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잿빛 망토’ · 공포의 ‘푸른 안개’… ‘색’ 다른 셰익스피어 연극 2편

서종민 기자 2024. 7. 3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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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상·무대로 눈길… 연극 맥베스·햄릿
맥베스 의상 디자이너 김미정
피범벅 옷에 드러난 분열된 자아
모든 인물이 입은 치마도 포인트
햄릿 조명 디자이너 최보윤
물결 그림자에 투영된 고민·불안
죽음 맞이하는 장면 붉은색 사용

스코틀랜드 왕좌에 앉은 ‘맥베스’(황정민 분·왼쪽 사진 오른쪽)의 망토는 조명 각도에 따라 다른 ‘피 얼룩’ 무늬를 반사했다. 부왕 살해의 용의자를 만난 ‘햄릿’(이봉련 분·오른쪽 사진 왼쪽)의 뒤틀린 속내가 무대 벽면에 ‘물결 그림자’로 비쳤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비극을 무대에 올린 두 연극이 창의적 의상과 조명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사와 표정만으로는 객석에 전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챙기면서 ‘작품 해상도’를 한껏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담은 망토와 치마” = 샘컴퍼니 기획의 ‘맥베스’ 공연이 있는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지난 16일 오후 의상디자이너 김미정을 만났다. 권력욕에 사로잡혀 살인을 일삼는 맥베스에게 그는 잿빛 망토를 입혔다. 누아르 색감으로 무대 전체를 연출한 이 작품에서 피 또한 검은색이었고, 그가 디자인한 망토는 배우의 동선에 따라 검은 얼룩으로 뒤덮였다가 잿빛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는 “벨벳 소재로 새까만 부분을 만들었고, 거기다 ‘크랙’ 원단과 실크를 골라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깨진 유리의 균열(크랙) 무늬로, 빛을 받는 방향에 따라 변하는 색깔을 의도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늘 피를 흘렸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끔찍한 살인이 이어졌다고.” 검은 피범벅의 망토를 걸친 맥베스가 “뇌수가 터지면 사람이 죽는 거고 죽으면 다 그냥 끝”이라며 섬뜩한 대사를 이어갔다. 피를 끼얹은 왕좌에 앉아 있는 장면은 그 망토와 함께 맥베스의 분열된 자아를 극대화했다. 김미정은 “대본을 보며 구상하는 동안 맥베스가 왕이 되기 위한 욕망이 가장 크다고 느꼈다”고 돌이켰다. 비틀거리는 맥베스는 그가 왕이 되기 전부터 착용한 재킷의 좌우 기장이 맞지 않아 단추를 채울 수도 없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모든 인물이 치마를 입은 것도 감상 포인트다. 원작이 배경으로 삼은 스코틀랜드 의상 ‘킬트’를 고증한 면도 있지만, 가위로 수차례 자른 색종이처럼 치마마다 서로 다른 층이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길이도 인물마다 다르다. 김미정은 “욕망을 품고 내면이 틀어져 있는 인물이 맥베스 혼자겠나”라며 “인물 저마다의 분열돼 있는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와중에 나일론·레이온 등 스포츠 의류 소재를 활용해 2시간 내내 뛰어다니다시피 연기해야 하는 배우를 뒷받침했다. 공연은 8월 18일까지.

◇“뿌연 안개 속에서 일렁였다가 창백한 복수심으로” = 국립극단 기획 ‘햄릿’은 그 무대 바닥을 발목 깊이의 물로 채웠다. 배우가 그 위에서 움직이는 대로 물결이 쳤고, 그 위에서 수직으로 꽂는 조명에 의한 물결 그림자가 무대 벽면에 졌다. 그게 햄릿의 마음이었다. 이 장치가 특히 매력적인 것은 매일의 무대마다 그 물결 모양은 다를 수밖에 없고, 회차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연극의 본원적 특성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물과 빛이 만날 때 만들어지는 특성을 무대 장면에서 어떻게 쓸지 고심했다.” 이 작품의 조명디자이너 최보윤은 “일렁이는 햄릿의 머릿속”이라며 “또 안개 활용이 잦은 작품의 특성상 뿌옇고, 요동치는 내면을 객석으로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고 했다. 햄릿이 숙부 ‘클로디어스’(김수현 분)를 부왕 살인범으로 확신하고 복수를 결심하자, 좌우에 설치돼 있는 조명이 푸른빛을 쐈다. 최보윤은 “자기 욕망을 위해 타인을 해칠 수 있다는 마음, 그런데 내가 그렇게 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있기 때문”이라며 창백한 조명 의도를 전했다.

햄릿이 재상 ‘폴로니어스’(김용준 분)를 칼로 찌른 첫 살인에서 녹색 조명이 들어오는 것 또한 눈에 띈다. ‘핏기가 다 빠진, 피가 다 사라진 죽음’이라는 것이 최보윤의 표현이다. 그는 “다소 도식화를 해보면 녹색 계열은 ‘이미 죽었다’는 의미이고, 붉은 계열은 ‘죽어가고 있다는’ 현재 진행의 뜻이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레어티즈’(안창현 분),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성여진 분) 등이 원작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붉은 조명이 사용됐다. 이와 달리, 햄릿에게만은 백색 조명으로 죽음을 알린다. 그 조명은 작품 내내 가려져 있던 성벽을 다 드러내는데, 대체 무엇을 위한 비극적 죽음인가라는 질문을 객석에 던진다. 공연은 세종시 세종예술의전당에서 8월 9일부터 10일까지.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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