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꿈 이뤄주는 한나라당 후예들…‘좌파’ 타령부터 내던지라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2024. 7. 3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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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소수파 집권세력’ 전락한 보수, 최후 골든타임

● 선거 패배 직후에만 ‘반짝’ 성찰 논의… 진정성 無
● ‘양남’ 세력 전락, 철학·세력 모두 위기
● 중도 지향發 승리 → 극우 전환 → 이명박·박근혜 감옥行
● 정책도, 이미지도 나쁜데 ‘좌파’ 규탄 행태만…

4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총선 개표상황실에서 한동훈(가운데) 당시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 윤재옥(왼쪽) 당시 공동선대위원장 등이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뉴스1]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후 '보수의 위기' '보수 혁신' '보수의 재건' 등을 주제로 논의가 일고 있지만 그러한 것들이 과연 진정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에도 선거에서 패배한 후 비슷한 논의가 '반짝'하곤 그대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2020년 총선에서 패배한 후에도 그랬고,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지선)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한 후에도 그랬다. 물론 2017년 대선 후와 2016년 총선 후에는 그런 움직임이 없었지만 이는 2017년 대선은 어차피 패배가 예고된 선거였고, 2016년 총선은 박근혜 대통령 재임 중 3자 구도로 치러진 선거였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국민의힘, 미래통합당, 자유한국당, 새누리당 등 보수정당은 큰 선거에서 패배 후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선거 후 얼마 되지도 않아 대척점에 있는 민주당 및 진보세력과 '투쟁 모드'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예외라고 할 만한 경우는 2012년 총선·대선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2010년 지선 참패 후 심각한 위기를 겪었으나 2011년 말에 들어선 박근혜 비대위는 전통적 보수 노선에서 과감하게 탈피했다. 이 덕분에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보수, 어쩌다 '양남 정당' 됐나

2022년 대선과 지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한 데엔 부동산정책 실패와 세금 인상 등 문재인 정부의 실정이 큰 역할을 했다.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논란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문제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부각된 점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어렵게 쟁취한 2022년 보수의 승리는 올해 4월 총선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쯤 되면 '정치철학'으로서 보수는 물론 '정치세력'으로서 보수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우리에게 '보수'는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보수정당이라고 불러온 국민의힘이 어쩌다 '양남(영남·서울 강남) 정당'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지경에 이르렀는지 성찰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은 전형적 관치(官治)였으나 건강보험, 연금, 주택 공급 등 많은 분야에서 진보적 정책을 시행했다. 물론 박정희 정부를 진보 정권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인권을 제약하고 장기 집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전두환·노태우 정부를 거치는 동안 우리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으나 사회경제 구조는 큰 변화가 없었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 "민간 주도 경제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구조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경제위기를 맞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던 시기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이전 정부가 하지 못한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대중 정부가 취한 금융·노동 등 분야 개혁은 보수학자들이 주장하던 것이었다. 경제위기 극복과 구조개혁을 위해 이뤘던 국민적 합의는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중도 지향해 이긴 것 잊고 극우 행태로 몰락

남북 정상회담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보수·진보 논쟁을 가열시켰고, 2002년 대선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국토균형발전을 내걸고 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어 이슈를 선점한 반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이 문제를 쟁점으로 만든 자체를 비판하지 않고 "수도를 이전하면 서울 집값이 폭락한다"고 대응해 스스로 무능을 고백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대통령 당선에 성공한 노무현 후보는 그전까지는 금기(禁忌)로 여겨지던 제주 4·3사건, 친일 인사 등 과거사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후 정당 구조의 민주화, 상향식 공천 등 정치개혁을 추구했다. 균형발전을 내세우며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밀어붙였다. 한나라당의 무리한 탄핵 시도로 2004년 총선에서 압승, 국정 추진 동력까지 얻었으나 사립학교법 개정과 종부세 도입 등으로 민심을 잃고 2007년 대선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2017년 10월 1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왼쪽). 2018년 6월 20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중도 실용'을 내세워 정권을 이어 잡은 이명박 정부는 임기 초 발생한 촛불시위를 계기로 국정을 '강경 모드'로 전환했다. 여당이 된 한나라당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을 좌파로 단정했고, 공안 기관은 정권 비판자를 탄압했다.

이명박 정부의 무리한 드라이브는 한나라당이 2010년 지선에서 참패하며 막을 내렸다. 2011년 말 등판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경제민주화와 국민통합 등 보수정당에서 볼 수 없던 구호를 내걸고 2012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이어진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2007년 대선과 201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은 보수 간판을 내리고 승리했으나 정권을 창출한 후엔 '극우'라고 할 만한 노선을 지향했다. 이는 결국 두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명박 정부는 독선적으로 4대강 사업, 민간인 사찰 등을 감행해 자멸의 길을 갔다. 박근혜 정부는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국사 국정교과서 문제 등 정부가 나설 필요가 없는 문제에 집착하다가 몰락했다.

정책 차별성 無 + 이미지 추락

영국 마거릿 대처 정부와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정부와 같은 선진 보수 정부는 경쟁력 없는 산업을 버리고 규제를 혁파했다. 시장이 스스로 작용토록 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을 향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이런 개혁을 한 정부는 진보, IMF와 손잡은 김대중 정부다. 보수정권이라고 불리던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그런 개혁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지금도 국민의힘은 '노무현의 꿈'이던 당원 민주주의와 전화 여론조사를 통한 상향식 공천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다. 또 한동훈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4월 총선에서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후예들이 노무현의 꿈을 완성시키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이 포퓰리즘을 배척하고, 우리 사회의 항구적 가치를 지킨다는 보수정당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국민의힘은 선거 때 상대를 '좌파'로 규정한 채 공격한다. 스스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세력임을 자처하는 것은 좋지만 선거에서 판세를 좌우하는 중도성향 유권자들은 상대방을 좌파로 규탄하는 행태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책 차별성을 갖추는 데 실패하고 이미지는 하락한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긴 어렵다.
신동아 8월호 표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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