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용 일본도' 참변에도···클릭 한 번에 날 세울 수 있는 가검 구매
용도 외 사용 법률 위반···제재 어려워
날세울 수 있는 가검류, 구매 자유로워
서울 은평구 한 아파트에서 30대 남성이 일본도를 휘둘러 이웃 주민이 숨지는 참변이 발생한 가운데, 도검 관리 실태를 두고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다. ‘장식용’으로 신고한 도검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처벌을 받지만 ‘사후 대책’인 데다, 도검 소지 허가 없이 날을 세울 수 있는 가검류도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판매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31일 서울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9일 오후 11시 30분께 서울 은평구 소재 한 아파트 정문에서 30대 남성 A 씨가 휘두른 일본도에 같은 아파트 주민 40대 남성이 숨졌다. A 씨는 범행 이유에 대해 “(피해자가) 나를 미행하는 스파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살인 혐의로 A 씨를 긴급 체포해 조사 중이다.
A 씨가 휘두른 일본도는 날길이만 약 80㎝에 달하는 도검으로, 올 1월 도검 소지 목적을 ‘장식용’으로 기재해 경찰에 신고해 도검소지허가증을 발급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도검 소지 허가를 받은 사람은 허가받은 용도 외에는 도검을 사용할 수 없다. A 씨처럼 ‘장식용’으로 도검 소지를 허가받았을 경우 도검을 소유 중인 장소 외로 가지고 나갔다면 법률 위반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에도 경남 창원에서 장식용으로 소지 중이던 102㎝ 도검을 휘둘러 이웃을 협박한 사람이 재판에 넘겨져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문제는 용도 이외에 도검을 사용할 경우에 이를 사전 제재할 방도가 없다는 점이다. 총포화약법에는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명시되어 있지만, 과태료로 그치는 경우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도검 소지자가 단순히 관련 규정을 몰랐던 경우에는 과태료에 그친다. 다만 형사처벌 사안이 연루되면 형사처리도 가능하다”면서 “경찰에서는 도검 소지 허가 시에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경고하는데, 소지자가 변심해 사건이 일어나는 건 현 제도상으로 막을 수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해외 수입을 통해 반입되는 ‘가검류’ 관리 체계도 도마 위에 올랐다. 법률은 도검의 개념을 ‘칼날의 길이가 15㎝ 이상이거나 성질상 흉기로 쓰이는 것, 칼날 길이가 15㎝ 미만이라도 흉기로 사용될 위험성이 뚜렷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검처럼 ‘칼끝이 둥글고 날이 서있지 않아 흉기로 사용될 위험성이 없는’ 도검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관세청도 통관 과정에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 관세청 관계자는 “칼날이 15㎝ 이상이라는 총포화약법의 도검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가검 수입을 규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제는 칼날의 유무와 관계 없이 일부 가검은 구입 후 날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 유통 중인 도검은 크게 두 가지다. 알루미늄으로 제작돼 날을 세울 수 없는 가검은 위험성이 낮지만, 철 재질로 만들어진 가검은 연마 후 날을 세울 수 있어 사정이 다르다.
국내의 한 도검업체 관계자 B 씨는 “이렇게 제조된 가검은 경찰에 ‘날을 세우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고 인적사항을 표기한 후 제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쇼핑몰에 유통되는 해외 수입 상품들은 철로 된 가검이라도 규제 없이 자유롭게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판매글에는 “진검처럼 보여서 만족스럽다” “장난감 같은 관상용”이라는 수십 개의 리뷰가 달렸고, ‘품절 임박’이라고 표시되는 등 높은 인기를 보였다. 한 판매자는 탄소강으로 제작된 가검을 소개하면서 “장식용으로 날끝을 예리하지 않게 처리했다. 가검은 도검소지허가증이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유롭게 가검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도검업체에 “날을 세워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B 씨는 “가검의 날을 세우게 되면 도검 허가 대상이 된다는 점을 모르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귀띔했다.
박민주 기자 mj@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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