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3년, 인권위가 죽지 않고 살았으면”…인권위원장 후보 사퇴한 한상희 교수의 당부
“지금은 자리가 아니라 인권위원회 존재 자체를 걱정하고 이를 위해 싸워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 중 1명으로 추천됐지만 지난 26일 사퇴했다. 한 교수는 지난 3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인권위 ‘내부’로 들어가기보다 ‘외부’에 남기로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참여연대 공동대표이기도 한 한 교수는 인권위 후보추천위원회가 오는 9월 퇴임하는 송두환 인권위원장의 후임으로 대통령에게 추천한 후보 5인에 포함됐다. 타인 추천으로 인권위원장 서류심사에 입후보하게 된 한 교수는 심층질의서에 답할 때부터 고심이 깊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인권위 상황, 특히 정치적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안에 들어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이 회의 운영 및 의결 방식 등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파행이 계속되는 인권위 상황과 정부가 인권위 예산과 인사를 틀어쥔 구조에선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 교수는 최영애 전 인권위원장이 최종 지명된 2018년에도 위원장 후보에 들었다. “그때는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았죠. 이번하곤 달랐어요.” 한 교수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는 인권교육원을 제대로 만드는 것, 현재 자유권에 한정된 인권위의 권한을 사회권까지 확장해 ‘기후위기’ 등 새로운 의제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변화를 꾀하는 것을 꿈꿨다고 했다.
한 교수는 “인권위는 기본적으로 다수 및 정치 권력과 각을 세워야 하는 조직”이라고 했다. 그는 “인권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갖지 못하는 사람의 목소리이자 비명’”이라고 말했다. 2003년 인권위가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를 내릴 때 꾸려진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당시엔 권위주의 체제에서 국가보안법 피해를 본 이들의 목소리를 인권위가 대신한 것이었고, 지금은 주거약자나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 인권위의 역할”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이번 정부에서는 인권위가 정치 권력의 압력을 버텨내기 어려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평가했다. 현 정부가 ‘인사권’을 무기로 인권위에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했다. 한 교수는 “현 정부는 ‘인권’이라는 두 글자 자체를 선호하지 않거나 혹은 때에 따라 배척하는 지경이다 보니, 인권위의 권한을 질적으로 확장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자신의 지론대로 인권위 내에서 정치 권력과 각을 세우며 일을 하는 게 인권위라는 기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했다. 그는 “안보다는 밖에서 인권위가 제대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게 옳겠다고 결론 내렸다”고 했다.
“앞으로 3년 동안 인권위가 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2001년 출범한 인권위가 크고 작은 내홍을 버티고 성장하는 모습을 쭉 지켜본 그의 바람은 소박함을 넘어 절박했다. 새로 임명될 인권위원장 임기 3년,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인권위가 버텨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한 교수는 위원장과 위원으로 누가 오든 인권위 사무처 직원 및 조사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현병철 위원장 시절 6년 동안 인권위가 무력화됐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인권위 자체를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더 저하된 상황”이라면서 “그래도 지혜를 모아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한 교수는 “저는 밖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며 인권위 관계자들을 향해 “버텨주시라”라는 당부를 전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7261803001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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