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포커스] 범죄에 쓰인 120cm 장검도 호신용·장식용…소지 허가받은 도검 8만개
길이 100cm 넘는 칼이 살인 등에 사용되는 사례 잇따라
”일정 기간마다 허가 갱신” “장검 별도 관리” 지적
30대 남성 A씨는 지난 29일 같은 아파트 주민에게 칼을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피해자는 ‘다발성 열상으로 인한 저혈압 쇼크’로 사망했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여러 차례 칼에 베이거나 찔리면서 피를 많이 흘려 숨졌다는 것이다.
A씨가 휘두른 칼은 보통 사람이 가정집에 두고 있다고 예상하기 어려운 흉기였다. 칼날 부분이 75㎝, 손잡이가 45㎝로 전체 길이 120㎝의 장검이었다. 살상용 무기라고 볼 수 있다. A씨는 지난 1월 호신용·장식용으로 도검 소지 허가를 받았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자신을 미행하는 스파이라고 생각해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지 허가받은 합법 도검 국내 8만개…살인 등 범죄에 쓰이기도
31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소지 허가를 받은 소지 허가를 받은 도검은 총 7만9183개(2020년 말 기준)로 집계됐다. 소지 허가를 받지 않은 도검도 있다.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불법무기 자진신고로 접수된 도검만 7598개였다.
국내에서 일정 크기 이상의 도검을 보유하려면 경찰 허가를 받아야 한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도검은 칼날의 길이가 15㎝ 이상인 칼·검·창·비수 등이다. 성질상 흉기로 쓰이는 것뿐 아니라 칼날의 길이가 15㎝ 미만이라도 흉기로 사용될 위험성이 뚜렷한 것도 포함한다.
도검 소지 허가는 주소지 관할 경찰서에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확인 후 발급된다. 신청서에는 신청인과 도검의 종류, 규격, 용도 등을 기재하게 돼 있다. 용도는 ‘수렵’, ‘검도수련’, ‘예식지휘’, ‘도살’, ‘호신장식’, ‘가보문화재’ 등이다.
도검은 소지 허가를 받았더라도 언제든지 범죄에 사용될 수 있다. 지난해 6월에는 경기 광주시 한 빌라 주차장에서 70대 남성이 주차 문제로 다투던 주민에게 길이 101㎝ 일본도를 휘둘러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도 운동 목적으로 일본도 소지 허가를 받았다. 2021년 9월에는 남편이 이혼 소송 중이던 아내를 일본도로 살해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 역시 소장용으로 일본도를 합법적으로 소지하고 있었다.
또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에서 도검을 가지고 다니다 경찰에 붙잡힌 사례도 있다. 지난 5월 한 남성이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역사에서 100㎝짜리 도검을 들고 다니다 경찰에 체포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는 운동 목적으로 도검 소지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테무 등 온라인에서 마구잡이 판매…규제 강화 목소리 나와
도검은 같은 법에 묶여 있는 총포와 비교하면 구매부터 소지 허가까지 절차가 수월한 편이다.
온라인에서는 일본도 등을 검색하면 도검 소지 허가만 받으면 즉시 배송해 주겠다는 판매 사이트들이 여럿 나온다. 가격대는 수십만원부터 수천만원으로 다양하다.
알리·테무 등 중국 쇼핑 플랫폼에서는 판매가 금지된 도검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들 플랫폼에서는 ‘전투 검’, ‘구운 칼날’ 등을 검색하면 도검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는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확산했다. 총포화약법에 따르면 총포·도검·화약류·분사기·전자충격기·석궁은 행상·노점이나 그밖에 옥외에서의 상행위, 인터넷 등을 이용한 전자상거래와 통신판매, 방문판매의 방법으로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도검은 소지 허가도 총포와 비교하면 까다로운 편이 아니다. 운전면허만 있으면 경찰서에 소지 허가 신청서를 작성하고 수수료 3000원을 내면 된다. 허가는 1주일 정도면 나온다고 한다. 총포는 신청인의 정신질환, 성격장애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서 발행한 신체검사서와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이 필요하다.
한 번 소지 허가를 받으면 사실상 영구 소지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총포는 3년마다 주기적으로 소지 허가를 갱신해야 하지만, 도검 소지는 이런 갱신 의무가 없다. 한 번만 허가 받으면 소지 허가 이후 정신장애, 범죄 경력 등이 생겨도 별도로 관리할 수 없는 것이다.
국회에서도 도검 소지 관리를 위한 입법을 추진했지만, 기간 만료로 폐기됐다. 지난해 8월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 등이 발의한 총포화약법 개정안은 도검, 분사기, 전자충격기, 석궁 소지 허가를 받은 사람이 허가받은 날부터 5년마다 이를 갱신해야 하는 의무를 도입하는 내용이었다. 흉기류 소지자를 주기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도였다.
한 경찰 관계자는 “평소 생각지 못한 어떤 도구도 살인 범죄 등에 사용되면 흉기로 볼 수 있다”라며 “일본도 같은 도검류는 더 꼼꼼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공공장소에서 흉기류를 소지한 것만으로도 처벌한다. 영국에서는 합법적인 권한이나 합리적인 사유 없이 공공장소에서 공격용 무기를 소지한 경우, 치안법원에서 6개월 이하의 징역형, 형사법원에서 4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미국 뉴욕주는 버튼을 누르면 칼날이 나오는 스위치 블레이드 같은 도검 종류도 규제 대상에 포함한다. 뉴욕에서 무기 소지 혐의로 처벌받으면 4급 무기 소지 범죄에 해당하며, A급 경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최대 1년 미만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른바 칼 덕후로 불리는 이들이 활동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장검의 길이별로 세분화해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도구(칼)는 잘못이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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