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싫어하는 덕질과 래퍼 영지의 '착한 잔소리'
학교 빠지고 공연장 찾을 만큼
‘덕질’에 빠졌다면 어떻게 해야
잔소리가 먼저 나올 것이 분명
하지만 덕질에는 장점도 있어
또래와 소통하고 성취감 느껴
아이를 믿고 멀리서 지켜봐야
스타를 잠깐 보기 위해 몇시간씩 기다리고 음반을 중복구매하는 청소년들. 소위 '덕질'을 하는 모습이다. 내 아이가 학교를 빠지고 공연장을 찾을 만큼 덕질에 빠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잔소리가 먼저 나올 게 분명하다. 하지만 덕질에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아이들은 덕질을 통해 또래와 소통하고,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 부모에게 필요한 내 아이 상담법, 이번엔 '청소년기 덕질의 의미'를 풀어봤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스타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며 "사랑한다"고 하는 청소년들을 영상으로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들은 스타의 출국길이나 방송국 출근길 등 짧은 시간 배웅을 위해 몇시간을 기다린다. 요즘 말로 '덕질'하는 모습이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극히 부정적일 수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청소년의 덕질은 또래와 소통할 때 주제가 되기도 하고 대면뿐만 아니라 SNS 상에서도 소속감·성취감을 갖게 한다. 같은 음반을 여러 장 구매하고 같은 공연을 n차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팬덤 내부에서 인정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몇몇은 자신의 덕질로 성장하는 스타를 보며 대리충족을 느낀다. 또다른 몇몇은 현실에서의 다양한 스트레스와 외로움, 소외감 등을 잊기도 한다.
덕질 속엔 '사회화' 과정도 숨어 있다. 다른 스타의 비방이나 비교하지 않기, 스타를 더 가까이에서 보겠다고 달려들지 않기, 스타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집까지 찾아가는 일명 사생팬이 되지 않기, 공연 볼 때 다른 사람의 시야를 방해하거나 자리를 맡지 않기 등 나름의 규칙을 만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발 더 나아가 스타의 이름이나 팬덤명으로 기부하는 등 '착한 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덕질을 긍정적으로 보는 10대는 숱하다. 스마트MZ연구소(스마트에프앤디)가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팬덤문화 인식(2024년)'을 조사한 결과를 보자. 10대 청소년의 84.8%는 "팬덤문화(덕질)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팬덤문화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일상을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31.9%)"를 꼽았다. "나만의 취향이 생긴다(27.0%)" "삶의 목표가 생기고, 동기부여가 된다(19.4%)" 등의 답변도 있었다. 물론 순기능만큼이나 부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덕질을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팬덤에서 인정받기 위해 음반을 중복구매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돈의 문제만은 아니다. 돈이 없어서 음반을 많이 사지 못하면 소외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부모와 갈등을 빚는 친구들도 있다. 필자와 상담할 때에도 굿즈 등의 구매를 막는 부모님들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학업에 전념할 시간을 빼앗길 가능성도 높다. 스타의 일정을 쫓아가려면 아무래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보니 자신들의 일상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영상이 최근 유튜브에 올라왔다. 그 장면을 짤막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래퍼 영지가 공연장에서 학생 팬이 남긴 쪽지를 보고 나눈 대화 내용이다.
팬(쪽지 내용): "언니 보려고 학교 뺐어요."
영지: "학교 뺀 애들 당장 나가… 뭐가 자랑이라고 플래카드까지 들고 와서… 여러분 학교는 절대 빼면 안 돼… 알겠죠? 조퇴도 예외 없어… 학교 빠지지 마."
영지의 공연시간은 오후였다. 하지만 몇몇 학생은 조금이라도 스타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학교를 빠지고 공연장을 찾았고, 이를 영지가 재치 있게 꼬집은 거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처럼 덕질은 일정대로 보내야 할 일상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부모로선 학교까지 빠져가며 덕질을 하는 자녀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녀를 이해하기보단 통제하거나 제어하려고 한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그런 데만 쫓아다녀서 어떻게 하니"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일도 잦아진다.
하지만 덕질은 어쩌면 '또래 문화'일 수 있다. 이름만 바뀌었지 지금 기성세대도 '덕질 아닌 덕질'을 했을 거다. 청소년기 자녀를 둔 40~50대 부모세대는 과거 'X세대'라 불리며 서태지나 HOT를 덕질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그 시절 부모로부터 똑같은 꾸지람을 들은 이들도 있을 거다.
그런데 어떤가. 대부분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열광하던 시기를 지나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필자는 자녀의 덕질을 조금만 너그럽게 바라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아이들 역시 덕질의 역기능을 잘 알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팬덤문화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팬덤문화가 품은 위험성도 잘 인지하고 있었다. 팬덤문화의 단점으로 응답자의 37.8%는 "과도한 지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35.4%는 "지나친 몰입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위험요인으로 꼽았다.
이럴 때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을 믿어주는 거다. 아이들도 과도한 덕질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만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한발짝 멀리서 지켜봐주자. 다만 과소비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경제교육'은 필요하다.
정해진 용돈의 일정 비중 이상은 사용하지 않도록 약속하는 등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선 사회의 노력도 필요하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상술로 악용해선 안 된다.
이쯤에서 필자가 상담에서 만난 청소년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덕질에 빠져 있는 A군은 필자에게 이렇게 털어놨다. "공부를 못해서 학교에 가면 낙오자가 된 기분이 들었어요. 아이들은 삼삼오오 행복해 보이기만 했죠. 무리에 끼지도 못하고 바보가 된 것 같아 너무 괴로웠는데 덕질을 시작하면서 관심사가 같은 친구들이 생겼어요.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아요."
A군은 덕질에서 삶의 희망을 찾고 있었다. 어른들이 눈여겨봐야 할 건 덕질과 같은 표면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 속에 숨은 아이의 마음이다. 언제나 그렇다.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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