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한줄씩 써내려가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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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랑구에 사는 40대 주부 정모 씨는 일상생활 중에 펜을 잡을 일이 없다.
김종필 일상이상 대표는 "2∼3년 사이 한국에서 필사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며 "이제는 작품 전체를 옮겨적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조금 더 가볍게 문장 위주로 적으려는 독자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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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안정 이유 취미로 늘면서
명작 속 문장 등 모은 책들 인기
과거 성경 등 ‘통필사’ 때와 달리
문장 짧고 감성적… SNS 인증도
글·사진=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서울시 중랑구에 사는 40대 주부 정모 씨는 일상생활 중에 펜을 잡을 일이 없다. 장을 보기 위한 메모는 스마트폰으로 하고 일정 관리를 비롯해 딸의 숙제 검사도 태블릿PC를 활용한다. 그런 정 씨가 유일하게 펜을 집어 들고 글씨를 쓰는 시간은 바로 취미인 ‘필사’를 할 때다. SNS를 통해 알게 된 필사의 매력에 빠진 그는 마음에 드는 책 속 문장을 정성스럽게 손으로 옮기고 사진을 찍어 보관한다. 정 씨는 “디지털 시대에 펜을 잡을 일이 적은데 필사를 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됐다”고 자신의 취미를 소개했다.
최근 필사는 우리 손에 전자기기 대신 펜을 쥐여주는 ‘휴식’에 가까운 유행이 되고 있다. 과거에 성경이나 고전을 중심으로 한 작품 전체를 그대로 옮겨적는 ‘통필사’가 많았다면 지금은 자신의 독서 활동을 인증하거나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취미에 가깝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서 활동을 필사를 통해 드러내는 ‘#필사스타그램’ 게시물은 인스타그램에만 11만 개에 달하고 젊은 이용자가 많은 틱톡에도 독서 관련 콘텐츠에는 필사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매일 직접 적은 좋은 문장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팔로어를 1만 명 이상 모으는 계정이 등장하는가 하면 최근 독서 모임 또한 단순히 함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매주 함께 글을 적는 ‘필사 모임’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출판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해외의 ‘북톡’과 같이 책과 함께 얼굴을 노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읽은 책의 문구를 따라 써서 독서를 보여주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며 “자신의 모습이 아닌 읽은 책을 알리고 만족감을 얻기 위해 ‘북스타그램’ 혹은 ‘필사스타그램’을 하는 것이 한국 독자들의 문화”라고 설명했다.
이에 발맞춰 최근 서점가에서도 ‘필사책’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트렌드에 따라서 책은 더 감성적이고 짧아졌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최근 출간된 유선경 작가의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위즈덤하우스)다. 예스24 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기도 한 책은 ‘어른의 어휘력’을 출간했던 저자가 다양한 문학작품 속 문장을 선별해 필사를 통해 어휘력을 늘릴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부터 박경리의 ‘토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까지 여러 명작의 문장이 수록돼 벌써부터 필사 인증샷이 SNS에 올라오고 있다.
일반 저서에 필사 코너를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창비에서 출간한 ‘교양 100그램’ 시리즈는 유시민, 김영란, 변영주, 정혜선 등 필자들의 글과 함께 책에 약 10페이지 분량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부록으로 추가했다. 이에 대해 김새롬 창비 편집자는 “다소 소극적이고 개인적인 독서라는 행위를 함께 공유하는 방법이 필사라고 생각한다”며 “젊은 독자들 사이에서 독서를 ‘디지털 디톡스’로 여기는 경우도 많은데 필사가 이러한 맥락과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일상이상 출판사는 오는 8월 ‘명저필사’ 시리즈를 출간할 예정이다. 약 100페이지 분량의 책으로 부처, 쇼펜하우어, 니체의 명문을 따라 쓸 수 있도록 구성했다. 김종필 일상이상 대표는 “2∼3년 사이 한국에서 필사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며 “이제는 작품 전체를 옮겨적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조금 더 가볍게 문장 위주로 적으려는 독자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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