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에서 길거리 개 이제 못 보나…보호소·안락사법 두고 ‘시끌’

김서영 기자 2024. 7. 31. 13: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지난 23일(현지시간) 거리에서 떠돌이 개를 없애는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려, 한 개가 ‘법안을 철회하라’는 문구를 목에 두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튀르키예에서 거리의 떠돌이 개를 없애려는 법안이 통과돼 비판을 받고 있다. 거리에서 개의 위협을 줄이려는 취지로 도입됐으나 결국 개를 살처분하는 방식으로 흐르리란 우려가 나온다.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가디언에 따르면, 튀르키예 의회는 이날 거리에서 떠돌이 개를 없애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지방 정부가 떠돌이 개를 보호소에 수용하고, 중성화 수술을 하고, 예방 접종을 해서 입양시키도록 규정한다. 또한 말기 질환을 앓고 있거나 사람의 건강에 위협적인 개는 안락사할 수 있다.

여당 정의개발당(AKP) 주도로 발의된 이 법안은 찬성 275표, 반대 224표로 의회 문턱을 넘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법안 서명을 앞두고 “야당의 도발과 거짓말에 기반한 캠페인에도 국회는 다시 한번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감사를 표했다.

야당과 시민사회에선 비판이 터져나왔다. 비판의 골자는 이 법이 결국 ‘안락사법’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법안은 모든 지방 정부가 연간 예산의 최소 0.3%를 동물 재활이나 보호소 건립 또는 확충에 지출하도록 규정했지만,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방 정부가 이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튀르키예에는 322개 동물보호소가 있어 약 10만마리를 수용할 수 있다. 이는 약 400만마리로 추정되는 전체 떠돌이 개 규모에 크게 못 미친다.

이에 튀르키예에선 지난 수개월 동안 이 법안 추진을 둘러싸고 시위와 항의가 잇따랐다. 수천명이 거리 시위를 벌였으며 “죽일 수 없다”, “법을 되찾자”는 구호를 외쳤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동물보호협회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법은 단기적으로는 수많은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과 죽음을 초래할 것이며 장기적 해결책은 제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물 권리 활동가들이 지난 2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떠돌이 개 방지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1 야당 공화인민당(CHP)의 외즈귀르 외젤 대표는 “이 법은 명백히 위헌이며 생명권을 보호하지 않는다”며 이 법률을 헌법재판소로 가져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더 많은 보호소 건설, 예방 접종, 중성화 및 입양의 측면에서는 (법이) 요구하는 것 이상을 할 것이지만 지방 정부가 가진 권한으로 이 부담을 완전히 지는 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공화인민당은 또한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면 공격적이지 않고 건강한 개체를 왜 붙잡아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 법을 위반하는 지방 정부의 장은 최대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어, 이 법이 야당 인사를 겨냥하는 데 활용되리란 의구심도 나온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튀르키예 정부는 이 법이 ‘학살법’이 아니라 ‘입양법’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일마즈 툰츠 법무장관은 지난주 “이유 없이 떠돌이 개를 죽이는 사람은 누구나 처벌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법을 찬성하는 측은 떠돌이 개가 인명피해와 사고를 초래한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거리 지키기 캠페인을 벌이는 한 협회에 따르면 2022년 이후 개에 의한 공격이나 교통사고로 75명 이상이 숨졌으며 그중 아동이 44명이다. 개 두 마리의 공격을 피하다 트럭에 치여 사망한 아동의 사례도 있다.

튀르키예에선 거리에 개나 고양이가 흔히 돌아다니며 주민들이 음식이나 물을 자연스럽게 제공한다. 로이터에 따르면, 한 여론조사에서 개를 보호소에 두는 것을 찬성한 의견은 80%였으며 죽이는 것을 찬성한 비율은 3% 미만에 불과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