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규제’가 키운 티메프 사태, 우왕좌왕 공정위
공정위원장 “정산대금 유용 미처 생각 못해”
플랫폼 업체 갑질 막는 ‘온플법’ 필요성 제기
플랫폼 업체들의 대금 정산 주기가 지나치게 길어 입점 업체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는 티몬·위메프 사태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제기돼왔다. 그럼에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율 규제’만 강조한 채 뒷짐지고 있었고, 결국 이번 사태의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율 규제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입점업체에 대한 플랫폼 업체의 갑질을 막는 법안 처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3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관계부처 TF를 통해 정산 주기를 의무화하고 정산 대금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 중이다. 정부 부처 한 관계자는 “TF에서 공정위 소관법률인 대규모유통업법이나 전자상거래법을 개정할지, 금융위원회 소관법률인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할지를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법 모두 플랫폼 업체를 규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대규모 유통업법은 대형마트·백화점 등 기존 유통업체에 초점이 맞춰졌고, 전자상거래법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도입된 만큼 정산주기 등을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다. 지급결제대행에 초점을 맞춘 전자금융거래법은 플랫폼 업체의 갑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따라 부당하게 대금 정산 시점을 미루는 등 플랫폼 업체의 갑질을 막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제정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정부의 검토 대상에는 사실상 빠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이 법안은 ‘자율 규제’를 강조하는 현 정부 들어서 폐기됐다. 대신 윤석열 정부는 플랫폼 업체의 독과점을 막는 플랫폼경쟁법(플랫폼법)을 추진 중이다.
22대 국회에는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중이다. 이 법안은 온라인 플랫폼 중개서비스의 내용, 기간 및 대가 등에 관한 내용을 표준 계약서로 마련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플랫폼 업체가 입점업체에 불이익이 되도록 거래조건을 설정·변경하거나 이행과정에서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제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 공정거래법 전문가는 “공정위가 플랫폼의 독과점 문제에만 집중하고, 갑질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플랫폼 업체를 규율하는 데에는 모두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공정위가 정산 주기를 자율 규제에 맡겨 결과적으로 피해 규모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미 플랫폼 입점 업체가 매출 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건수가 5년간 약 1만3000건, 대출 규모는1조813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플랫폼 업체가 대금 정산을 늦게 하면서 입점 업체가 은행 대출을 받은 것이다. 위메프 입점 업체 대출액은 2554억원으로 쿠팡(1조3322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그런데도 당시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쿠팡이 연내에 시스템을 만들어 (정산) 시기를 단축하기로 했다”며 “다른 플랫폼 업체들은 그리 기간이 길지 않다”고 했다.
공정위가 관련 규제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반 년도 되지 않아 ‘티메프’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업체 자율에만 맡긴 공정위의 안일한 태도로 입점 업체의 피해만 키운 셈이다. 지난 30일 국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한 위원장은 “정산 주기와 관련해 당사자 간의 계약을 통해 정하도록 명시하는 자율 규제를 추진했다. 정산대금 유용 문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번 사태 초기에도 공정위는 ‘시스템 오류’라는 위메프 측의 입장을 믿어 별다른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지난 24일 국회에서 한 위원장은 “정산 지연과 미정산 문제는 민사상 채무 불이행 문제라 공정거래법으로 직접 적용이 어렵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 다른 공정거래법 전문가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민사 문제인 것은 맞지만, 기존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때는 충분히 규율 가능하다”며 “공정거래법 23조 자체가 민사 영역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행위를 제재하는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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