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 불성실공시 폭증했는데…손 놓고 있는 거래소
거래소, 사전 파악 기능 없어.. 5년 지나 확인하기도
공시도 제대로 못하는데 운용사 숫자만 계속 늘어
자산운용사들이 투자회사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해 놓고도 제대로 공시하지 않아 한국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 통보를 받은 사례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한 해 평균 3건(2008년~2022년)에 불과하던 불성실공시는 지난해 12건에 이어 올해는 무려 27건으로 크게 늘었다. 불성실공시 건수는 곧 불성실공시 통보받은 자산운용사 숫자와 같은 의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부터 자산운용사들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운용사들은 기본적인 공시 기한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자산운용사의 불성실공시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한국거래소는 운용사들이 스스로 기한 내에 공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밝힌 뒤에야 불성실공시 내역을 파악하는 상황이다.의결권 행사내용, 이듬해 4월까지 공시해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제87조 8항)은 자산운용사 등 집합투자업자가 의결권을 행사한 경우 구체적인 행사내용을 공시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및 코스닥시장 공시규정도 직전 연도 4월 1일부터 1년 간 행사한 의결권 행사내용을 매년 4월 30일까지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운용사들은 1년치 의결권 행사내용을 모아서 이듬해 4월까지 공시해야 하는 것이다.
일반투자자 등 시장참여자들은 거래소가 운영하는 기업공시채널(KIND)에서 운용사들이 공시한 의결권 행사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 4월 30일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신한금융지주, SK하이닉스, 에코프로비엠 등 보유 종목별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여부를 상세히 공시했다. 공시 세부내용을 보면 지난 3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정기주총에 올라온 임원 퇴직금 지급규정 개정 안건에 대해 과도한 퇴직금 지급우려가 없다고 판단해 찬성했다고 이유를 적었다.
이처럼 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내역을 상세히 공시하도록 한 것은 투자자의 자산을 굴리는 운용사의 책임투자를 강화하고, 결과적으로 기업가치 제고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지난해부터 꾸준히 자산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를 강조해왔다.
올해 7월까지 불성실공시 운용사 무려 27곳
문제는 의결권 행사를 했음에도 이를 자본시장법과 유가증권시장 및 코스닥시장 공시규정에 맞춰 제때 공시를 하지 않는 운용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운용사들이 의결권 공시를 제때하지 않아 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 통보를 받은 것은 2008년부터다. 당시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 등 운용사와 보험회사 10곳이 거래소로부터 무더기 불성실공시 통보를 받았다. 모두 공시기한을 지키지 않은 것이 이유였다.
불성실공시 통보를 받은 운용사 등 집합투자업자는 2009년 5곳으로 줄었고 2010년 3건, 2011년 5건, 2012년 1건, 2013년 3건 수준을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2014년 금감원이 자산운용사의 적정공시 유도를 위해 지도공문을 발송한 이후로는 2017년까지 4년 동안 불성실공시 통보를 받은 자산운용사는 단 한곳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 금감원의 약효가 떨어진 것일까. 이후 2018년 불성실공시 통보를 받은 곳은 4곳으로 늘더니 지난해는 무려 12곳이 불성실공시 대상으로 이름을 올렸다. 올해는 특히 불성실공시 대상 운용사들이 더 크게 늘었다. 1월부터 7월까지 상반기에만 집합투자업자 27곳이 거래소부터 불성실공시 통보를 받았다. 27곳 중 1곳(AIA생명보험)을 제외한 26곳이 자산운용사다.5년전 의결권 미공시 내역 이제서야 파악
불성실공시 건수가 늘어난 것도 문제지만 거래소가 불성실공시 여부를 뒤 늦게 파악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도 있다. 즉 운용사가 과거에 의결권을 제때 공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래소에 알려야만 거래소도 해당 사실을 파악하고 불성실공시 통보를 할 수 있다.
실제 지난 25일 거래소가 공시한 지큐자산운용의 불성실공시를 보면, 이 운용사는 2019년 코스닥 상장사 머큐리 등 2개 종목에 대해 의결권 공시를 해야 했다. 하지만 지큐자산운용이 해당 의결권 공시를 올린 건 올해 2월 2일이다. 5년이 지나서야 의결권 공시를 한 것이다.
거래소는 지큐자산운용의 5년 전 의결권 미공시 내역에 대해 이제서야 불성실공시 통보를 했다. 지큐자산운용이 '셀프 고백'을 해야만 거래소도 불성실공시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집합투자업자들이 공시를 하면 공시 내용을 살펴보고 기한 내에 이루어졌는지를 파악하고 만약 기한 이후에 이루어진 공시는 모아서 불성실공시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거래소 관계자는 "공시 내용이 운용사 내부의 일이다 보니 저희가 일일이 압수수색하는 것처럼 미공시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2012년까지만 해도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공시는 사전공시 형태였다. 주주총회 5일 전에 의결권 행사 내용을 문서로 작성해 거래소에 신고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2013년 자산운용사의 업무 부담을 줄인다는 이유로 의결권 공시 기한을 사전에서 사후(주주총회일부터 5일 이내)로 변경했다. 이후 다시 금융당국은 1년 치 의결권 행사내역을 묶어 다음해 4월 30일까지 공시하는 것으로 제도를 더 완화했다.
공시도 제대로 못하는데 운용사는 매년 증가
규제를 풀 때는 규제를 받는 주체들이 법과 규정을 준수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어야 한다. 법과 규정을 준수할 수 있도록 자체적인 내부통제(인력 등)도 필수다.
하지만 최근 늘어나고 있는 불성실공시 건수를 보면 운용사들이 법과 규정을 준수할 수 있는 내부통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울러 운용사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공시규정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6년 165곳이었던 운용사 숫자는 2017년 215곳으로 늘었고 2020년에는 300곳을 넘었다. 이후에도 매년 꾸준히 자산운용사 숫자가 증가하면서 2022년 400곳 이상 늘었고 2023년 기준 470곳의 운용사가 영업을 하고 있다.
문제는 공시를 할만 큼의 인력이나 조직력을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자산운용업을 하는 곳들도 많다는 점이다.
거래소 역시 최근 증가하는 불성실공시 원인 중 하나로 늘어나는 운용사 숫자를 꼽았다.
거래소 관계자는 "자산운용사 숫자가 늘어나는 등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또 운용규모가 커져 의결권 공시 대상이 됐지만 이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인력이동 등으로 공시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보라 (bora5775@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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