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기예프·정명훈이 선택한 피아니스트 임주희 “찬란한 과거보다 중요한 건 지금” [인터뷰]
9세에 ‘백야의 별’로 유럽 정식 데뷔
줄리어드 4년은 자기 객관화의 시간
“사람들 곁에 머문 조연 같은 음악 꿈꿔”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이야기를 풀어내듯 한 음 한 음의 순간을 소중히 적어 내려간다. 조금 속도를 늦춰 천천히, 지나온 길들을 돌아보며 새로운 시작을 향해 걸어간다. 늘 앙코르 곡으로 연주했던 슈베르트의 ‘즉흥곡 3번’. 임주희는 이 곡을 2년 만에 연 리사이틀의 시작과 끝에 연주했다. ‘수미쌍관(首尾雙關)’이랄까. 스물 네 살이 돼 피아노 앞에 앉은 그는 팔색조 배우처럼 변화무쌍했다. 한 사람의 시간 안에 쌓인 음악들이 총천연색 무지개처럼 드리워졌다. 관객들의 함성은 그치지 않았다.
“연기와 연주는 닮은 점이 많아요. 누구나 칠 수 있는 피아노라는 악기에 감정을 담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매개체 역할을 하니까요.“
지난 5월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학사를 마치고 돌아온 임주희(24)는 7월 한 달간 한국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 세 가지 정찬(한남동 사운즈 에스, 포니정홀, 예술의전당)을 준비했다. 주변에선 “정말 괜찮겠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각기 다른 공연장, 모두 다른 레퍼토리로 자신을 쏟아부은 무대였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임주희는 “지금은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때”라며 눈을 반짝였다.
2010년 아직 화려한 불빛이 꺼지지 않은 영국 런던의 바비칸 센터. 소녀 피아니스트 임주희의 기억 속에 세계적인 지휘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71)의 대기실은 유달리 컸다. 앙코르까지 마친 시간이 밤 11시. 뉴스에나 등장하는 정치인과 후원자들이 게르기예프와 인사를 나누기 위해 대기실에 몰려 있었다.
“자,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이제 피아노를 쳐봐라.”
생애 첫 오디션이었다. 임주희는 게르기예프가 시키는 모든 곡을 한 시간 넘게 연주했다. 오디션을 마치자 거장은 공표하듯 말했다. “이 아이는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처럼 (나를) 전율케 한다. 난 이제 이 아이와 연주하겠다” 그의 말은 천명과 같았다.
어린 소녀의 특출난 재능을 확인한 게르기예프는 속전속결이었다. 그 해 8월 독일 라인가우 페스티벌에서 유럽 첫 무대를 앞두고 있었던 임주희의 데뷔를 두 달 앞당겼다. 지금도 회자되는 임주희와 게르기예프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협연 무대인 러시아 ‘백야의 별 페스티벌’에서다. ‘소녀 피아니스트’의 이름이 세상에 나온 해로, 그 때 임주희의 나이는 아홉 살이었다.
누구보다 빨리 세상을 향해 걸어나왔다. ‘백야의 별’을 시작으로, 프랑스 앙시 페스티벌(2011),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게르기예프 지휘, 2012)와 한 무대에 섰고, 지휘자 정명훈(71)과는 2014년부터 17번이나 협연했다.
임주희의 이름 앞엔 언제나 ‘신동’, ‘천재’라는 수사가 따라온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 교육은 받아본 적도 없는 타고난 재능이다. 보통의 성인 여성보다도 한 마디 정도 작은 손은 소용돌이 치는 감정을 양념처럼 꺼내다가 화산처럼 폭발한다. 손을 쫙 폈을 때 엄지와 소지가 닿는 범위는 도에서 (높은) 레까지.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도에서 파까지’ 닿는 등 다른 동료 피아니스트보다 손이 작다.
피아노 앞에 처음 앉은 것은 30개월 때였다. 부모님이 피아노 학원을 했다. 세 살도 되지 않은 딸의 재능을 처음 발견한 건 어머니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음감 표현’에 있어 유독 빨랐다”는 것이 임주희가 이 길을 가게 된 이유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엔 홈스쿨링을 하며 피아노와 시간을 보냈다.
어린 날들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게르기예프와의 첫 협연 당시 연주하기로 한 곡은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카발레프스키(1904~1987) 협주곡 3번. ‘돌발 상황’이 생겼다. 백야의 별 페스티벌에서 협연이 예정됐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57)가 손을 다쳐 임주희는 그의 대타가 됐다. 당시 게르기예프는 “같은 곡을 하면 재미 없으니 ‘하이든 협주곡 디장조’도 연주하자”고 했다.
소녀는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담대했다. 도서관에 가서 악보를 복사해 이틀간 잠도 자지 않고 연습했다. 정작 본인은 “상황이 나를 담대하게 만들었을 뿐 원래 담대한 사람은 아니다”며 손사래를 친다. “어떤 상황이 와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어요.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힘들어지는 건 나니까요. 그러니 투정부리지 말자고 마음 먹어요.”
마침내 리허설 당일. 임주희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아이의 첫 ‘하이든 협주곡’이라는 점을 배려해 게르기예프와 오케스트라는 속도를 늦췄다. 그래서 그는 카덴차(악장이 끝나기 전 독주자가 연주하는 기교적이고 화려한 부분)에서 자신의 속도를 마음껏 보여줬다. 이 모습을 지켜본 거장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그는 임주희에게 “넌 이미 준비가 다 됐으니 나가 있으라”고 했다. 악단의 템포를 다시 맞추기 위해서였다.
소문은 빨랐다. 열 살 천재소녀의 이야기는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49)에게도 닿았다. 덕분에 임주희는 게르기예프의 무대 이후 바로 앙시 페스티벌 ‘마추예프와 친구들’에 출연하게 됐다. 그 때도 ‘돌발 상황’은 있었다. 연주가 예정됐던 베토벤 소나타 대신 현대음악 작곡가 카롤 베파(51)가 마추예프에게 헌정한 토카타(건반악기를 위한 즉흥풍의 악곡)의 초연을 맡긴 것이다.
“현대음악 악보를 생전 처음 봤는데 마디마다 박자가 바뀌면서 너무 어렵더라고요. 잠을 줄여가며 암보를 했어요.”
임주희의 당찬 모습은 베파의 마음도 훔쳤다. 베파는 당시 “영감이 떠올랐다”며 없던 스타카토를 추가하고 군데 군데 전개를 바꿨다. 이후 베파는 ‘임주희 에튀드’를 작곡해 선물했다. 3~4분 가량 이어지는 변화무쌍한 리듬의 곡이다. 통통 튀는 재기발랄함과 예측할 수 없어 더 알고 싶은 오묘한 매력이 영락없이 임주희를 닮았다.
동양인 여자 아이에게 세계 무대가 늘 친절했던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서양의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서먹한 분위기를 마주했고, 불편한 시선을 받았다. 그 모든 벽을 부순 건, 연주를 하는 순간이었다. ‘시선’ 속에서 성장한 임주희는 “그래서인지 나를 판단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지하는 센서가 예민해졌다”면서도 “그런 귀한 경험이 있어 오히려 감사하다”고 돌아본다.
이 같은 찬란했던 시간이 쌓여 지금의 임주희를 완성한다. 그는 깊이로 각인된 시간을 또렷이 기억하면서도 “내겐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워낙 어릴 때부터 활동을 하다 보니 누군가는 ‘넌 어릴 때가 최고의 커리어가 아니었냐’고 묻기도 해요. 예전엔 큰 무대를 많이 섰다는 것이 무척 좋았고, 감탄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게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오늘이에요. 우리가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지금 이 순간이요. 지금의 전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고, 노력하고 있어요.”
임주희는 코로나 학번이다. 20학번으로 줄리어드에 입학해 일 년간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고, 이듬해 미국으로 향했다. 난생 처음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서기를 시작한 때였다. 두려움은 있었지만, 걱정은 없었다. 그는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어딜 가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돌아본다.
학교 생활은 유별났다. 수업 과정이 예상보다 촘촘했던 탓이다. 그는 “속된 말로 굉장히 빡세다”며 “아카데미도 놓치고 싶지 않고, 그것 때문에 파아노에 방해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택한 건 잠을 줄인 것. ‘잠순이’인 그녀가 하루 평균 2~3시간 밖에 안잤으니, 그야말로 초(超) 강행군이었다. 줄리어드에서 는 것은 커피, 빠진 것은 살이라고 푸념한다. 실제로 그는 줄리어드에서 몸무게가 무려 6㎏이나 줄었다.
“좀 절박하게 생활했어요. 밥 먹을 시간이 아까워 톨 사이즈 우유 한 잔을 마시고 수업을 들은 뒤에 연습실로 갔어요. 지금의 이 시간이 언젠가 꽃을 피울 거라 생각하면서요.”
홈스쿨링을 하던 때는 해보지 못한 경험이다. 임주희는 “어릴 땐 피아노에만 매달리진 않았다”며 “하루에 여섯 시간 정도 연습을 했고, 다른 걸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부모님과 조조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사랑하게 됐고, 머릿속에 각인된 배우들의 얼굴을 그리며 일러스트레이터(월간 객석)로도 4년이나 활동했다. 학기 중엔 매달 중순 찾아오는 ‘마감의 압박’을 절감한다며 웃는다. 올해 안에 ‘최애’ K-팝 그룹인 에스파를 그리는 것도 목표다.
피아노에만 매몰되지 않았던 시간은 임주희의 다재다능함을 북돋았다. 그러면서도 스승과의 약속은 꼭 지켰다. 첫 선생님에게 “언제라도 쓸 수 있도록 머릿속에 콘체르초 20개를 늘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 지금도 그의 머릿속엔 쇼팽,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하이든, 슈망, 생상, 쇼스타코비치 등의 협주곡 20개가 채워져 있다. 그의 첫 스승은 장형준 예술의전당 사장이다.
4년의 학사 생활 동안 임주희가 깨우친 것은 ‘자기 객관화’다. 그날의 연주를 마치면 다른 사람의 것처럼 자기 연주를 분석했다. 냉정한 자기 평가는 결과로 돌아왔다. 1억원이 넘는 등록금의 부담을 떨치기 위해 나간 학내 콩쿠르에선 두 번이나 일등을 해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미국 국적인 아닌 외국인이 전액 장학금을 받은 건 임주희가 유일하다. 오는 9월부턴 줄리어드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한다. 그 곳에서 다시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일을 살아갈 생각이다.
피아니스트로서 바람이 있다면, 누군가와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음악을 매개로 감정을 연결하는 것. 임주희는 누군가의 곁에 가만히 자리하는 ‘조연 같은 음악’을 꿈꾼다. 그가 좋아하는 배우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처럼 말이다. 임주희는 ”감정을 보여주되 과하지 않고, 일상에 존재하는 사람인 것 같아 좋다”고 말한다.
“제 안의 넘치는 감정들을 모두 꺼내 누군가의 인생에 주인공처럼 들어가고 싶진 않아요. 누구나 자신의 삶에선 자기 인생이라는 책의 주인공이잖아요. 그 사람이 써내려 간 책의 일부가 된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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