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당한 ‘하마스 1인자’ 하니예는 누구…난민에서 최고층까지

이예지 동아닷컴 기자 2024. 7. 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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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영상에서 “순교라는 대가 치를 준비돼 있어”
뉴시스
31일(현지 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 당한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62)는 수년간 하마스의 중요한 대외 협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하니예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자 이란을 방문했다가 테헤란 거처에서 암살됐다.

CNN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하니예가 알자지라 방송과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날짜를 밝히지 않는 영상을 공개했다. 하니예는 이 영상에서 운명을 예상하듯 “우리는 책임감의 무게를 느낀다”며 “팔레스타인을 위한 순교라는 대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하니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샤티 난민캠프 아스칼란에서 난민 출신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는 유엔이 운영하던 학교에 다니며 가자 이슬람대에서 아랍 문학을 공부했다. 당시 하마스의 전신인 이슬람 학생단체에 가입해 학생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 가자 난민캠프 출생...2017년부터 정치활동 진두지휘

하니예는 1987년 제1차 인티파다(민중봉기) 시위에 가담했다가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구금됐다.1988년에 같은 이유로 투옥됐다. 이 과정에서 하니예는 이스라엘에 맞서는 하마스에 경도돼 가입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니예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이스라엘에 폭탄 테러범을 보내는 등의 형태로 무장투쟁을 했다. 이 밖에도 그는 1990년대 초반 “정당을 구성하는 것이 하마스가 신흥 개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며 하마스가 정파로 진출하는 것을 지지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니예는 하마스의 창립자인 아흐메드 야신의 측근이자 조력가로 활동하며 힘을 키워 나갔다. 2004년 창립자 야신이 이스라엘의 습격으로 숨지자 “울 필요가 없다”며 복수를 맹세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이스라엘과 전면 투쟁을 선언했다. 당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통치권을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에 넘겼기 때문이다.

그러던 2006년 그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의 대승을 이끌며 총리직에 올랐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자치정부와 갈등을 빚으며 곧 해임됐다. 이후 하마스가 일방적으로 가자지구 통치를 시작하며 그는 가자지구 내 하마스 지도자로 활동하게 됐다. 특히 2007년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 충성파들을 축출한 뒤 가자지구를 완전히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2월에는 야히야 신와르에게 지도자 자리를 넘겨준 뒤 같은 해 5월 6일 하마스 정치지도자로 선출됐다. CNN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2018년 하니예를 테러리스트로 지정했다. 하니예는 최근 몇 년 동안 카타르에 머물며 카타르와 튀르키예를 중심으로 하마스를 이끌었다.

하니예는 이스라엘과의 전쟁 과정에서 세 아들을 잃는 등 비극도 겪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는 4월 휴전 협상 중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13명의 자녀 중 세 아들과 손주 네 명을 잃었다. 하지만 당시 그는 “팔레스타인 국민의 이익이 모든 것보다 우선”이라며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또 “내 아들과 손주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하마스가 입장을 바꿀 것이라 믿는다면 이는 망상”이라고 이스라엘을 향해 경고하기도 했다. 누나와 조카 등 가족 10명도 지난달 이스라엘의 습격으로 사망했다.

뉴시스

● “非우호적 협상가에 사치스러운 인물” 비판도

하니예는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분쟁에 부딪힐 때마다 협상가로 활동했다. 다만 협상에 비우호적 입장을 취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그는 2021년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치러진 ‘11일 전쟁’의 휴전 협상에도 관여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일 발발한 뒤에도 이집트, 카타르, 미국이 중재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협상에서 협상자로 나섰다.

일각에는 그가 10년 넘게 하마스 최고위층으로 지내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치스러운 인물이라고 비판도 있다. 그가 정치국장으로 활동하며 가자지구 밖 카타르와 튀르키예 등을 오가며 사치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과거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이스라엘군의 계속된 폭격으로 가자지구 주민들의 인도주의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하니예는 카타르와 튀르키예를 오가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하니예 등 3명의 하마스 지도부에 대해 체포 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카림 칸 ICC 검사장은 이들에게 지난해 10월 기습공격으로 민간인 수백 명을 숨지게 하고 245명의 인질을 붙잡아 둔 혐의를 적용했다. 여기에 인질들이 비인도적 환경에 갇혀 있으면서 강간 등의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증거도 제출했다.

이날 하니예의 사망으로 휴전협상 중이던 중동 정세는 더욱 혼란에 빠질 전망이다. NYT는 그의 죽음에 대해 “중동 지역이 추가로 갈등에 빠질 위험이 있는 심각한 타격”이라고 평가했고 CNN은 “그의 죽음은 휴전 협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이예지 동아닷컴 기자 lee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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