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랄하지만 따뜻하게’…정태인 박사가 남긴 희망
“화려한 이론보다 보통 사람들이 맨눈으로 보는 세상에 더 믿음을 주었던 지식인, 학자보다는 현실을 바꿀 정책가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소개했던 지식인, 사람들은 그저 경제학자라고 부르지만 ‘현실이 필요로 하는 주제’라면 낯선 주제라도 기꺼이 새로 배우고 탐구하려 했던 진정한 연구자”.
지난 6월 27일 출간된 고 정태인 박사의 유고집 ‘정태인의 미래 키워드’를 엮은 김병권 전 정의정책연구소장이 책머리에서 정태인 박사를 회고한 문장이다. 정태인 박사는 2022년 10월, 2년여에 걸친 암 투병 끝에 62년의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발표문, 기고문, 강의 자료 등이 단행본 3권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기후위기와 생태전환, 사회적경제와 혁신, 동북아 질서와 한반도라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정태인 박사의 논문과 기고문, 지난해 10월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1주기 추모 학술포럼의 발표와 토론문을 담고 있다. ‘신랄하지만 따뜻하게 Ⅰ·Ⅱ’는 언론(한겨레신문, 한겨레21, 시사인, 경향)에 게재된 그의 칼럼들을 묶어낸 것으로, 생태위기·세계경제·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동북아 정세·남북관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유고집 출간을 계기로 그가 남긴 학문적·실천적 가치와 과제들을 돌아보는 자리도 마련됐다. 지난 26일 ‘정태인 함께 읽기’를 주제로 ‘고 정태인 추모 기념 글모음집 온라인 북토크(이하 북토크)’가 열렸다. 북토크는 진행자가 정태인 박사와 그의 책에 관해 이야기 손님 및 참가자들과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진행을 맡은 이수연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이사는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 반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리워하고 있다. 오늘이 ‘그리움을 다시 희망으로’ 만드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북토크의 시작을 알렸다. 유고집의 엮은이로 함께 참여한 이수연 이사는 정태인 박사와 ‘협동의 경제학’을 함께 집필한 공동저자이며 “인생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정태인 박사님 덕분에 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 및 다원적 경제에 대한 희망과 꿈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는 글을 책의 날개에 남겼다.
이어 김병권 전 정의정책연구소장은 정태인 박사가 “기후 위기, 사회적 경제, 동북아 평화 문제 등 다양한 주제에 깊이 있는 통찰을 남겼다”며 유고집에 정리한 그의 학문적·실천적 유산을 설명했다. 김병권 소장은 정태인 박사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통합적 접근’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탄소세와 같은 경제적 도구를 활용하는 동시에 성장주의적이진 않고, 생태경제학에 근거한 탈성장을 모색하는 등 다각적 접근을 지지했다. 탄소세부터 산업정책까지 다양한 해법들을 고루 제안하며 기후 문제의 복합성을 이해하고자 했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정태인 박사의 관점도 주목받았다. 정태인 박사는 단순히 따뜻한 경제로서의 사회적 경제를 넘어 ‘혁신’의 원천으로서의 사회적 경제를 강조했다. 김병권 소장은 “정태인 박사가 공공 주도와 민간 주도라는 이분법적인 규정을 넘어 사회적 경제와 정부 간의 생산적 협력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지에 대한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며 정태인 박사가 제안한 오스트롬의 ‘공동생산·다중심성’ 등의 개념을 활용해 사회적 경제와 공공의 협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나갈 것을 제안했다. 그는 정태인 박사가 동북아 평화 문제에서도 “한국의 독특한 위치와 역할을 강조하며, 단순히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외교적 포지션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다”고 전했다.
정태인 박사의 학문적 업적 뿐만 아니라 인간적 면모도 주목받았다. 참여정부 국정홍보비서관을 역임했던 노혜경 시인은 “정태인 박사는 학자보다는 정책가이자 실천가에 가까운 사람”이라며 “냉소하거나 체념하는 법 없이 희망을 믿는 인간”이었음을 강조했다. 노혜경 시인은 정태인 박사가 어려운 시절을 겪을 때 함께한 기억을 나누며 그를 ‘찐친’으로 표현했다. 노 시인은 또한 정태인 박사에 대해 “그는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바탕으로 사회 문제를 바라봤다. 그는 그저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이었다”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회고했다.
정태인 박사의 유고집 출간을 도운 김태진 진인진 대표는 “정태인 박사의 연구와 실천은 늘 약자의 현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며 그의 학문적 업적과 실천적 면모를 강조했다. 한 참석자는 “정태인 박사님은 사람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항상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병권 소장은 정태인 박사의 유고집이 현재와 미래의 문제 해결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그를 단순한 회고의 대상으로 기억하기보다는, 우리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다시 소환해야 할 인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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