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에 사는 곰, 사람 공격했으니 사살?…이탈리아서 논란
동물보호단체·중앙정부 “곰 죽이는 건 해결책 아냐”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사람을 공격한 야생 불곰이 당국에 의해 사살돼 논란을 빚고 있다.
30일(현지시간) 현지 일간지 라레푸블리카에 따르면 이탈리아 트렌티노주 정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코드명 ‘KJ1’으로 불리는 불곰을 총으로 쏴 죽였다고 밝혔다.
KJ1은 지난 16일 숲길에서 조깅하던 43세 프랑스인 관광객을 공격해 팔과 다리를 다치게 한 약 22살 어미 곰이다. 주 정부는 “KJ1은 위험한 개체”라며 “2017년부터 지금까지 최소 7차례 사람과 맞닥뜨린 바 있다”고 설명했다.
소식이 알려진 직후 동물보호단체는 물론 중앙정부의 환경장관도 이 같은 대응을 비판하고 나섰다. 곰을 인적이 뜸한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등 대안이 있는데도 주 정부가 극단적인 조처를 했다는 지적이다.
질베르토 피케토 프라틴 환경·에너지안보부 장관은 “곰을 죽이는 게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자신의 견해를 마우리치오 푸가티 트렌티노 주지사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동물보호단체 국제동물보호기구(OIPA)는 이번 사건으로 KJ1의 어린 새끼 세 마리까지 생존을 위협받게 됐다고 비판했다. OIPA는 “아무리 주지사라도 동물에 대해서까지 전권을 갖는 것은 아니다”라며 “동물은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지각 있는 존재이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푸가티 주지사는 이전에도 두 차례 곰을 사살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린 적이 있어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다만 당시에는 동물보호단체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두 번의 행정명령은 모두 효력이 잠정 중지됐다.
그러나 KJ1는 행정명령이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사살됐다. 푸가티 주지사는 전날 밤늦게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이날 오전 바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에 동물보호단체들은 그가 법의 통제망을 벗어나기 위해 계획을 서둘러 실행하는 꼼수를 부렸다고 비판했다.
이탈리아 의회 산하 동물권·환경권 보호 위원회의 미켈라 비토리아 브람빌라 위원장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푸가티 주지사는 행정법원이 개입할 수 없는 밤에 KJ1을 사살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는 과거 곰 서식지였던 북부 산악 지대에서 무분별한 사냥으로 곰이 멸종하자 1999년부터 이웃 나라인 슬로베니아에서 불곰을 들여와 산악지대에 풀어놓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그러나 당초 계획한 것보다 개체수가 늘면서, 최근 몇 년 동안 곰이 사람을 공격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했다. 이에 푸가티 주지사는 곰의 수를 적절한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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