔지 사쪽과 단체교섭을 진행했고, 교섭 중 2020년 7월24일 폐업 통보를 받았다. 당시 서진이엔지 사쪽은 물량감소에 따른 경영악화를 이유로 폐업을 통보했는데 폐업 이후 현대건설기계의 물량이 증가하면서 거짓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청(현대건설기계)과의 교섭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사내협력사와만 교섭을 진행했는데도 하청노동자들은 집단해고되어 현재까지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하청노동자들의 노동3권은 경영의 독립성이 전혀 없는 사내협력사들과의 교섭으로 확보될 수 없다. 원청은 언제든 업체를 폐업시킬 수 있고, 이로 인해 하청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는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원청이 자신들은 사용자가 아니라며 하청노조와의 단체교섭을 해태하는 행위는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현실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노동3권이 원청에 의해 박탈당하고 있음에도 사법부조차 원청을 단체교섭 의무를 가진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헌법 수호 기관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사법부는 원청에 의한 부당노동행위가 사용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원청의 교섭의무도 인정해야 한다. ‘부당노동행위 따로, 교섭의무 따로’라는 식의 법 해석은 이 땅의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부정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조법 2·3조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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