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다음에야 시작한다는 말
어떤 시작은 아주 나중에야 기억이 나곤 합니다. 긴 여정의 끝에 다다른 후에야 그 처음이 정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무렵 알아듣게 되는 말들이 있어요. 정확히 그 지점에서야 운명처럼 만나게 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에게 시간은 끝의 다음에 시작해. 다른 세계를 향한 소망, 구원받고픈 소망이야. 하지만 존재하지 않지.” 영화 <디베르티멘토>와 그 속에 나오는 거장 지휘자 첼리비다케가 하는 대사 앞에서 실감했어요. 나도 결코 짧지 않는 길을 걸어왔다는 걸요. 끝의 다음에 시작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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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면 어린 소녀 자후이가 자다 깨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거실로 갑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흑백 화면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첼리비다케를 비추고 있었죠. 그의 손짓을 따라하는 아이를 보고 아버지는 저 음악이 ‘볼레로'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아름답지 않냐고. 한 소녀가 음악이라는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자후이는 음악학교에서 비올라를 배우고 지휘자가 되기 위해 밤새 악보를 외는 열일곱 살의 열혈 음악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게도 그런 비슷한 기억이 있어요. 어느날 자다 깨어 눈을 떴는데 흑백 텔레비전 화면에서 노래를 부르는 한 무리의 아이들과 그들에게 커튼으로 옷을 해입힌 가정교사가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바로 내가 처음으로 영화라는 세계와 만난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 흑백 화면이 보여준 세계로 발을 내딛지는 못했고, 그냥 구경꾼으로 남았습니다. 예술가가 될 자질이란 바로 거기서 갈리는 거였어요. 자신이 물려받을 유산을 알아보고 그것이 속한 세계를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이들이 있지요. 그 세계에 자기가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있고, 그 계보에 자기 이름을 써넣을 차례가 올 거라는 걸 아는 것부터가 재능인 겁니다.
영화 <디베르티멘토>는 지난 여름 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1년이 다 지나서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네요. 여성영화제라는 타이틀 아래 본 영화여서 그랬을까요? 알제리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음악가로 자라난 자매들의 도전과 용기를 그려낸 영화라고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볼 때는 어쩐지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 관한 이야기로 읽혔어요.
후계자는 자기 삶을 바치겠다는 헌신의 맹세를 아버지에게 보여주기 위해 애씁니다. 후계자가 될 아들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아버지는 정말 그럴 만한 떡잎인가 하고 아들을 의심합니다. 넘겨줄듯 말듯 아들을 혼란에 빠트립니다. 꼭 이어받고 싶은데, 놓칠 것만 같은 불안에 시달리는 후계자를 보면서 아버지는 정작 급한 건 자신이면서도 줄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워요. 하지만 주변에서는 알지요. 저들의 관계는 마치 계주 시합 나온 선수들의 같은 거여서 우리는 그저 바통을 전해주고 전해받는 순간의 긴장을 즐기면 된다는 걸요. (실제로 영화 속 자매들의 남동생이 학교 체육대회에서 자기가 계주시합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자랑하는 대목이 있기도 합니다.)
자후이가 앞 세대의 음악적 바통을 전해받는 여정에서 우리는 앞 세대 아버지들이 저마다 힘자랑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운명에 굴복하지 말고 꿈을 향해 전진하라고 부추기는 아버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를 앗아가는 아버지(음악학교 교장), 십대 소녀가 알아듣기엔 모호한 말들로 버럭버럭 윽박지르며 채찍질하는 아버지(스승)가 일제히 자후이의 마음을 짓누르지요. 자후이는 이 아버지들에게서 상처 받고 분노하고 좌절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웨이트트레이닝 중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너무 똑똑하잖아요? 저는 몰랐거든요. 부모가 걱정을 하고(공부 좀 해라), 학교에서 무시당하고(이 정도 실력으로는 안 되는데), 스승에게 야단맞고(네 수준을 알겠구나) 할 때마다 그냥 거기서 주저앉았거든요. 그런 자극이 있을 때마다 자후이처럼 ‘왜 나를 몰라주지? 내가 잘할 수 있는데, 세상은 왜 나한테만 불공평한 거야?’ 스프링처럼 튕겨오르는 반응을 했어야 하는 건데 말이죠.
다른 예술장르들이 그렇듯 음악이라는 세계 역시 남성인 아버지에서 남성인 아들로 이어지는 계보가 주류를 이루어 왔지요. 20세기를 거치며 그 경계가 많이 흐려졌지만요. 자후이와 그녀의 쌍둥이 자매 페투마가 음악학교를 다니던 1995년만 해도 지휘는 남성의 일이라는 것이 통념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자후이는 유독 무거운 압력을 받아내야 했지요. 남자 연주자들은 “여자는 마에스트로 못 해"라며 비협조적으로 굴고, 교장 선생님은 현직 지휘자 아들인 남학생의 자리를 넘보지 말라는 식으로 선을 긋지요. 운명처럼 첼리비다케를 만났을 때, 그에게서 처음 들은 말도 “지휘는 여자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그녀들은 끈기가 없었다"고 덧붙임으로써 자후이가 투지를 갖고 덤비게 만들긴 했지만요.
어떤 고정관념도 그 어떤 완고한 벽도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은 없지요. 언제나 비집고 들어서서 무너뜨릴 틈은 있어요. 자후이와 페투마(실제 인물임)가 일생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클래식 음악이란 21세기를 사는 나에게도 들어갈 수 없는 성 같은 것이었어요. 그곳에 입장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죠. 악기와 교육에 드는 비용을 염려하지 않을 수준의 재력과 음악가의 요람이 될 만한 가정의 풍요로운 문화와 의심이라는 군더더기의 방해 없이 오롯이 전진할 수 있는 심플한 멘탈 같은 것이 있어야 해요. 그런 것이 갖추어진 아이들을 모아놓은 엘리트 음악학교를 거치고 여러 경쟁과 선발 무대에서 살아남은 다음에 최고 전성기 시절의 역량을 일생에 걸쳐 방어하며 성장하고 성숙해가야 하지요. 최고의 것을 최고에게 물려주고 계속 최고이기를 요구하는 것. 클래식 음악계의 이 엄격한 분위기에 매료되었으면서도 한편으론, ‘허술하고 우스꽝스러운 그들만의 리그’라는 냉소로 멀찍이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자후이는 그러지 않았어요. 스승이 알 수 없는 모호함으로 가리키는 방향이 어디인지, 과연 그 북극성이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혼란스럽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신에게 자꾸만 벽을 치고 나오는 세상이 무섭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음악을 해나가요. “네가 토스카니니야? 남 흉내는 그만 둬!”라는 스승의 호통에 눈물이 찔끔 났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자후이는 음악학교와 장애인 시설과 연습장을 오가는 분주한 길 위에서 서서히 깨달아요. 자후이가 학교에서 배운 선배 음악가들의 삶은 음악을 위한 것이었어요. 완전하게 음악에 헌신하는 삶을 요구받았죠. 하지만 자후이가 우리의 시대가 원하는 것은 그 반대라는 사실을 쌍둥이 동생 페투나가 말해줘요. 음악은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요.
자후이의 오케스트라에 딜런이라는 남학생이 있어요.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그 소리에 반해서 자후이가 누구한테 배웠냐고 물어보죠. 딜런은 아버지한테 배웠다고 했어요. 자후이는 선생님이 아버지인 거냐며 부럽다고 했지만 딜런은 고개를 저으며 아버지가 싫다고 해요. 자후이가 왜냐고 물으니 아버지가 사고 쳐서 교도소에 있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사고 치기 전에 자기 생각을 안 했다는 게 서운하다고요.
딜런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후이는 이 세계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새로 생각하게 된 것 같았어요. 세상은, 아버지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서운하게 하고 혼란에 빠트리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요. 완전한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완벽한 아버지란 없어요. 다만 우리는 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죠. 자후이가 친구들과 함께 만든 오케스트라 ‘디베르티멘토’가 교도소로 음악 연주봉사를 가요. 그때 딜런이 들려준 클라리넷 독주는 제 마음 속에서 언제든지 불러내면 연주되는 멜로디가 되었어요. 그런 한 순간을 간직할 수 있다면, 이 엉망진창인 세계의 폭염 속에서도 서늘한 교도소 연주회를 즐길 수가 있어요.
이미 이야기를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덧붙이고 싶은 게 방금 또 생각이 났어요. 파리 근교의 팡탱이라는 소도시에서 자라난 자후이가 팡탱 시장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달라고 설득할 때 했던 말이에요. 열일곱살 소녀가 늙은 시장을 제대로 가르치더라고요. 그녀는 어디서 어떻게 왔든지 일단 오케스트라에 들어오면,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고를 요구하는 것이 음악이라고 했어요. 음악은 세상을 바꾸지 않지만 음악을 하면 그 사람의 삶이 변화한다고요. 그러면서 자기 오케스트라에 대한 투자는 이 지역과 청소년을 위한 투자라고 말해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투자에 대해 수많은 말을 듣고 또 하기도 했지만 열일곱 살의 자후이처럼 확실하게 전해준 이는 처음이었어요. (세상은, 아버지들은, 아이들에게 마이크를 넘겨줘야 해요.)
그 순간에 자후이가 음악을 통해, 지휘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기억할 수 있었어요. 자후이는 자신이 머릿속으로 상상한 소리를 손끝에 실어 단원들에게 전달하면 그 순간의 마음에 따라 음악이 다르게 연주된다는 걸 경험했어요. 음악은 고독한 훈련이 필요하지만 그렇게 탁월해진 혼자들이 모여서 함께 무언가를 이루는 일이에요. 가장 멋지고 훌륭한 것을 정성껏 만들어서 가장 낮은 곳으로 흘려보내는 일이 예술이에요. 그게 바로 자후이의 꿈, 음악으로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일이죠. 그런 꿈을 더 굳건히 세우도록 단련시켜준 세상의 여러 아버지들의 얼굴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미소지을 수 있어요. 기악곡 형식을 지칭하는 디베르티멘토, 라는 말에는 ‘기분전환'이라는 뜻이 들어 있어요. 누구보다 많은 디베르티멘토 곡을 남긴 모차르트는 이걸 하이든에게서 배웠죠. 그는 하이든을 ‘파파 하이든'이라 불렀답니다.
동그란의 마음극장은?
어떤 영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습니다. 내 이야기가 왜 저기 들어있나 싶은,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잘 드러낸 것 같은, 친구에게 꼭 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은 그런 장면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영화칼럼니스트 ‘동그란’이 격주로 마음 속에서 재편집되는 대사, 기억의 영사기에서 반복되는 장면을 이야기합니다.
영화 칼럼니스트 이하영 ha02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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