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리 농산물 막걸리 위협하는 ‘향료 막걸리’
세금 크게 낮아져 국산 농산물 탁주원료 외면 우려
최근 정부가 밝힌 ‘향료 막걸리’ 인정 방침이 농업계와 전통주 업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그동안 탁주에 우리 농산물을 주재료·부재료로 사용했다면 앞으로는 이를 향료나 색소로 얼마든 대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탓이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발표한 ‘2024년 세법 개정안’에 주세법 시행령을 완화해 향료와 색소를 넣은 술을 주세법상 탁주의 제조 원료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재 막걸리에 향료나 색소를 넣을 경우 탁주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또 ‘막걸리’나 ‘탁주’라는 이름을 쓸 수도 없다. 개정안이 그대로 처리되면 이같은 향료 등을 넣은 막걸리의 세금 부담이 크게 완화된다. 가령 막걸리에 향료·색소를 첨가한 750㎖ 술의 출고가가 1000원이라고 할 때 현행 기타주류로 분류하면 세율은 과세표준의 30%이고, 과세표준은 출고가격의 81.9%에 해당한다. 이러면 세금은 246원이 된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라 탁주로 분류하면 ‘종량세(용량 대비 세금)’를 적용받아 1ℓ 당 44.4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750㎖ 기준 출고가 1000원인 탁주라면 주세는 33원에 불과하다. 기타주류와 약 7배 차이가 난다. 현재 우리나라는 주정·탁주(막걸리)·맥주에만 종량세를, 나머지 주종은 종가세(가격에 따라 세금을 부여)를 채택하고 있다.
기재부에선 발표 자료를 통해 “탁주에 허용가능한 첨가물 확대로 다양한 맛과 향 제품 개발과 생산을 지원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농업계와 전통주 업계에선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고품질쌀과 다양한 농산물 부재료를 넣은 막걸리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들 원료가 저렴한 향료로 대체된다면 우리 농산물 소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창업에 뛰어드는 젊은 양조인들이 다양한 농산물로 특색있는 막걸리를 만들고자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짓거나, 계약재배를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같이 농업 발전에 기여하는 전통주 산업에 세법 개정이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박사)는 “최근 전통주의 인기로 청년 양조인들이 농사를 직접 짓거나 지역 농산물 소비에 앞장 서던 상황”이라며 “소량의 과일만 사용하고 향료를 쓰면 소비자는 어떤 제품이 우리 농산물을 제대로 쓴 술인지 구분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에 30일 전통주 양조장 112곳과 한국술산업연구소는 관련 의견서와 반대 서명을 기재부에 제출했다. 한국술산업연구소는 ▲전통주의 전통성, 다양성 훼손으로 전통주 시장 붕괴 ▲향료 분류 기준 부재 ▲수입원료 사용한 막걸리 증가 등을 반대 이유로 꼽았다. 또 일부 대형 양조장에 치중한 정책 결정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업계에선 국산 농산물을 쓴 막걸리와 구분이 없어지면 가격 문제로 향료를 사용하는 곳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한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향료를 넣은 막걸리가 지금도 ‘기타주류’로 750㎖들이 한병당 1000~2000원선에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법 개정이 현실화하면 수입 과일이나 농축액 사용이 많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번 개정안에 향 사용 범위나 원료 사용량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산 농산물을 사용한 막걸리와 확실한 구분 체계를 만들거나 첨가량과 범위에 대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사케나 프랑스 와인은 품질유지와 하향평준화를 막고자 관련 표시 제도와 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류인수 한국술산업연구소장은 “우리 막걸리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우리 농산물을 대신해 향료와 색소를 쓰는 것은 명확한 차이가 있다”며 “향료 막걸리가 확산되면 우리 농산물로 술을 빚는 양조장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고 소비자의 혼선도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ju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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