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힘든 건 아무 것도 아냐,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김민기 '봉우리'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김민기(1951~2024) 선생님은 삶의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드문 분입니다. 본인 자체가 '역사의 기록'이 됐지만, '기록의 역사'가 되기를 끝내 거부하셨죠. 평생 '뒷것'을 자처했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유족도 김 선생님의 이름을 빌린 추모 공연·사업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학전 없는 김민기'를 폐관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개인적으로 이런 뜻을 간접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2021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전시 '김민기 아침이슬 50년'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요. 그 분 삶에 감화된 저는 제 딴엔 예의를 차린다며 제목을 정성껏 달았습니다. 그런데 김 선생님의 주변분이 조심스럽게 연락을 주셨어요. 김 선생님이 살아오신 삶의 결과 맞지 않는 제목 같다며, 고민 끝에 연락했다고요. 혹시나 제 기분이 상할까 정중히 말씀 주셨습니다. 아차 싶었죠. 자신을 낮춰온 김 선생님의 삶을 제가 멋대로 맥락 없이 과대 포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제목을 수정했습니다.
이미 수많은 부고, 추모 기사가 나온 가운데 또 이번 졸고를 보태는 이유는 이렇게 김 선생님에 대한 좀 더 개인적인 경험을 담아내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김 선생님은 스스로 상징이 되기를 지극히 꺼려하셨지만, 누구에게나 '각자의 김민기'가 있으니까요.
이미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취재하면서 느꼈던 여러 소회를 담은 글(전 '김민기 세대'도 '학전 세대'도 아닙니다)을 쓴 적이 있긴 합니다. 학전 개관 33주년 당일인 3월15일 폐관하기 전, 일종의 상여놀이인 '다시래기' 같았던 이곳의 장례 축제였죠.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정말 운이 좋게 2010년대 음악·공연 담당 기자를 하면서 학전과 간접 인연을 맺었습니다. 김광석 기일 즈음에 열렸던 '김광석 노래 부르기'(현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는 거의 매년 연초 제 중요한 취재 일정이었습니다. 대중음악만 담당한지 몇 년이 됐지만, 작년 12월31일 뮤지컬 '지하철 1호선' 학전 마지막 공연도 발 빠르게 예매해서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싱어송라이터 겸 음악감독 정재일의 진가를 처음 발견한 것도 학전 덕분이었습니다. 2004년 노래극 '공장의 불빛' 때부터 학전과 인연을 맺어온 그는 뮤지컬 '굿모닝 학교', 연극 '더 복서' 등의 음악을 맡아 우리 청소년 작품 음악의 수준을 끌어올렸습니다.
2018년 2월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렸던 '2018 학전 신년회'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취재였습니다. 이상적인 문화 공동체가 무너진 시대에 대학로에 그것에 가까운 극단이 있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간 '지하철 1호선'에 출연했던 배우들 중 60명이 단체로 자신을 소개하고 서로 추억을 나누는 장면은 그 자체로 또 다른 공연이었습니다. 평소 사진 찍기를 꺼려하는 김 선생님은 그날 후배, 제자들과 함께 기꺼이 사진을 찍었고 평소 보다 더 많이 더 크게 웃었습니다.
그날 신년회가 끝나고 참석자들의 손에는 김민기 1집부터 4집까지의 카세트테이프가 쥐어졌습니다. '창고 정리'라는 명목으로 김 선생님이 내놓은 것인데, 제 손에도 전달됐어요. 1993년 발매된 '김민기 전집'이었습니다. '아침이슬' '상록수' '친구' '봉우리' '날개만 있다면' 등 김민기가 그간 발표한 곡들이 총망라됐죠.
노래 부르는 걸 지극히 부끄러워하는 데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걸 싫어하는 김 선생님의 성향을 아는 이들에겐 이례적인 음반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학전 운영 자금을 위해 그가 이 음반 제작을 수락했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김민기 전집'은 현재 온라인 상에서 고가에 재판매되고 있지만 사실 함부로 값어치를 매길 순 없습니다.
김 선생님의 발인 전날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갔습니다. 취재 목적은 아니었고 오로지 조문을 위해서였습니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 첫날에 산 검정 학전 티셔츠를 입고 갔습니다. 김 선생님과 개인적 친분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그것이 예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인으로부터 빚어진 공적 영역이 것들이 제 사적 영역에 큰 의미로 남았습니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수많은 이슬 같은 질문이 맺혔습니다. 상업적인 대중문화 문법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김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하고 티도 내시지 않았습니다. 그의 주변을 맴돌았던 분들 모두 그랬습니다. 기억함으로써 김 선생님은 계속 사는 자가 됩니다.
김 선생님이 영면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학전 자리(현 아르코꿈밭극장)에선 '아침이슬' 합창이 울려퍼진 데 이어 마지막으로 김 선생님의 '아름다운 사람'이 가사 없이 흘렀습니다. 학전 무대에도 올랐던 색소포니스트 이인권이 배웅곡으로 연주했습니다.
지난해 말 두 번 이 곡을 듣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먼저 정재일이 그 해 12월1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연 콘서트 '리슨'의 앙코르에서 이 곡을 들려줬습니다. 그 날 객석엔 국내 싱어송라이터의 정전(正傳)이기도 한 김 선생님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샘플링한 김 선생님의 육성과 정재일의 피아노, 기타 라이브 연주가 결합됐습니다. 정재일의 공식 데뷔 팀인 밴드 '긱스'에 함께 몸 담았던 싱어송라이터 이적이 기타와 목소리로만 그에게 들려줬던 곡이죠. 이렇게 싱어송라이터 계보는 다른 형태와 색깔로 이어집니다. 정재일은 김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며 학전의 각종 공연에 음악으로 참여했습니다. 정재일이 들려준 '아름다운 사람'은 김민기, 학전에 대한 존중이었습니다. 관객들의 눈가에선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렸습니다.
같은 달 2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무대에 오른 재즈 보컬 나윤선도 김 선생님을 위해 '아름다운 사람'을 불렀습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이 세계적인 디바는 1994년 '지하철 1호선' 초연으로 데뷔를 했습니다. 이후 그녀가 재즈 공부를 위해 유럽으로 가면서 학전과 인연은 그게 다였지만 수구초심(首丘初心), 이후에도 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절대 잊지 않았죠. 특히 올해 3월11일 '학전, 어게인 콘서트' 때도 나윤선은 깜짝 등장해서 이 곡을 불렀습니다.
신비로운 오르골의 소리만 은은히 흐르는 가운데 나윤선의 순백 같은 새하얀 목소리가 김 선생님 그리고 관객들을 모두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부친상('한국 합창의 대부' 나영수 한양대 명예교수 별세)을 당해 막 장례를 치른 상태였는데도 부친상 언급은커녕 슬픈 기색 없이 무대에 올랐어요. 그날 공연 마지막에 배우들이 '지하철 1호선'의 넘버 '지하철을 타세요'를 합창할 때도 등장해 박수를 쳤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사람' 김 선생님의 쾌차를 빌었지만 고인은 '서러움 모두 버리고' 아침이슬처럼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셨습니다.
종종 우리는 죽음이 신화를 완성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김 선생님의 부고는 삶의 귀결이, 사람들이 손을 들어 가리키는 높고 뾰족한 '봉우리'에 올라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넌지시 알려줍니다. 우리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그저 오르면 된다는 걸 말이죠. 또 사실 높은 곳엔 봉우리가 없을지도 모르며,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여기일 수도 있다는 '뒷것의 미학'도요. 이게 제가 김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 중 하나입니다.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선생님 한숨 푹 주무십시오. 7월 중후반 내내 제 귀에 꽂혀 있던 '봉우리'라는 바람이 제 땀과 눈물을 식혀줬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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