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이 낳은 참사"···국회로 간 티메프가 남긴 숙제들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구영배 큐텐 대표)
"다시 한번 송구하다는 말씀드린다."(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제도 미비점에 대해 사과드린다."(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이날 회의에는 구영배 큐텐 대표가 티메프 사태 발발 이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등장해 이목이 집중됐다. 최소 수 천 억원에서 최악의 경우 1조원대에 이를 수 있다는 소비자·판매자(셀러) 피해 사태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큐텐은 티몬과 위메프 모기업이자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다.
회사 측은 6~7월 미정산 금액을 포함한 전체 피해 규모는 아직 파악 중이라 했지만 이날 질의에 따르면 최대 조 단위에 이를 수 있다는 추산이 나왔다.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셀러에 대한)결제가 평균 55일 걸린다. 두 회사 월 매출액 평균이 한 3000억원은 되나"라고 물으며 "그럼 55일, 약 두 달 간 한 6000억원 정도가 중간에 결제가 안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정산지연 금액이 지난 25일 기준 2134억원이 될 것으로 추정했지만 6~7월 미정산분까지 합치면 그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구 대표를 향한 질의 대부분은 소비자로부터 받아 셀러에게 가지 못한 자금의 향방을 묻는 데 집중됐다. 구 대표는 미국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 인수에 쓰인 돈 400억원에 그룹 내 판매대금이 포함된 걸로 알고 있다면서도 한 달 내 다시 상환했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횡령 의혹도 제기됐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자금경색으로 판매대금을 제대로 지급하기 어려운 사정을 구 대표가 충분히 인지했을 것으로 본다"며 "그러면서도 셀러들과 계약을 유지하고 물품 판매를 계속해 온 것은 의도된 사기 행위"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소속 윤한홍 정무위원장은 구 대표에게 "피해자들에게 갚아줄 돈이 어디에, 얼마나 있느냐가 관건인데 왜 그 답변을 안하나"라며 "지금 구 대표는 결국 돌려막기하다 부도가 났고, 1조원이나 되는 피해가 발생했는데 그 돈이 어디갔는지 모르겠다, 없다는 것이다. 이 돈을 찾아내야 피해자 대책이 된다"고 했다.
애초에 큐텐이 자본잠식 상태였던 티몬과 위메프를 사들일 때부터 이번 사태가 예견됐던 일이란 지적도 나왔다.
유동수 민주당 의원은 "재무제표에 따르면 티몬과 위메프의 올해 7월까지 누적 결손액이 1조2000~1조3000억원 정도로 보인다"며 "이 돈은 조달이 불가능한 돈이다. 자본금으로 넣지 않으면 다 외부에서 수혈한 돈이다. 제가 볼 때 1조3000억원 이상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인건비와 홍보비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는 구 대표 말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꾸 한다"며 "처음 인수할 때부터 이런식으로 돌려막기 못하면 부도난다는 것 인식했을 것 아닌가. 상품권 할인 이벤트 한 이유가 뭔가, 새로운 대금 들어오지 않으면 부도날 것이란 것 알고 있지 않았나. 애초에 (두 기업) 인수가 잘못됐다. 소비자 기만해 판매대금이 많이 들어오면 (재무 상황이) 극복될 것이란 착각이 오늘 일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날 참석한 관계 당국도 문책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이날 전체회의에서 처음 공개된 티몬·위메프와 금감원이 각각 맺었던 경영개선협약(MOU)이 사실상 허울뿐이었음이 드러나자 여야 모두로부터 질책이 쏟아졌다.
날 공개된 MOU에는 △경영지도비율 개선 의무 △경영개선계획의 성실한 이행 및 이행실적 보고 △경영개선계획의 수정 △경영개선계획 불이행시 조치 △MOU 효력발생 및 유효기간 △경영지도비율 개선 목표치 등이 담겼다.
특히 티몬과 위메프는 매 분기마다 목표 유동성 비율을 제시했지만 결과는 그에 못미쳤던 것으로 파악됐다. 유동성 비율은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유동부채 대비 유동자산을 얼마나 보유했는지 나타내는 수치다. 티몬은 2022년 말까지 50% 이상 유동성 비율을 맞춘다고 했지만 최근 티몬 유동성 비율은 18.2%에 지나지 않았다. 재무 건전성 향상을 위해 티몬과 위메프는 500~1000억원에 이르는 신규 투자 유치도 내세웠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양사가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음에도 주의조치가 미흡했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 회사 측과 2차 MOU를 맺으면서 '사업자에게 미상환, 미정산 잔액 보호조치(신탁, 보증보험 등) 방법을 강구하고 노력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3년 내 비율 미준수시 분사를 유동하는 등으로 경영개선계획을 보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미정산잔액 보호조치는 수반되지 않았다.
김남근 민주당 의원은 이 대목을 들어 "이미 위험하다는 걸 그 때 금감원도 인지를 하고 있었기 때문 아닌가"라고 지적했고 이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예"라며 "관리가 필요한 것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고 했다.김 의원은 "그런데 (업체가) 이행을 안했다. 이행을 안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나"라며 "2년간 금감원이 미이행 조치에 대해 아무 조치를 안 취했다면 금감원도 상당히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했다.
유동수 민주당 의원도 티메프 누적 결손액이 상당했음을 들어 금융당국을 향해 "뭔 일을 했나"라며 "경영개선계획서, 이것 봤지만 장난하는 것이다. 집행기관에서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조치를 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성동 의원은 "MOU 내용 이행 상황을 확인하고 보고 받았나. 제대로 이행 안됐으면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아무런 조치를 안 취하지 않나"라고 질타했다.
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유동성 관리에 대한 문제점은 (금융당국도) 인식하고 있었다. 조금만 신경 썼으면 지금과 같은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생기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며 "당국의 무능이 낳은 참사"라고 했다.
7월 초 위메프에서 정산 지연이 발생했지만 당시 회사는 '전산상 오류에 의한 것'이란 취지로 해명했고 이 해명에 따라 금감원, 공정위 모두 기술적 문제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조승래 의원은 "시스템이나 기술적 문제 아니고 재무적 문제 아닌가. 당국이 속아 넘어간 게 첫 번째 문제"라고 했고 민병덕 민주당 의원도 공정위를 향해 "7월18일에 현장에 갔는데 공정위는 도대체 뭘 한 건가"라고 따져 물었다. 박상혁 민주당 의원도 "공정위는 이런 입장이 나온 후 현장 실사 등을 진행해 문제의 원인을 파악했나, 변명에 속아 많은 피해자가 양산됐으니 책임이 있다"고 했다.
김남근 민주당 의원은 큐텐이 적자 회사를 잇따라 사들이는데도 "공정위가 심사과정에서 경쟁제한성을 기계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봤다.
근본적으로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정산주기, 자율규제 영역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훈식 의원은 한기정 위원장에 "2023년 플랫폼 자율규제 방안 발표회에 참석하셨다. 당시 티몬도 참석했다. 티몬이 자율규제하기로 했던 내용은 대금 정산 주기 등을 이용 사업자가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소비자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한 연락망 구축 등이었다"며 "자율규제, 지금 제대로 됐나. 이게 정부가 원했던 방향인가. 자율규제는 제대로 된 정부시책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한 위원장은 "정산 주기와 관련 당사자 간의 계약을 통해 정하도록 명시하는 자율 규제 내용을 추진했다. 오픈마켓 사업자들이 다 그렇게 돼 있다"면서도 "이런 사태는 예상은 충분히 못했다는 말씀, 제도 미비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다. 또 정산 주기와 관련해 "법제화를 검토하겠다"고도 했다.
한편 이날 관계당국을 당혹스럽게 하는 일은 전체회의 중에도 벌어졌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회의에 들어오기 직전 자신이 직접 큐텐이 100% 지분을 가진 '인터파크커머스'에서 구매를 한 사실을 들어 "오늘 분명히 11시59분 결제한 내용이다. 3만1400원 보이시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여기서도 금융당국에 책임을 물어야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지금까지 피해는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추가 피해자는 막아야 하지 않나. 언론에 큐텐 계열사가 어딘지 다 나와있다. 지금 회의 직전까지도 이렇게 결제가 되는게 납득이 가나"라고 했다. 이어 "금융당국도 이것 면밀하게 확인하고 피해자 방지에 노력해 달라"고 했다.
티몬과 위메프는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중개업과 전가금융거래법상 전자지급결제대행업(PG)업을 영위하고 있다.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르면 대기업 유통사들은 정산주기가 40~60일로 규정돼 있지만 티메프와 같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중개 기업은 규제 대상에서 비켜나 있었다.
회사로 들어온 판매대금을 보호하는 장치도 없었다. 금융당국은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뒤늦게 '에스크로' 결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에스크로는 물품 계약 이행이 완료되기 전까지 고객에게 받은 돈을 은행 등 제3 금융기관에 보관하는 것을 뜻하며 PG 업자가 판매자 정산 용도로 유입된 자금을 정산에만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전자상거래업에는 판매자에 대한 정산주기와 판매대금 보관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며 "법 규정이 없기 때문에 저는 입법 미비라 보고 정산주기 40일~60일도 긴 것 같다. 이 부분도 한 번 입법을 추진해 보겠다"고 했다. 이어 "판매대금 유용을 막기 위해 에스크로 도입을 하는 것도 한번 (입법을) 추진해보겠다"고 했다.
김남근 의원은 "전자상거래법은 소비자들과 플랫폼 기업을 규율하는 것이지, 플랫폼 기업과 입점사간 규율은 아니다. 그 사이 불공정 행위 규율을 위해선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과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생각한다"고 했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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