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중환자만 맡는 4차병원으로 승격…“환자쏠림 완화” vs “경영 악화” 찬반 갈려

허지윤 기자 2024. 7. 3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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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의료개혁위, 3차→4차 체제 논의
대형병원은 중증환자만, 환자 쏠림 개선 기대
의료계 “환자 구분 모호, 경영 악화 우려”
지난 7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진료실 앞. /뉴스1

정부가 대형병원인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를 중증환자 치료와 연구만 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안팎에선 빅5 병원에 전국 환자가 몰리는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무너진 지방 의료체계를 되살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과 함께 상급종합병원들의 경영 악화와 의료 현장 혼란이 더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31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따르면 전국 상급 종합병원(대형병원) 47곳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빅5를 현행 3차에서 중환자만 이용할 수 있는 4차 병원으로 승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의료개혁특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의료전달체계 정상화 전문위에서 4차 병원 승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4차 병원의 신설·승격을 담은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안은 이르면 다음 달 말 발표될 것으로 전해졌다.

◇”빅5 환자 쏠림 해소, 지역 의료 회복”

기존 의료 체계는 1차 의원·보건소급, 2차 병원·종합병원급, 3차 상급 종합병원으로 분류돼있다. 정부는 4차 병원 신설안은 중증이 아닌 환자들도 빅5 대형병원에 몰려 정작 중증 환자의 치료가 뒤로 밀리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빅5 환자 중 중증 환자 비율은 60%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현행 체제로는 빅5 쏠림이 심화해 환자와 의사 모두 빅5로 몰려 지역 의료가 고사하는 수순”이라며 “4차 병원 신설로 지역 의료 고사 상황을 바꿀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4차 병원은 빅5 병원에서 중증 필수의료 분야의 맥을 잇게 하려는 목적도 깔려있다. 의대 증원 정책 이전부터 필수의료 분야는 소위 의대생 기피과로 분류돼 전문의 배출이 감소했다.

신 교수는 4차 병원이 중증 환자에만 집중하면 높은 전공의 의존도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빅5가 중증 환자를 전문적으로 맡는 만큼, 수련을 마친 전문의·전임의 중심으로의 전환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시각이다.

현재 빅5 병원의 전공의 비율은 40%로, 미국, 일본 같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의료계가 집단 행동에 나설 때마다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앞섰다. 의료 체제 개편안에 찬성하는 쪽은 전국 비중증 환자의 쏠림현상과 전공의 의존도를 줄이면서 빅5 병원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막대한 재원 필요…부작용 클 것”

하지만 의료계에선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우선 충분한 재원 마련 없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2022년 기준 빅5 병원의 한 해 평균 의료 수익은 병원당 1조 6300억원이다. 중증 환자 중심 체계로 개편되면 비(非)중증환자 관련 직간접 수입이 감소한다. 의료계는 이를 보전하는 데 매년 최소 3조원 이상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다. 오는 2028년 고갈될 예정인 건강보험 재정 외에도 세출과 기금을 통한 조달이 필요하다.

빅5 병원 소속 신경외과 A 교수는 “빅5 병원이 중증질환군 환자만 봐도 경영 압박 없이 환자 치료도 하고 연구 성과도 내려면 중증질환 환자 수가를 현실화하는 게 선결 조건”이라며 “현재 국내 신경외과 분야 수가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평균에 해당하는 일본의 5분의 1에서 4분의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4차 병원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려면 이를 뒷받침해줄 정부 보조금에 엄청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4차병원이 환자 쏠림 현상을 비롯한 의료체계 문제를 개선하기 어려울 것이란 반박도 이어졌다. 빅5 병원으로 가야 하는 중증질환 환자와 가서는 안되는 환자 구분을 두부 모 자르듯 할 수 없는 데다 환자들의 자유 선택권을 제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도권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 B 교수는 “모든 암환자가 중증질환군 환자”라며 “암 전 단계나, 관해율(암세포 사멸율) 달성 이후 재발을 관찰해야 하는 환자도 추적과 치료가 중요한 환자 군인데 이들을 어떻게 구분할 거냐”고 비판했다. 그는 “4차 병원을 두고 중증환자들을 전담시키면 전국 중증질환군 환자들이 다 빅5 병원으로 가려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빅5 병원 소속 신경외과 C 교수는 “어떤 환자를 중증으로 분류할지도 애매한데 의료 체계를 개편해 제도화하면 자칫 환자의 치료 사각지대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급성 뇌경색이 와서 수술을 한 환자는 대표적인 중증환자인데, 이런 환자는 심장질환, 당뇨병 같은 질환을 동반한 경우가 많다. C 교수는 “빅5 병원에서 급성 뇌경색 수술을 받고 나면 다른 질환 치료는 지역 병원을 다니라고 보내도 결국 지역 병원 시스템에서 감당이 안돼 다시 병원을 찾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말했다.

병원의 경영난도 우려됐다. 고용 인원 규모가 큰 빅5 병원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데다 중증환자의 빅5 병원 쏠림 현상으로 지방대병원의 경영난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재정 부담은 계속 커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 소재 빅5 병원 소속 D 관계자는 “의료 수가를 정상화, 현실화하지 않고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그리는 방안대로 실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 증원 정책으로 의정 갈등이 불거진 후 빅5 병원도 경영 적자를 겪고 있고, 채용도 안하고 있다”며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개편되면 당장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직 등 기존 일자리를 대대적으로 축소하는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이런 후폭풍을 감안한 것이냐”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 관련 의견 수렴 중으로,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며 “의료개혁특위 논의를 거쳐 마련‧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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