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유희경의 시:선(詩:選)]

2024. 7. 3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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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다. 비. 들이친다. 휘몰아친다. 새. 호우. 너는 걸어갈 수 있나. 비가 내리니 순응하여서 내리듯 내리듯 있을 수 있나. 새가 날아다니나. 새가 내리듯 내리듯? 웅덩이가 생기면 네 모습이 비친다. 새가 그 속으로 들어간다.'

거세게 내리는 비만 망연히 바라보고 서 있는데, 지나가는 비일 터이니 조금만 기다려 보라며 국밥집 사장님은 믹스 커피를 한 잔 건네준다.

점심 장사를 망쳤다는 한탄 앞에서, 그래도 저는 소낙비가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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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다. 비. 들이친다. 휘몰아친다. 새. 호우. 너는 걸어갈 수 있나. 비가 내리니 순응하여서 내리듯 내리듯 있을 수 있나. 새가 날아다니나. 새가 내리듯 내리듯? 웅덩이가 생기면 네 모습이 비친다. 새가 그 속으로 들어간다.’

- 안태운 ‘호우 몸짓’(시집 ‘기억 몸짓’)

푹푹 찌는 더위에 따끈한 국밥이 떠오른다. 고작 날씨에 맞서는, 참으로 사소한 반골 기질인 셈인가. 멋쩍게 웃으며 그럼에도 국밥집으로 향한다.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쩌면 순순히 이치에 따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복과 낙지와 소고기를 한데 담아 푹 고았다는 국밥을 먹는다. 뚝배기 속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싹 비우고 일어서는데 창밖은 소낙비다. 분명 국밥집에 찾아들 때까지 쾌청한 날씨였다. 그러니 챙겨온 우산이 있을 리 없다. 거세게 내리는 비만 망연히 바라보고 서 있는데, 지나가는 비일 터이니 조금만 기다려 보라며 국밥집 사장님은 믹스 커피를 한 잔 건네준다. 급한 일도 없는 처지다. 게다가 창밖 비는 뜻밖에 흥미로운 볼거리를 안기기도 한다. 온갖 것이 떠올라 이런저런 상념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어릴 적 꼼짝없이 젖고 말았던 하굣길이나, 퇴근길 아버지를 마중하기 위해 여벌 우산을 끼고 걸었던 골목길이나,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읽으며 설?던 기억 같은 것을 아무렇게나 뒤적거린다. 널찍한 창문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달려가는 소년을 본다. 전력을 다해,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순식간에 달려 사라져버린 소년은 한 마리 새 같다. 나는 마치 어린 나를 잠시 만난 것 같다는 착각을 하고 만다.

 손에 든 커피 한 잔을 다 비우기도 전에, 해가 들더니 비가 그쳤다. 요즘 날씨가, 하고 식당 주인은 혀를 끌끌 찬다. 점심 장사를 망쳤다는 한탄 앞에서, 그래도 저는 소낙비가 좋네요. 여름다워 참 좋네요, 하고 말하지 못한다. 그저 감사했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을 뿐이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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