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은 현재와 미래세대 위한 것… 개혁엔 인내심 필요하다”[파워인터뷰]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내달발표
전문의·PA간호사 중심으로 운영
필수의료 환경 개선 위해서라도
전공의 돌아와서 머리 맞댔으면
획기적 투자로 지역의료 살릴것
네트워크 강화·필수의사제 도입
인터뷰 = 권도경 사회부 차장, 정리 = 유민우 기자
최근 보건복지부는 정부 부처 중에서 가장 현안이 많은 곳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끝난 후 의대 증원, 국민연금 개혁, 필수의료 붕괴 등 굵직한 의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코로나19 사태가 막바지였던 2022년 10월 조규홍 장관은 복지부 수장을 맡았다. 이후 헤쳐온 현안은 간호법, 비대면 진료, 미신고 출생 영유아 사건 등이다. 올 들어 조 장관은 27년 만에 의대 증원을 이끌어낸 데 이어 의료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1만여 명이 다섯 달 넘게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전공의들에게 복귀를 위한 면죄부를 주면서 시민사회 비판도 한몸에 받았다. 22대 국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국민연금 개혁도 논의된다. 조 장관이 주도하는 연금과 의료 개혁은 역대 정부가 손대기 싫어하던 국정 과제다. 개혁 당위성은 크지만, 어느 누구 하나 반길 리 없는 개혁안이라서다.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조 장관을 만나 개혁 청사진을 들어봤다. 그는 “이렇게 해도 반대, 저렇게 해도 반대하는 사안이 많아 인내심을 갖고 개혁을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의대증원이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우리 자신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의대 증원뿐만 아니라 의료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의료개혁을 두고 일각에서 ‘지금 우리 의료 수준이 세계 최고다’ ‘의대 증원을 하는 바람에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했다’ 등 비판도 나온다. 지금 의료개혁을 하지 않으면 몇 년 내 필수의료는 붕괴될 수 있다. 최근 몇 년 새 의료 수요는 폭증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고령화로 의료 수요도 늘었다. 의대 정원은 27년간 늘리지 못했는데 의사들은 나이 들어가고 있다. 열악한 근무 여건과 공정하지 못한 보상 탓에 필수의료 인력은 줄었다. 의료 공급이 한순간에 한계점에 부딪힐 수 있다는 의미다. 그대로 두면 의료 수급 불균형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절박한 심정으로 의료개혁에 나섰다. 의사들이 진료 현장에서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하려면 최소 10년이 필요하다. 의대 증원은 지금도 많이 늦었다.”
―전공의 없는 수련병원이 ‘뉴노멀’이 됐다. 전문의 중심 병원에 대한 로드맵은.
“환자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그간 전공의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던 구조를 고쳐야 한다. 이건 의대 증원과는 별개로 반드시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현재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이 논의되고 있다. 핵심은 상급종합병원이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진료에 집중하면서도 충분히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전문의, 진료지원(PA)간호사 등 숙련된 인원 중심으로 운영되게끔 지원할 것이다. 구체적인 인력 기준이나 원내 업무 분담 보상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이르면 다음 달 발표할 듯하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 지원율이 저조해 전공의 배출에 차질을 빚는다면 전문의 중심 병원 구축도 힘들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전문의가 되기 위해선 전공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전공의들 복귀가 늦어지면 전문의 배출에는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하는 것은 중증·응급 등 필수 의료 분야 수련을 받고도 이미 병원을 벗어난 전문의를 다시 유입시키고, 병원을 지키고 있는 전문의들 소진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아도 방향성을 갖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의료 행위를 독점한 의사의 집단행동을 막는 장치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는데.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한 반복적인 집단행동 탓에 환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그간 의료법 제59조에 따라 진료유지명령, 업무개시명령 등을 집행했다. 하지만 명령 발동부터 위반자에 대한 행정처분까지 최소 한 달에서 길면 넉 달 이상 걸리는 등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정부는 유사 입법례를 참고해 제도적 보완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의료계는 헌법상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조치라고 반대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 생명권이다. 이는 다른 기본권에 우선한다. 국민 생명을 보호하는 건 정부의 기본 의무다.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한 후 국회와 협의해 의사 집단행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겠다.”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와도 필수의료로 가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데.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은 의대 증원을 발표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의대 증원 때문만은 아니다.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 열악한 근무 여건, 왜곡된 보상 체계가 맞물린 현상인데 이를 같이 풀어가야 한다. 의대 정원만 늘린다고 의사 인력이 필수의료로 유입되는 건 아니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다. 의료개혁 과제가 같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엔 의료개혁특위 논의를 통해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의료분쟁 조정제도 개선 등 필수의료 지원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전공의가 복귀해 더 나은 여건에서 수련 받을 수 있도록 연속근무 단축 시범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전공의 수련에 대한 재정투자도 강화할 계획이다. 전공의들이 돌아와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논의 테이블에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금개혁, 정치 유불리 안 따져야… 지급보장·자동안정화 논의 필요”
연금개혁에 사회적 공감대 생겨
초당적 협력과 정부 지원 필요
인구변화 따라 유연히 급여지출
OECD 24개국 안정화장치 도입
해외선 수급연령 연장하는 추세
고용여건 등 고려해 신중히 접근
―의료계는 2025년 의대 증원을 되돌릴 수 없는데도 의대 증원 백지화 요구를 굽히지 않는데.
“입시 일정상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불가역적이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백지화를 복귀 조건으로 내세우는 건 ‘투쟁을 이어가면 지금이라도 변경 가능하다’란 잘못된 정보에 기인한 것 같아 안타깝다. 2026학년도 경우에도 의대 2000명 증원은 지난 5월 2일 대입전형 시행계획에서 이미 공표됐다. 다만 2026학년도 이후 의료계가 합리적인 단일안을 내놓는다면 언제라도 마음을 열고 논의할 수 있다고 수차례 말씀드렸다. 의료개혁특위가 의료 인력 수급 추계 방법, 절차 등 수급 추계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의료계가 의료개혁특위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한다면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을 논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필수의료 의사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비급여 진료와 실손보험 규제 등 개혁과제를 어떻게 이끌어갈 건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와 실손보험 규제는 정부보다 필수의료 의사들이 필요성을 더 많이 언급하고 있다. 그만큼 시급한 문제다. 우선 올해부터 전체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비급여 보고 제도’를 확대했다.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선 비급여 항목을 표준화한 후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비급여 진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미용 의료는 서비스 범위, 시술자 등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 연구 용역 등을 통해 종합적인 관리 체계를 만들 예정이다. 실손보험은 건강보험과 합리적으로 역할 분담이 되지 않아 국민 의료비 부담을 늘리고 있다. 실손보험 개선 방안은 금융위원회와 논의할 계획이다. 의료개혁 과제는 의료현장 의견을 듣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방향성이 나오기 힘들다. 의료계가 의료개혁특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수도권에 모든 의료 자원이 쏠린 상태에서 지역의료를 되살릴 복안은.
“지역의료 문제도 복합적이다. 의료인력 충원의 어려움, 인구감소로 인한 의료수요 급감, 의료전달 체계 왜곡으로 인한 수도권 쏠림 등이 얽혀있다. 의료개혁 과제에 포함된 지역의료 강화 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사는 곳에서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역 내 병·의원 간 역할을 재정립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할 예정이다. 둘째, 지역 병원에 우수인력이 종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여건을 조성할 계획이다. 정주지원과 연계한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필수의료특별회계·지역의료발전기금 신설 등 지역의료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필수·지역 의료를 되살리기 위해 10조 원을 투입한다는 정부 계획을 두고 건강보험 재정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필수·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한 투자 여력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건보 재정은 지난 2023년 말 28조 원 준비금을 보유한 안정적인 상황이다. 3년 연속 당기수지 흑자를 내면서 역대 최대치다. 투자 재원은 보험료 수입 증가, 재정 우선순위 조정, 지출 효율화 노력 등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 건보재정만 투자하면 건보료 인상 우려가 나올 수 있다. 이에 정부는 내년부터 국가 예산을 통해서 인프라 확충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르면 다음 달 구체적인 윤곽이 나올 것 같다. 국가 재정도 의료를 치안, 국방과 같은 반열에 놓고 필수의료특별회계·지역의료발전기금 신설을 통해 재정을 투입한다는 취지에서다. 단기적으로 국민 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지만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더 많은 지출이 발생할 수 있다.”
―국민연금 개혁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바람직하다고 보나.
“연금개혁 논의는 세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 지속가능성, 둘째 적절한 노후소득 보장, 셋째 세대 간 형평성이다.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국민연금제도는 솔직히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 연금개혁 공론화를 실시했다. 그 결과, 재정안정과 소득보장 강화가 모두 필요하다는 국민 여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이 공론화 안으로 채택됐다. 옛날과 달리 노후소득은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개인연금이나 기초연금과 연계된다. 결국 구조개혁을 논의해야 한다. 구조개혁을 한 번에 손댈 순 없다. 내는 돈(보험료율)과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결정하기 위해선 구조 개혁 청사진도 같이 논의해야 한다.”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 등 정치변수가 많아 연금개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많은데.
“연금제도는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 수급자는 682만 명, 가입자는 2238만 명으로 18세 이상 성인 10명 중 7명(65%)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역대 정부의 개혁 추진 경과나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복잡한 이해관계 탓에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연금개혁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서는 안 될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 연금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현재 연금개혁 필요성에 대해 우리 사회 내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판단된다. 국민도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선거 정국에서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회피하면 오히려 정치적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정부가 지원한다면 임기 내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22대 국회에서 정부안을 별도로 낼 계획은 있나.
“지난해 10월 국민연금 5차 종합운영계획을 내놓을 당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명시하지 않아 정부안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당시 5대 분야 15개 과제를 통해 정부 개혁 방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엔 소득보장, 세대 형평성 제고, 재정안정, 기금운용 개선, 다층 노후소득체계 정립 등에 대한 정부 고민이 담겼다. 22대 국회에서 정부안 제출 여부를 두고 굉장히 많이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여태껏 정부안을 제시해서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부가 어떤 안을 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연금 개혁은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여야 합의를 통해 입법으로 완성되는 만큼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충분히 공론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회 상임위원회에 가면 여야 모두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다. 22대 국회가 지속 가능한 연금개혁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계획이다.”
―구조 개혁 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은 어떻게 연계할 건가.
“우리 노후소득보장체계는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 등 다층적으로 구성돼 있다. 구조개혁은 이 같은 체계 내에서 제도 간 정합성을 높여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고 노인빈곤을 완화할 수 있는 설계가 필수적이다. 지금 노령연금 수급자가 약 500만 명인데 기초연금 수급자는 약 650만 명이다. 기초연금을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노인의 소득보장과 직결된다. 기초연금은 최근 노인 인구 증가, 소득수준 향상,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등을 고려해 지급대상, 급여 수준 등을 의논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국민연금 지급에 대한 의무를 법제화하자는 의견도 상당한데.
“국민연금은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사회보험이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연금은 반드시 지급된다는 뜻이다. 최근 기금소진 우려가 커지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노후에 연금을 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있는 점은 잘 알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제5차 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하면서, 국민 신뢰 확보를 위해 국가의 지급보장 근거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을 추진과제에 포함했다. 다만 지급보장 조항을 개정할 경우, 보험료율 인상 없이 국가 재정투입만으로 제도가 유지된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이에 연금개혁 동력이 약화될 우려도 상존한다. 국가 지급보장은 연금개혁과 함께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연금개혁이 매번 정치변수로 좌초됐는데 ‘자동안정화장치’ 도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4개국이 자동안정화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 여러 나라들도 저출생·고령화 등에 따라 보험료 인상 등 연금개혁을 추진해 왔다. 보험료 인상 여력이 없어 택한 방식이 자동안정화장치다. 이는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급여지출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보험료율 인상 여력이 아직 있는 편이다. 다만 우리도 인구구조가 악화돼 재정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는 만큼 자동안정화장치는 논의해 볼 만한 사안이다. 자동안정화장치는 연금 급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이 역시 22대 국회 연금개혁 과정에서 심도있게 논의됐으면 한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가입상한·수급개시 연령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는데.
“소득 크레바스(은퇴 후 소득 공백)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입상한 연령과 수급개시 연령을 일치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은 59세까지 보험료를 내야 하며, 연금은 63세부터 받을 수 있다. 수급개시 연령은 1998년 연금개혁으로 5년마다 1살씩 연장돼 2033년에는 65세부터 연금을 받는다. 다른 나라들은 기대여명이 늘어나자 수급개시 연령을 높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고령자 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수급개시 연령을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다만 연령 조정은 고령자 계속 고용 여건, 노후 소득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정년 연장은 고용노동부와 함께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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