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식당에선 당신의 고민이 ‘오늘의 메뉴’ 됩니다

한겨레21 2024. 7. 3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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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의 플레이리스트]소셜다이닝으로 마음의 허기 채워주는 ‘고요식당’ 셰프 이지민의 플레이리스트
고요식당 모습. 이지민 제공

인류의 가장 원형적 미디어는 요리라는 생각을 한다. 옛날 마을에는 음식을 매개로 사람들이 모이곤 했다. 미디어는 계속 변화해왔지만 ‘음식’이라는 원형적인 매개체는 아직까지 이어져온다. 오히려 ‘미래의 음식’으로 여겨지던 캡슐형 간편식은 처참하게 사라졌다.

이번 글에서는 요리라는 매체로 지난 3개월 동안 50번 이상 소셜다이닝(식사 매개 사교 모임)을 준비한 지민님의 ‘고요식당’을 소개한다.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어쩌면 디지털 시대에 잃어버린 진정한 연결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요식당은 아주 조용한 1인 심야 식당 같은 곳인가요?

“사실 저는 고요한 편은 아니에요.” 지민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인터뷰 장소를 가득 채웠다. “고요식당이라는 이름에 ‘고민을 요리해준다’는 뜻을 담았어요. 몸의 허기뿐만 아니라 마음의 허기까지 달래줄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어요.”

고요식당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식사·대화하고, 그날의 고민에 따라 메뉴가 달라진다. 다이어트가 고민이라면 건강식을, 타지 생활을 오래 한 유학생들에게는 집밥 스타일 요리를 준비한다. 흔히 식당 창업에서 가장 신경 쓰는 효율과 회전율보다는 한명 한명을 돌보는 데 공을 들인다.

―첫 창업인데 ‘음식’과 ‘사람’ 둘 다 관리해야 하는 어려운 소셜다이닝을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요리도 사람도 ‘시간’을 쏟는 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맛있는 음식은 정말 많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제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제가 그만큼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더라고요.”

지민님이 종종 5시간씩 요리하는 경우도 옆에서 지켜봤다. 손님의 고민에 맞는 음식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냄새, 텍스처, 그리고 식탁보까지 오감을 모두 충족시키려 노력한다.

“결국 사람을 위해 쏟은 마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지민님은 음식에 쏟는 시간과 정성을 아까워하지 않듯이,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도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원래는 지금 살고 있는 코리빙하우스에서 사람들에게 나눈 음식이 입소문 나서, 좋은 기회에 공간을 얻어 오랫동안 꿈꿔왔던 창업을 하게 됐어요. 내가 세상에 도움되는 일을 한다면, 결국 내게 돌아와서 선순환되는 것 같아요.”

―고요식당은 앞으로도 강남 언덕 꼭대기에서 만날 수 있나요?

“손님들이 올라오실 때 힘들어하더라고요.(웃음) 제2, 제3의 고요식당 사장님들이 저처럼 창업을 망설일 때 용기를 드리고 싶어요.”

지민님은 고요식당이 많은 곳에 확장돼 소셜다이닝 문화가 더 퍼지기를 바란다. 어느덧 요리 10년차인 그는 고등학생 때 하루 15시간씩 요리하다 허리 디스크도 얻는 등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고강도 노동이 수반되는 업무 환경이다보니 요리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함께 꿈을 키운 친구들 10명 가운데 1명꼴로 요리사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요리에 쏟아부은 정성이 과연 의미 있는 건가’라는 회의가 종종 들더라도, 음식과 사람에게 들인 마음은 돌아오기 마련이라고, 제가 겪었기 때문에 꼭 함께 나누고 싶어요.”

요리는 시간과 정성을 담는 미디어다. ‘함께 밥을 먹는 것’이야말로 인공지능(AI) 시대 마지막으로 대체되지 않는 인간다움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민님의 플레이리스트는 기술로서의 요리보다는 사람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하다.

김수진 컬처디렉터

이지민(인스타그램 @goyo_dining)의 플레이리스트

플레이리스트 3 썸네일 유튜브 갈무리

1. 스노우폭스북스: 사장학 개론

https://youtu.be/8eGDJNBzysM?si=btvQ_GzjtuBa3kGy

‘사장의 무게’를 많이 배웠어요.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하고 여행 중에도 업무를 해야 하는 현실, 견뎌야 할 스트레스까지. 그럼에도 사장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이 마음에 와닿았죠. 영상을 보고 사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열정을 새롭게 다질 수 있었습니다.

2. 소울정: 5천 명에게 주고 깨달은 선물의 인문학

https://youtu.be/A40ixgv8kxA?si=sI3VTlrkrrsHL-YS

한 명에게 선물하더라도, 그 사람의 취향을 고려하는 정성. 선물은 곧 시간이고, 사람들이 시간이 느껴질 때 감동한다는 점. 이 모든 것이 제 요리 철학과 맞닿아 있어요. 고요식당에서도 손님의 고민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에 맞는 ‘선물 같은 요리’를 준비하려고 노력합니다.

3. 이연: 숨어 있는 귀인을 알아보는 방법

https://youtu.be/lbaDdugpUgs?si=FPr9_3qe5bTFbXaq

이연님은 일상 속에서 느낀 통찰을 정말 쉽게 풀어내요. 특히 인간관계에 대한 부분이 와닿았어요. 결국 모든 것이 ‘사람’과 직결된다는 점. 제가 고요식당을 통해 이루려는 바와 일맥상통해요. 저도 손님들을 단순한 고객이 아닌 ‘숨어 있는 귀인’으로 대하기 시작했어요. 언젠가 저도 요리하는 과정을 담으면서 이런 통찰을 풀어낼 날이 오겠죠?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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