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道 통행료 9년째 동결...부채 증가는 미래세대 부담” [헤경이 만난 사람-함진규 한국도로공사 사장]

2024. 7. 3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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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료 감면 국가 드물어...“요금 현실화해야”
전면차단 방식의 유지보수공사 확대 적용키로
휴게소 음식 원가 절감...알뜰간식·다양화 추진
건설업계 활성화 지원...해외사업보증·기술마켓
함진규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집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한 후 전국고속도로 노선도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전국에 촘촘히 깔린 도로망은 인체로 치면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국토의 대동맥인 고속도로는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묶으며 산업화의 원동력이 됐다. 우리나라 첫 고속도로 개통 50여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고속도로 건설에서 유지·보수와 내실 있는 운영으로 무게추가 옮겨진다. 하지만 물가안정 기조에 발목 잡혀 10년 가까이 통행료가 동결되고, 명절 통행료 면제 등으로 한국도로공사의 부채는 늘어만 가고 있다. 올해로 설립 55년차를 맞은 국내 유일의 고속도로 관리기관, 한국도로공사의 최대 난제다. 지난해 2월 취임한 함진규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만나 도로공사의 현안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도로공사업무지원센터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난 함진규 사장은 “통행료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물가관리 목표와 연관돼 이야기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문제”라며 “얼마를 올리든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영향을 미친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통행료는 ‘교통복지’의 연장선상이라고 강조했다.

정무적 판단에 따른 무조건적인 요금 동결 보다는 공사의 현실을 고려한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함 사장은 털어놨다. 도의원과 2선 국회의원 등 장장 25년에 걸친 의정활동 경력으로 도가 튼 정치셈법은 내려놓고, 공기업 수장으로서의 단호한 소신이다.

“물가, 인건비, 늘어나는 도로 노후화, 유지보수 등을 고려해 필요한 최소 한도를 올려왔습니다. 2015년에는 4.7%를 올렸고, 그전에도 3~4년에 한 번씩 조정할 때 4~5% 선에서 조정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 이후 현재까지 한번도 올리지 않아 굉장히 어렵습니다.”

도로공사는 타 공기업 대비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편이지만, 명절 기간 통행료 면제로 인한 출혈이 크다. 2023년도 기준 통행료 수입은 연 4조3000억원 수준인데, 감면 금액이 4900억원으로 연 수입의 10%를 넘을 정도다. 함 사장은 “이 같은 통행료 면제는 전 세계적으로 드문 독특한 제도로 일시에 없애자고는 할 수 없다”면서도 “이는 유지하되, 그런 부분은 통행료 현실화로 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고 되물었다.

국가 정책에 의해 추진 중인 통행료 감면 공익서비스비용(PSO)에 대한 보전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도로공사법에 보전 규정이 마련된 2009년 이후 전체 통행료 감면 규모는 4조원을 넘어, 총 부채의 12% 수준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공기업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경우 국가로부터 PSO를 보전받을 수 있는데, 도로공사에 대한 PSO 법 규정은 강행규정이 아닌 임의규정으로 돼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함 사장은 “임의규정이라 PSO 보전비용은 지원을 한 푼도 못 받았고, 명절 통행료도 면제되는데다 선투자금까지 들어가니 굉장히 버거운 현실”이라며 “도로공사의 부채는 가만히 있어도 내부적 요인으로 증가되는데, 국민 세금으로 이걸 충당하면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나 미래세대에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로공사의 최우선 과제인 재무역량 강화뿐만 아니라, 도로 안전 확보에도 그는 타협하지 않겠다고 했다. 함 사장은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라며 “신규 도로 건설에 맞먹는 리모델링, 유지보수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노후화된 시설물은 ‘파도처럼’밀려오고 있다. 오래된 교량은 50년 된 곳도 있는 데다 수십년 된 콘크리트, 아스팔트에 사람 몸이 노쇠하듯 도로도 빠르게 낡고 있다. 콘크리트는 내구연한이 30~35년, 아스팔트는 25년 정도 되는데 연한이 되면 결집도가 떨어져 도로 파임(포트홀)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 고속도로는 1990년대에 집중적으로 지어졌다. 공용년수 30년 이상 고속도로와 노후 구조물이 폭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그는 유지보수공사 방식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시도를 하고 있다. 기존에는 장기간에 걸쳐 부분적인 보수를 진행해 왔는데, ‘짧고 굵은’전면 차단 유지보수공사 방식을 확대 적용키로 했다. 도로공사는 작년 6월, 중부고속도로 남이JCT~오창JCT(남이 방향) 18km 구간을 이 같은 전면차단 방식으로 진행했다. 보통 72일 걸리는 공사를 단 5일 만에 끝냈다.

함 사장은 “처음에는 이용객 등이 불편해했지만 짧은 기간에 공사를 하는 게 오히려 양해를 구하기 쉬웠다”며 “노후화가 굉장히 심해지다 보니, 빠른 시일 내 계획대로 전면 재포장하듯 유지보수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지자체에서도 이용객 반발을 우려해 꺼려했지만, 닷새 만에 끝내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자 이제는 협조도 수월하다는 전언이다. 여기에 국민정서를 고려해 미리 대체노선을 안내하고, 5일간은 통행료를 감면하는 등 혜택도 주고 있다.

유지보수만큼 안전에 중요한 또다른 한 축은 운전자들의 주의다. 현재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는 지난해 기준 151명 수준으로 줄었지만, 운전자들의 노력으로 이를 더욱 줄일 수 있다는 게 함 사장의 생각이다.

함 사장은 현재 도로공사가 사고를 대비한 ‘비트박스’(비상등 켜고, 트렁크 열고, 밖으로 안전하게 대피, 스마트폰 신고) 캠페인 홍보도 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안전거리 확보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선진국처럼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운전해 사고를 줄이고, 이를 위해 2028년까지 교통사고 사망률이 낮은 톱5 국가라는 명확한 목표를 세워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가피하게 사고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선 ‘유인 드론’도입도 준비하고 있다. 사고 현장에 도로가 막힐 때는 환자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는데, 유인 드론을 활용해 의료진을 급히 현장으로 보내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하겠단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 만들고 있는 유인 드론 로드맵이 수립되는 대로 우선 시행,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인다는 복안이다.

통행량이 급증하는 휴가철을 맞은 가운데 고속도로 이용객의 즐거움인 ‘휴게소 음식’에 대한 고민도 크다. 휴게소를 통한 수익은 도공 통행료 수입의 5% 수준으로 크지는 않지만, 많은 이용객이 찾는 만큼 “서비스 질은 높이고 가격은 내려야 한다”는 소신이다. 우선 원가를 줄이기 위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협업해 식자재 공동구매를 추진하고, 호두과자나 소떡소떡 등 인기 간식류는 ‘알뜰간식’으로 지정해 2000~3500원 사이에서 중저가로 맛볼 수 있게 하고 있다. 나아가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휴게소가 생기면 다양한 외국 음식을 선보이는 등 차별화를 본격화 한다는 구상이다.

신규 고속도로를 개통해도 여전히 존재하는 상습 정체 구간은 현실을 고려한 해결방법을 모색한다. 절대적으로 도로 용량이 부족한 13개 구간은 용량 확대 사업을 추진하고, 나머지 구간은 통행방식 개선과 시설개량을 순차적으로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함 사장은 “도시의 교통총량을 계산하는 싱가포르와 같은 방식은 우리나라에 적용하기 힘들다”며 “신호체계를 정비하거나 어느 시간대에 이동해야 막히지 않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방식 등으로 교통 분산효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경기 악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큰 손’발주처이기도 한 도로공사의 역할도 강화한다. 지난해부터 기술형 입찰제도 개선에 나섰으며, 앞으로 해외사업 시에는 관련 기관과 손잡고 민간기업의 보증을 맡아 건설경기를 뒷받침한다. 또한 중소기업의 판로 개척을 돕기 위한 기술 마켓 등도 진행한다.

그는 정치인이 아닌 공기관장으로서 보낸 지난 1년 반은 일선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시간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지난 19~20대 국회에서 국토교통위원회 국감을 수행하며 교통 정책에 통달했지만, 실무는 또다른 영역이라고 그는 털어놨다. 함 사장은 장마철에는 비, 겨울에는 눈의 도로 관리를 위해 휴가철을 즐기지 못 하는 직원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통행의 편안함과 경제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보람 있는 회사가 도공”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0년 후의 도로공사’는 기술 격변기에 발맞춰 더욱 차별화된 고속도로 기술력을 선보이는 저력을 갖출 것이라고 기대했다. “4차산업혁명 등에 따른 격변기에 생각도 못하는 기술의 영역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늘 강조하는 것은 기존의 운영방식으로는 안 되고,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고속도로를 어떻게 효율적이고 스마트하게 운영할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 도로는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멀리 가고 있을 것입니다.” 정리=고은결·신혜원 기자

k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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