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에서 재현된 프랑스혁명 정신…콘서트 오페라 '피델리오'
(평창=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파리 올림픽이 한창인 30일 저녁,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야외음악당 '뮤직텐트' 무대에는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가 콘서트 오페라로 올랐다.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강조한 '자유와 평등, 온 인류를 향한 사랑'이라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이곳 평창에서도 연주자들과 관객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올해 21회를 맞이한 이 음악제의 타이틀이 '루트비히(Ludwig·베토벤의 이름)!'인 만큼, 베토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혁명의 정신은 이번 축제의 모든 공연을 관통하는 테마였다.
이날 10분가량 이어진 열광적인 커튼콜을 이끈 지휘자 아드리앙 페뤼숑은 마치 혁명 최전선의 투사처럼 몸과 마음을 던져 박진감 넘치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독일어 가사를 따라 부르며 극적인 제스처로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한국, 프랑스, 독일, 미국 유수 오케스트라의 수석 및 단원들과 페스티벌 선발 단원들로 구성된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획기적인 스피드 및 완급조절에 일사불란하게 호응하며 불꽃 튀는 연주를 선사했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악장 이지윤, 파리 국립오페라오케스트라 클라리넷 수석 김한을 비롯해 세계에서 활약하는 탁월한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매혹적인 오케스트라였다.
오늘날 오페라 공연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갈수록 커진다. 시대에 맞는 고전의 재해석을 위해 연극계에서는 이미 극의 텍스트 자체를 수정하고 새로 쓰는 작업이 일반화됐지만, '음악이 붙어있는 가사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불문율을 고수하는 오페라 분야에서는 이런 식의 변혁이 여전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피델리오' 공연은 이전과 달랐다. 베토벤의 음악에 충실하면서도 징슈필(Singspiel: 아리아와 중창 외에 연극처럼 대사가 들어있는 음악극 형식)의 대사 전체와 레치타티보의 상당 부분을 없애고, 아리아와 중창 및 합창 중심으로 공연을 구성했다. 극 중심으로 오페라를 보는 관객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는 방식이지만,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찾는 대부분의 관객이 음악 중심으로 오페라를 감상할 것이라는 사실은 음악제 전체의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공연 후 만난 관객들은 평소의 '피델리오'와 달리 지루한 순간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는 의견들을 피력했다.
물론 삭제된 장면의 공백을 연결해줄 장치가 필요하다. 보통 해설자를 내세우거나 자막을 사용하겠지만, 이번 '피델리오' 공연에서는 배우 김혜나가 해설을 낭송했다.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양성원 예술감독은 '피델리오'의 공연 형식을 고민하다가 옥스퍼드대 음악학 교수인 로라 턴브리지에게 "레오노레의 심경을 글로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턴브리지 교수는 옳은 일을 외치다가 억울하게 지하 감옥에 갇혀 죽을 날을 기다리는 남편을 구하러 나선 강인한 여주인공 레오노레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목소리를 깊은 울림을 주는 철학적 대사로 풀어냈다.
이 역할은 수난곡 장르의 복음사가(Evangelist·해설자)와 코러스(합창단)를 하나로 구현한 듯한 효과를 가져왔다. 줄거리의 빈 부분을 채워주는 동시에 인물의 내면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틀롤인 레오노레를 노래한 소프라노 이명주는 애타는 표정과 결연한 몸짓, 그리고 깨끗한 레가토의 고음과 장식음 테크닉으로 이 어려운 배역에서 좀처럼 듣기 어려운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절망에 찬 남편 플로레스탄의 2막 초반 아리아를 부른 테너 국윤종은 자유를 갈망하는 인물의 절절한 심정을 깊은 감동으로 전달하며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은 생존을 위해 아첨해야 하는 통속적이며 현실적인 간수장 로코 역을 맡아 인물의 특성을 강렬하고 설득력 있게 구현했다.
첫 등장 때 표정부터 악당 그 자체였던 바리톤 김기훈의 피차로, 데뷔 20년이 훌쩍 지나서도 여전한 젊음과 위트와 완벽한 테크닉을 보여준 소프라노 임선혜의 마르첼리네, 센 척하지만 속은 여린 배역을 세심하게 표현한 미성의 테너 김승직의 야키노, 깊이 있고 기품 있는 가창을 들려준 법무부 장관 베이스 돈 페르난도 역의 박영두까지 모든 역이 적역이었다. 여기에 국립합창단이 죄수들의 합창과 피날레 합창의 대활약으로 화룡점정을 이뤘다. 일신문화재단이 공연을 후원했다.
rosina0314@naver.com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코미디언 김병만 가정폭력으로 송치…검찰 "수사 막바지" | 연합뉴스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사망…"친구가 자택서 발견"(종합) | 연합뉴스
- [영상] "너무아프다" "드럽게 못난 형"…배우 송재림 비보에 SNS '먹먹' | 연합뉴스
- 3번째 음주운전 '장군의 아들' 배우 박상민 징역형 집행유예 | 연합뉴스
- [인터뷰] "중년 여성도 젤 사러 온다…성인용품으로 여성 욕망 '훨훨'"(종합) | 연합뉴스
- 멜라니아 "트럼프 사귈때 '골드디거' 뒷말…나도 잘나간 모델" | 연합뉴스
- 차에 치인 고양이 구조 요청하자 현장서 죽인 구청 용역업체 | 연합뉴스
- 8년 복역 출소 5개월만에 또…성폭행 40대 이번엔 징역 15년 | 연합뉴스
- '선우은숙 친언니 강제추행 혐의' 유영재 첫 재판서 "혐의 부인" | 연합뉴스
- 고교 화장실 불법촬영 10대 징역 6년…교사노조 "엄중 판결"(종합)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