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년 전 마을 수몰 위기 막았는데 다시 댐 건설이라니"
"사방이 댐으로 막혀 육지 속 섬 신세…정부는 전면 백지화해야"
(양구=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어제 뉴스를 보고 너무 분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20여년 전에도 마을 위에 댐을 건설한다기에 시가행진을 벌이며 반대 투쟁을 벌였는데 다시 댐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눈앞이 캄캄합니다."
31일 강원 양구군청 인근에서 만난 주민 이모(58)씨는 댐 건설에 관한 입장을 묻자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양구 방산면이 고향이다. 이곳은 2001년 정부의 밤성골댐 건립 계획으로 통째로 물에 잠길 위기에 처했던 마을이다.
환경부는 기후위기가 현실화함에 따라 홍수·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미래 물 수요를 맞추고자 전날 전국에 건설 예정인 '기후대응댐' 후보지 14곳을 발표했다.
댐 건설 예정지에 양구 방산면 수입천이 포함되자 주민들은 앞다퉈 정부의 추진 계획을 성토하며 전면 백지화를 촉구했다.
농민 홍모(64)씨는 "수입천은 큰비에도 수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며 "몇 년 전 폭우에 직연폭포 밑 교각까지 물이 찼어도 홍수가 없었을 정도며 마을 위에 물을 가둬두는 것보다 물이 파로호로 흘러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양구읍에서 식당을 하는 김모(55)씨는 "수입천은 화천댐으로 흘러드는 지류로 유입 수량이 줄어드는데 댐으로 막는다면 화천댐이 쓸모없어지는 셈"이라며 "다시 댐을 짓는다면 양구는 온갖 댐으로 둘러싸여 섬 신세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훼손되는 것을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공무원 A씨는 "수입천은 백두대간에서 유일하게 남북을 흐르는 하천"이라며 "사람 손길이 미치지 않아 보수 공사나 골재 채취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 하천 습지의 보고라고 할 수 있기에 댐 건설 계획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구군에 따르면 신규 댐 예정지인 방산면 수입천은 두타연 계곡이 위치한 곳으로 60여년간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해 생태환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비무장지대(DMZ)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며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와 산양의 최대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풍부한 자연환경과 수려한 경관에 금강산 가는 옛길을 품고 있어 매년 관광객 수만 명이 찾고 있다.
신규로 건설될 댐의 총저수용량은 1억t으로, 8천t 용량의 의암댐보다 훨씬 큰 규모다.
군은 댐이 건설되면 고방산 인근에 자리한 10만여㎡ 농지와 주택, 펜션, 창고 등의 건물이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하며 수입천 상류와 송현2리 마을 상당수가 직접적인 영향권에 포함될 것으로 판단했다.
또 열목어와 산양의 최대서식지가 사라지고 천년 고찰인 두타사가 모두 수몰될 것으로 분석했다.
주민들은 방산면을 중심으로 비상책위원회를 구성, 군청 등 관계기관과 함께 댐 건설 백지화 투쟁에 나설 전망이다.
20여년 전에도 주민들은 비대위를 구성, 김대중 대통령에게 호소문을 보내고 삭발 투쟁, 가두행진, 범군민 궐기대회, 주민 토론회 등을 전개했다.
당시 이들은 "화천댐과 소양댐의 건설로 육지 속의 섬으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또 댐이 건설될 경우 마을 전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지역 존립을 위협할 소지가 높으며 산양과 열목어 등이 서식하는 생태계가 수몰될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밤성골댐 건설 계획은 취소됐었다.
서흥원 군수는 "양구 주민들은 소양강댐 건설 이후 고통을 감내해 왔다"며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양구군에 또 다른 댐을 건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환경부는 다음 달부터 지역 설명회, 공청회 등을 통해 주민에게 궁금한 점과 우려 사항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소통해 나가면서 관계기관과 충분한 협의 과정을 거칠 계획이다.
협의가 마무리되면 '수자원의 조사·계획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8조에 따른 하천유역수자원관리계획에 댐 후보지를 반영하고 댐별로 기본구상, 타당성 조사, 기본계획 수립 등의 후속 절차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댐의 위치, 규모, 용도 등이 확정된다.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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