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목숨과 국가기밀 중국에 팔아먹었는데 ‘징역 4년’…한동훈 “민주당이 법 개정 막았다”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lee.sanghyun@mkinternet.com) 2024. 7. 3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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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기밀 유출, 피해 추산부터 어려워
현행법은 ‘적국’인 경우에만 ‘간첩죄’
개정 시도 불발돼…전례는 징역 4년
미국은 모든 외국 간첩 처벌 가능해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이 정보사 소속 요원들의 신상을 유출한 정황이 포착돼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국방부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내색 못 하고 있어도 발칵 뒤집혔을 겁니다.”

대북(對北) 정보를 취급하는 국군 모 부대 소속 A씨는 최근 논란이 된 국군정보사령부의 신상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요원들의 안위만 생각하면 차라리 단순한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소 향후 10년간 한국의 외교·국방 정책이 모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A씨는 “기자들도 취재원 만드니 잘 알 것이다. 서로 민감한 정보를 제공할 만큼의 신뢰와 관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정보사 요원들이 활동하던 해외 기관·조직들이 그대로 있겠나. 다 내부를 솎아내고 검열을 강화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지 요원·정보원 다 재활용 못 해”
국군방첩사령부는 정보사 기밀 유출 관련 사안을 수사 중이다. [사진 출처 = 국방부, 연합뉴스]
정보사는 지난 30일 국회 비공개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소속 군무원이 우리 군 정보요원의 신상정보 등 군사 기밀을 중국 국적자에게 유출한 혐의로 수사받는 것과 관련해 “사건 인지 시점은 6월께이며 유관 정보기관으로부터 통보받아 알았다”고 설명했다.

정보사는 대북 군사정보 수집과 해외 첩보 업무 등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대북 공작과 휴민트(인적 첩보 체계) 활동을 주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요원의 신상이 유출됐다는 건 곧 국가 정보기관의 붕괴를 의미한다. 정보사는 기밀 유출을 인지한 뒤 해외 파견 인원 즉각 복귀, 요원 출장 금지, 시스템 정밀 점검 등 조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간사인 이성권 의원,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선원 의원의 브리핑에 따르면 정보사는 이번 기밀 유출이 해킹에 의한 것은 확실히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관련 사안은 국군방첩사령부가 수사 중이다. 군 당국은 해당 기밀이 북한에 넘어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조국해방전쟁승리’ 71주년을 맞아 ‘청년전위들의 계승의 행진’이 26일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 앞에서 진행되었다고 27일 보도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후속 조치가 이뤄졌다고는 하나, 신상 유출로 인한 피해 규모는 추산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국군기무사령부(현 방첩사의 전신)에서 근무했던 B씨는 “한 번 신분이 노출된 요원은 재파견이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B씨는 “요원들이 현지에서 활용하던 정보원들도 마찬가지”라며 “‘누가 누구와 친하게 지내던데 그 사람이 알고 보니 한국 요원이더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회색지대에서는 정보가 없으면 아무 의사결정을 할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복수의 취재원은 군 정보사 소속 요원들이 국가정보원의 해외 공작 업무를 일부 도맡거나 협력하는 때도 있다고 전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매경닷컴과 통화에서 “이 건(정보사 기밀 유출)에 대해 공식 입장이 없다. 보안 사항이라 답변해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만 말했다. 방첩사와의 공조 수사 여부에도 “드릴 말씀이 없다”고 일축했다.

한동훈 “민주당 제동으로 개정 무산”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법무부 장관일 때부터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처벌하는 개정안 등에 공을 들여왔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군은 물론,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도 해당 기밀이 유출된 1차 경로가 중국 국적자라면 ‘간첩 혐의’ 적용이 어려울 수 있단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행법(형법 98조)은 적국(북한)을 위해 간첩 활동을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에 대해서만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한다. 군사상 기밀을 누설한 자도 동일한 법령을 적용받는데 이 역시 적국인 경우에만 해당한다.

‘블랙 요원’의 신상이 공개되면 최악의 경우 요원과 그 가족까지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러나 2018년 정보사 공작팀장이 소속 요원의 신상 등 군사기밀 100여건을 일본과 중국에 팔아넘겼을 때도 ‘형법상 간첩’이 아니란 이유로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동료 목숨과 국가 기밀을 통째로 팔아넘긴 이의 형량은 징역 4년에 그쳤다.

관련 소식이 전해지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저걸 간첩죄로, 중죄로 처벌해야 맞나. 안 해야 맞나”라고 질타했다. 지난 국회에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형법(간첩법) 개정안이 4건 발의됐는데 “법안 심의 과정에서 민주당이 제동을 걸어 무산됐다”는 게 한 대표의 지적이다.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에 군사·외교 기밀 자료를 넘긴 혐의로 지난 2010년 6월 체포된 미군 일병 브래들리 매닝(당시 25세)은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 [사진 출처 = AP, 연합뉴스]
법무부 장관일 때부터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처벌하는 개정안 등에 공을 들여온 한 대표는 “이런 일이 중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벌어졌다면 당연히 간첩죄나 그 이상의 죄로 중형에 처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미국 하원 법령 정보센터에 따르면 미국은 적국을 비롯한 모든 외국 정부, 또는 외국기관·정당·부처·군 등의 소속이거나 이를 위해 간첩 활동을 하는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한다. 무기징역은 물론이고, 첩보 활동이 외국의 핵무기 개발, 군용위성 개발, 조기경보 시스템 개발 등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사형도 선고한다.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에 군사·외교 기밀 자료를 넘긴 혐의로 지난 2010년 6월 체포된 미군 일병 브래들리 매닝(당시 25세)의 경우 불명예제대, 일병에서 이병으로의 계급 강등, 봉급 일부 몰수,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

22대 국회서도 발의…“안보는 민생”
현행법(형법 98조)은 적국(북한)을 위해 간첩 활동을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에 대해서만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간첩 활동과 관련해 ‘적국’을 ‘외국’으로 수정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은 제22대 국회 개원 후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되기 전인 지난달 21일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지난달 24일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으나, 국회 파행 등으로 아직 상정되지 못했다.

법안을 발의한 주 부의장 등 10명은 “냉전체제의 종식과 포괄적 안보 개념이 대두되면서 과거와 달리 적국 개념이 모호해지고 있으며 간첩행위 역시 국가기밀에 국한되지 않고 갈수록 광범해지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또 “간첩의 양상이 변모함에 따라 국익 손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간첩죄의 적용범위를 시대 상황에 맞게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며 “국가의 외적 안전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발의 사유를 밝혔다.

국민의힘은 야권의 동의만 얻으면 해당 법안을 신속히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더불어민주당 등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한 대표는 “민주당이 이번 국회에서도 이런 입장이라면 간첩법은 통과되지 못할 것”이라며 “안보는 민생”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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