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은 더빙으로 봐야지!···자막보다 더빙이 더 인기인 극장판 애니메이션들

김한솔 기자 2024. 7. 3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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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카그램> 스틸 컷. CJ ENM 제공.

‘난 역시 더빙이 더 벅차올라.’ 20대 A씨는 최근 영화관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이하 ‘코난’)을 보고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그는 10년 전부터 TV 애니메이션으로 명탐정 코난을 보며 자란 코난 팬이다. A씨는 코난이 개봉하자 일단 자막판으로 한 차례 관람한 뒤 더빙판으로 재관람했다. 두 가지 버전을 다 본 A씨가 택한 ‘더 좋았던 것’은 더빙판이다.

코난 관객 중에는 유독 A씨 같은 이들이 많다. ‘다른 영화는 무조건 자막을 보지만 코난은 더빙이 더 좋다’는 것이다. 보통 성인 관객을 타겟으로 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자막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코난은 왜 다를까.

TV 더빙을 보고 자란 2030이 선호
CJ ENM 제공

‘명탐정 코난’은 아오야마 고쇼 작가가 주간 소년 선데이에 30년째 연재 중인 추리 만화다. 악당 ‘검은 조직’에 의해 정신은 고등학생, 신체는 초등학생이 되어버린 고교 탐정 쿠도 신이치가 검은 조직의 정체를 파헤치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미스테리한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만화가 인기를 끌며 TV 애니메이션, 극장판이 순차적으로 제작됐다. 국내에는 2000년 KBS에서 TV 애니메이션을 들여온 것을 시작으로 2004년부터는 투니버스에서 장기 상영됐다. 지금 20대, 30대가 돼 극장을 찾는 코난 팬들은 대부분 A씨처럼 어린 시절에 ‘더빙 코난’을 보고 자란 이들이다. A씨는 “아무래도 더빙을 오랜 기간 봤더니 더 익숙하고, 더 재밌었다”고 했다.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의 괴도 키드. CJ ENM 제공.

이들에게는 ‘쿠도 신이치’라는 이름보다 더빙판 이름인 ‘남도일’이, 신이치의 소꿉친구이자 여자친구인 ‘모리 란’보다 ‘유미란’이 더 친숙하다. 코난 역 강수진 성우를 비롯해 오랫동안 같은 역을 맡아 연기한 한국 성우진들에 대한 신뢰와 선호도 있다. 코난 팬 B씨는 “갑자기 일본 성우 목소리를 들으면 이질감이 느껴져 집중이 안 된다”며 “자막의 불편함보다는 익숙한 목소리의 부재가 커서 더빙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때 코난 단행본 만화책을 100권 가까이 모으기도 했던 코난 팬 C씨도 “어릴 때부터 보다 보면 성우들 목소리와 톤, 한국 이름에 익숙해진다”며 “세계관은 이어지는데 이름이나 목소리가 일본어로 바뀌는 건 어색하다”고 설명했다.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 스틸 컷. CJ ENM 제공.

더빙 선호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배급사인 CJ ENM에 따르면 코난은 지금까지 더빙판이 1만8598회, 자막판이 1만2792회(7월 30일 기준) 상영됐다. 6대 4 정도의 비율이다. 이영주 CJ ENM 배급팀장은 “작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10~20대에게 소비되는 극장 애니메이션은 자막판의 상영 비율이 80% 이상을 차지한다”며 “코난의 경우 더빙된 TV 시리즈를 보고 자란 세대들에게 더빙이 더 친숙하게 느껴져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친숙함 외에 더빙 자체가 주는 매력도 있다. 더빙은 원문을 100% 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로컬라이징(현지화)을 한다. 지금 상영되는 ‘코난’도 그렇다. 자막판에서는 괴도 키드가 ‘엉터리 교토 사투리’를 쓰지만, 더빙판에서는 ‘이 몸이~’라는 이상한 말투를 쓴다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이런 로컬라이징은 그 자체로 성우의 재치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A씨도 “자막판을 먼저 보고 더빙판을 봐서 서로 다른 점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했다.

코난이 남도일이라면, 슬램덩크는 강백호지

이런 현상은 지난해 개봉해 487만 관객을 동원한 농구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도 나타났다. 배급사 NEW에 따르면 슬램덩크의 자막판은 11만4091회, 더빙판은 12만3561회 상영됐다. 영화가 한창 흥행하던 지난해 3월1일에는 더빙 상영 비율이 58.8%까지 올랐다. 당시 NEW 유통전략팀은 ‘슬램덩크를 봤던 세대들에게는 자막보다 더빙이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보고 처음부터 자막과 더빙 비율을 5대5로 요청했다가, 이후 관객 수요에 맞춰 그 비율을 조금씩 조정해 가며 운영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 컷. NEW 제공.

30대 슬램덩크 팬인 D씨도 일부러 더빙판으로 영화를 봤다. 주변엔 자막판과 더빙판을 둘 다 본 이들도 있었지만, D씨는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원작에서 주인공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한국에서는 ‘강백호’라는 이름으로, 그가 다니는 학교인 ‘쇼호쿠’는 ‘북산’으로 로컬라이징됐는데 D씨에겐 이 이름이 원작보다 더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D씨는 “다른 콘텐츠는 원어로 소비하지만 슬램덩크는 다르다. 내게 슬램덩크는 ‘북산’이고 ‘강백호’”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개봉한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은 개봉 2주 만에 59만 관객을 동원 중이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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