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38만원 기본소득을 줬다…미국에서 3년 실험해보니[딥다이브]
돈이 많든 적든, 일을 하든 안 하든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basic income). 여러분은 어떤 입장인가요.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도 기본소득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한데요.
미국에서 기본소득과 관련해 3년에 걸쳐 진행된 대규모 실험의 결과가 최근 공개됐습니다. 기본소득 지지자인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지원한 오픈리서치(OpenResearch)의 연구인데요. 막연했던 기본소득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외인 점도, ‘역시 그럴 줄 알았다’할 부분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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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이 월 1000달러 지급
여기 미국 텍사스와 일리노이에 거주하는 21~40세의 미국인 3000명이 있습니다. 2019년 기준 가계소득이 연방 빈곤선의 300%(1인 가구 3만7370달러, 4인 가구 7만7250달러) 이내인 중·저소득층이죠. 비영리 연구기관인 오픈리서치는 이 중 1000명에게 매달 1000달러(약 138만원)를 조건 없이 현금으로 지급했습니다(실험군). 나머지 2000명엔 매달 50달러(약 7만원)를 나눠줬고요(대조군). 그렇게 3년(2020년 11월~2023년 10월) 동안 실험이 진행됐고, 그 결과가 이달부터 차례대로 발표됩니다. 자, 월 1000달러의 기본소득은 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꿨을까요.
이들은 식료품과 교통비에 쓰는 돈을 늘리고(월간 지출 총액이 평균 310달러 증가), 더 나은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놀라운 일 아니죠. 부모님이나 친구 같은 다른 사람에게 돈을 지원해 주는 비율이 크게 늘어난 점. 이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답을 먼저 얘기하자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 두 번째는 ‘네’입니다.
건강에 미치는 영향-없음
소득이 낮을수록 스트레스가 크다는 건 상식으로 통합니다. 그럼, 월 138만원의 소득이 갑자기 더 생기면 당연히 스트레스가 크게 줄어들어야 할 것만 같은데요. 연구 결과는 의외의 사실을 보여줍니다.
기본소득을 받기 시작한 첫해엔 실험참가자의 스트레스가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2번째 해부터 사라졌고요. 3년 차가 되자 오히려 실험군의 스트레스가 대조군보다 더 높게 나타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 실험의 결과는 현금지급으로 빈곤을 직접적으로 줄이는 것이 건강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시사합니다. 현금지급의 매력은 수혜자가 돈 쓸 곳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주는 겁니다. 이런 특성상 건강 개선에 있어서는 무딘 도구가 됩니다. 건강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책 입안자들은 (기본소득보다) 건강을 직접적으로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건강보험 자격 확대, 처방약 가격 인하 등-의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합니다.”
기본소득과 일을 덜 할 권리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일을 안 하고 게을러질 거란 겁니다. 자립을 중시하는 우파, 노동자연대를 강조하는 좌파 모두에서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인데요. 그래서 실험 결과는?
‘과연 기본소득이 근로시간을 얼마나 줄일까’만큼이나 중요한 건 ‘그럼 남는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입니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쪽에선 이 추가 시간 덕분에 사람들이 고용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죠. 교육에 투자하고, 기술을 향상시키고, 더 나은 직장을 구하거나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게 될 거란 겁니다.
하지만 실험에서 연구진은 기본소득으로 인해 일자리 질이나 인적 자본이 개선됐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20대와는 달리, 30대 실험 참가자에게선 교육이나 기술훈련을 추구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죠. ‘창업하고 싶다’는 응답이 약간 높아지긴 했지만, 실제 창업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줄어든 근로시간을 어디에 썼는지를 따져보면 여가(돌봄+휴식)입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자폐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대신 홈스쿨링을 한 엄마, 주 50시간이던 근무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아들과 낚시·사냥을 다니는 아빠 사례가 등장하죠.
기본소득 지지자의 기대엔 어긋나는 결과이지만, 자본주의에선 ‘돈=선택권’이란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로도 보입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완전 무조건적인 현금지급은 노동공급을 어느 정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추가적인 여가에 높은 가치를 두기 때문입니다. 노동시장 참여 감소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막대한 재원은 어떻게
결론적으로 기본소득의 마법 같은 효과는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현금을 주는 것은 그들의 삶을 일부 개선하고 약간의 휴식을 더해주는 건 분명하지만, 생각만큼 단기간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진 않았습니다. 아마도 훨씬 더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했을 기본소득 지지자들에겐 실망스러운 소식인데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데 어마어마한 돈이 들 건 뻔하죠. 만약 세금을 더 거두지 않고, 지금 예산 한도 내에서 전 국민 기본소득을 실시한다면 과연 1인당 최대 얼마나 돌아갈 수 있을까요. 다소 극단적인 가정을 가지고 계산해 봤습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공기업 등이 제공하는 모든 사회지출(현금·현물·세금감면을 통한 지출, 건강 관련은 제외)을 다 없애고 그 예산을 모조리 기본소득 지급에 사용하는 경우이죠. 그 수치는 OECD가 집계한 국민 1인당 연간 사회지출 금액(2019년)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너무 적다고요? 그래서 OECD는 2017년 연구에서 “기본소득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세수 변화가 필요하다. 그 결과 대부분 사람의 세금부담이 증가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또 기본소득이 빈곤을 줄이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지 못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죠. 가장 가난한 계층 입장에선 기본소득보다는 현재 방식의 복지 제도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이 세금 더 내라?
기본소득 재원과 관련한 좀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샘 올트먼이 2021년 3월 ‘모든 것에 대한 무어의 법칙’이란 글에서 밝힌 주장인데요. AI 기업과 토지 소유자에 세금을 매기는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AI 기업 시장가치의 2.5%, 사적으로 소유된 모든 토지 가치의 2.5%를 매년 세금으로 부과해 기금을 만들자는 거죠. 그리고 이 돈을 18세 이상의 모든 성인에게 매해 나눠주는 겁니다.
물론 시장 부침에 따라 연간 분배금은 오르락내리락하겠죠. 하지만 미국 경제의 탄탄한 성장세를 생각하면 10년 뒤엔 미국 성인 2억5000만명이 매년 1만3500달러(1869만원, 월 155만원꼴)를 받게 될 거라는 게 샘 올트먼의 추정치였습니다.
기업 부담을 늘려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시행한다는 이 아이디어가 과연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에서 통할 수 있을까요. 만약 현실화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기본소득제를 둘러싼 실험은 계속됩니다. By.딥다이브
기본소득제의 역사는 길게 잡으면 수백 년이나 됩니다. 그만큼 철학적으로나 정치경제학적으로나 꽤나 핫하고 논쟁적인 주제인데요. 여러 연구결과가 있지만, 가장 최근에 나온 따끈따끈한 보고서를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미국에서 3년간 진행된 월 1000달러 기본소득 실험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일단 기본소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용에 있어서는 근로시간과 근로소득을 모두 유의미하게 줄였습니다. 일자리의 질이 높아지거나, 창업이 늘어나는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현금지급 방식의 복지는 개인의 선택권을 키워줍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더 많은 휴식을 택했습니다. 대학 교육을 받으려는 청년층이나, 육아에 시간을 써야 하는 한부모 가정에서 근로시간 감소폭이 컸던 이유입니다.
-생각보다는 기본소득 도입의 효과가 미미해 보이는데요. 모든 국민에 도입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드는 기본소득제. 정말 도입할 수 있긴 할까요. 재원 마련과 관련한 파격적인 제안(대기업의 매출 3%를 과세)이 나오지만, 현실화될지는 두고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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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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