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떨어진 롯데케미칼, 회사채 대신 기업어음으로 1년마다 ‘돌려막기’
단기신용은 A1 유지...1년 만기 CP 발행
“다른 계열사들 자금조달 전략도 바뀔 듯”
롯데케미칼의 자금 조달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돈을 빌릴 수 있는 회사채 대신 1년 만기의 기업어음(CP)을 활용해 회사 운영 자금을 융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채 신용등급 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채권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가 냉담해진 탓이다. 롯데케미칼은 그 대신 장기 신용등급 하락의 영향을 덜 받는 단기 자금 시장에서 돈을 끌어다 쓰고 있는데, 당분간 이런 전략을 유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최근 1000억원 규모 CP를 발행했다. 만기는 1년, 이자율은 연 3.48%로 책정됐다. CP는 기업이 단기간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증서를 의미한다. 담보나 보증 없이 오로지 기업의 신용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게 특징이다.
올해 들어 롯데케미칼은 주로 CP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지난 1월 2000억원의 CP를 발행한 데 이어 3월에도 1000억원어치를 추가로 발행했다. 6월 들어 1000억원을 발행해 한 차례 차환한 후, 이번에 1000억원을 더 발행했다. 아직 만기가 남은 CP만 총 4000억원어치다.
그간 롯데케미칼은 우수한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회사채를 찍어 운영자금을 조달해왔다. 롯데그룹은 계열사들의 회사채 발행 물량이 많아 주관사들 사이에서 ‘대어’로 꼽혔던 곳이다. 주력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은 지난해에만 총 7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찍었다. 그러나 올해는 단 한 건도 발행하지 못했고, 대신 CP로 돌아선 것이다.
롯데케미칼의 자금 조달 전략이 바뀐 배경에는 신용등급 전망 하향 조정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달 신용평가 3사는 롯데케미칼에 대해 신용등급 AA를 유지했지만, 등급 전망은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꿔 달았다. 실적 부진, 투자 부담 등으로 재무안정성이 저하됐고, 수익성 회복이 어려워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부정적’ 등급전망은 향후 회사채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장기 신용등급이 내려가 회사채의 유통 금리가 올라가면, 기존에 발행한 회사채의 시장가격도 떨어지게 된다. 보통 회사채 만기는 3년 이상으로, 회사채 투자자들은 발행사의 신용등급과 전망을 꼼꼼히 따진다. 이를 고려하면 등급전망이 ‘부정적’인 곳에 투자할 이유가 별로 없다.
롯데케미칼은 이런 점을 감안해 회사채 발행에 나서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회사채 시장에서 고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롯데건설(A+) 이달 회사채 1500억원의 발행하기 위한 수요예측에서 주문을 채우지 못했다. 롯데케미칼에 이어 등급전망 ‘부정적’을 단 롯데지주(AA-), 롯데렌탈(AA-), 롯데물산(AA-) 등도 올해 1분기까지만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CP는 롯데케미칼의 차선책이 됐지만, 회사 입장에선 만기가 빨리 도래한다는 악재가 생기게 됐다. 상환 시기가 3~5년에서 1년으로 짧아지고 있는 셈이다. 부채 상환 주기가 짧아질수록 회사 운영 계획을 장기적으로 세우기가 어렵다. 통상 차환을 위한 자금 조달은 신규 투자가 아닌 ‘돌려막기’로 해석돼 투자자들이 꺼리는 경향이 있다. 당장 빚을 갚더라도 향후 자금조달 난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
다만 롯데케미칼의 단기 신용등급은 최고 수준인 A1이어서 단기금융 시장에선 우호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CP 이자율은 기준금리(3.5%)보다 0.02%포인트 낮게 책정됐다. 단기물 금리가 장기물보다 낮다는 걸 감안해도, 상환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는 우려는 없는 셈이다.
롯데케미칼은 당분간 단기자금 시장을 자주 찾을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케미칼의 자금조달 계획에 따라 다른 계열사들도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며 “케미칼이 단기자금 시장에서 수천억원을 빌리고 있기에 다른 계열사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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