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경로당 농약’ 미스터리… 내부 갈등 탓? 외부의 소행?[Who, What, Why]

박천학 기자 2024. 7. 3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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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y - 봉화 살충제 범죄… 누가, 왜 저질렀나
이달 노인 4명 중태 상태 빠져
또다른 회원1명은 며칠뒤 사망
검출 농약성분 달라 의문 증폭
“시설 내 갈등·따돌림 있었다”
警, 56명 면담하며 진술 확보
내-외부 계획 범죄 가능성도
지난 17일 경북경찰청 감식반이 ‘농약 중독사건’이 발생한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4리 경로당에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봉화=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경북 봉화군에서 최근 발생한 ‘농약 중독사건’으로 온 동네가 한동안 불안감에 휩싸였다. 인구 2만9000명이 사는 주민 사이에선 대중이 모여 음식을 먹는 것을 꺼리는 현상도 빚어졌다. 봉화 주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이 사건 해결을 위해 경찰은 57명 규모의 전담 수사팀을 꾸렸지만, 발생 17일째인 31일까지도 수사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궁금증을 낳고 있다.

◇왜 발생했나 = 경북경찰청에 따르면 이 사건의 피해자는 총 5명으로 지난 15일 초복날 봉화읍 내성4리 경로당에서 먼저 불거졌다. 이날 식당에서 보양식을 먹고 경로당으로 이동해 냉장고 내 플라스틱 통(1ℓ)에 커피믹스 여러 개를 섞어 미리 타둔 커피를 나눠 마신 A(78)·B(65)·C(75)·D(69) 씨 등 할머니 4명이 15일과 16일 각각 심정지와 침 흘림, 근육 경직 증세 등을 보여 병원으로 이송됐다. 또 E(85) 할머니는 18일 같은 증세로 병원을 찾아 입원했다. 이들 5명의 위 세척액에서는 공통으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A 할머니 등 4명에게선 저독성으로 모기 등 해충 퇴치에 쓰이는 에토펜프록스와 토양 해충 방제에 사용되는 터부포스 성분이 나왔다. E 할머니에게선 이들 성분과 함께 살균제 성분도 검출됐다. 이날 현재 A·B·C 할머니는 중태에 빠졌다가 치료 후 퇴원했고 D 할머니는 여전히 위중한 상태다. E 할머니는 30일 끝내 숨졌다.

◇왜 늦게 피해자가 나왔나 = 경로당에서 함께 커피를 마신 뒤 잇따라 쓰러진 A∼D 할머니와 달리, 숨진 E 할머니는 이들보다 3일 뒤에 갑자기 같은 증상을 보였다. 그는 입원 당일 오전 노인 일자리 전담기관인 ‘봉화시니어클럽’에서 공공근로를 했으며 몸이 좋지 않아 조퇴하려다 참고 일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E 할머니는 또 A∼D 할머니와 함께 식당에서 보양식을 먹었지만, 경로당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는 주변 진술도 나왔다. 게다가 E 할머니 위 세척액에서 나온 농약 성분도 A∼D 할머니보다 더 다양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피해 양상이 달라 다른 경로로 음독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범행은 어떻게 이뤄졌나 = 사건 발생 당시 총 51명의 경로당 회원 중 41명이 인근 식당에서 보양식을 먹었다. 이후 A∼D 할머니가 잇따라 중태에 빠지면서 보양식에 살충제를 넣었을 것으로 의심됐다. 이들 4명은 식당에 늦게 도착해 맨 마지막에 식사했고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할머니가 식사 후 경로당에서 커피를 마신 것으로 확인되고 컵과 특정 용기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되면서 커피에 누군가 살충제를 넣었을 가능성으로 수사 방향이 전환됐다. 이런 가운데 E 할머니가 쓰러지면서 경찰 수사도 혼선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한 관계가 있었나 = 경찰은 주민 간 갈등에 초점을 두고 수사 중이다. 경찰은 경로당 회원들로부터 “개인 간 갈등과 함께 특정 인물을 따돌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E 할머니는 A∼D 할머니와 다른 이유에서 누군가 범행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경찰은 E 할머니를 제외한 A∼D 할머니 중 2명이 회장, 부회장 등 간부라는 점을 주목하고 이들을 먼저 범행 타깃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A∼E 할머니에게 공통으로 검출된 살충제 성분은 가루 형태로 특별한 냄새가 없고 커피와 비슷한 적갈색을 띠고 있는 것으로 국내에는 한 종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농약 성분을 잘 아는 이의 소행으로도 보인다. 경찰은 E 할머니에게서 나온 살균제 성분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E 할머니 사망 이후 사건은 어디로 흐르나 = 이에 따라 경찰은 경로당 내부 소행으로 보면서도 외부인의 범행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내·외부인이 짜고 저질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경찰은 퇴원한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대면 수사를 진행 중이며 사건 경위를 밝힐 일부 단서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경찰은 사건 발생 현장 주변 등 봉화 읍내 곳곳의 CCTV, 블랙박스 등 86개 자료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현장감식을 통해 옷가지 등 총 400점을 채취해 감정을 의뢰했고, 관련자 56명을 면담했다. 피해자와 일부 주민의 DNA도 검사 중이다. 경찰은 의뢰한 감정물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풀 일부 단서를 확인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E 할머니 사망이 수사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히 유의미한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사건이 미궁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다, 고등어탕, 소주에 이어 밥에도 농약 섞어 = 봉화 농약 사건에 앞서 2018년 4월엔 포항시에서 ‘농약 고등어탕 사건’, 2016년 3월에는 청송군에서 ‘농약 소주 사건’이 발생했다. 농약 테러로 가장 큰 사상자를 낸 것은 2015년 7월 상주시에서 발생한 ‘농약 사이다 사건’이다. 농약이 들어 있는 사이다를 마신 할머니 6명 가운데 2명이 숨지고 4명은 위중한 상태까지 갔다. 앞서 2012년 1월엔 전남 함평군에서 ‘농약 비빔밥 사건’, 이듬해 2월엔 충북 보은군에서 ‘농약 콩나물밥 사건’이 각각 발생했다.

◇농약의 범죄 활용 규제 못 하나 = 농약의 종류는 크게 살균제, 살충제, 제초제로 나뉜다. 또 농약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유해성에 따라 △맹독성 △고독성 △보통 독성 △저독성 등 4단계로 구분된다. 국내에서 맹독성은 30여 년 전 판매가 전면 금지돼 있다. 고독성은 규제 속에 일부 유통되지만, 일반 농가에는 10여 년 전 사용이 금지됐다. 현재 유통되는 것은 대부분 보통 독성과 저독성 농약이다. 특히 저독성 농약이더라도 생명에 치명적이지만 구매나 제품 보관을 규제하는 규정은 없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맹독성·고독성 농약은 10여 년 전 회수 캠페인을 벌여 농가에는 현재 이러한 제품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저독성과 보통 독성 농약도 유통업체 등에서 사용상 주의를 당부하지만, 농사를 짓기 위해 구매하고 보관하는 데 대해 제재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 전국 노인시설 매년 증가세… ‘공동체 갈등관리 프로그램’ 시급

작년 경로당 6만8792개 집계
“우울감 해소 등 정부 지원필요”

경북 봉화군에서 발생한 ‘농약 중독 사건’을 계기로 경로당에서의 노인 간 갈등 해소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공동생활을 하는 경로당이 급증하면서, 경로당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다툼이 농약 사건 같은 끔찍한 참변으로 번지는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나 각 지방자치단체가 경로당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노인들의 심리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31일 보건복지부와 각 지자체에 따르면 전국 경로당 수는 2019년 6만6737개에서 2021년 6만7211개, 2023년 6만8792개로 증가했다. 특히 농약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농촌의 고령층 비율은 전체 농촌 인구의 50%를 넘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농가 인구 비율은 지난 2020년 42.3%에서 2021년 46.8%, 2022년 49.8% 등으로 높아진 데 이어, 지난해에는 52.6%까지 올라갔다.

농촌의 경우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여가시설이 부족하다. 노인들은 경로당에 집단으로 모여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복지부와 지자체들은 이들을 위해 여가, 건강, 치매 예방, 유익한 정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또 경로당 회계 및 물품관리 교육도 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학생들 사이의 따돌림이나 갈등 같은 문제가 경로당 노인들 사이에서도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소한 문제가 말다툼으로 이어져 경로당 방문을 끊고 외톨이 생활을 하거나 특정 노인을 따돌리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주로 여가 프로그램 교육과 각종 정보 제공에 집중하면서 노인 인권 보호와 학대 예방 등과 관련한 상담도 하고 있다”며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 간 갈등을 해소하는 부분까지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다수를 향한 농촌 농약 사건은 서로 간 작은 감정싸움에서 살인 범죄로 비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노인들은 경로당에서 거의 온종일 머물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더욱 가까워진다”며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사소한 일에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다투거나 우울감이나 소외감 등 심리적 고통까지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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