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경제적 자유주의가 멈추는 곳 [세상읽기]
김현성 | 작가
종합부동산세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세금, 상속세 개편이 장장 25년 만에 예고됐다. 뼈대는 최고세율 인하와 공제 기준 확대라고 할 수 있겠다. 최고 세율은 현행 50%에서 40%로 10%포인트 인하되고, 현재 인당 5천만원인 자녀 공제는 인당 5억원으로 무려 10배가 확대된다. 정부 예측으로도 이번 상속세 개편으로 인한 세수 감소는 향후 2년간 4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번 세법 개정안의 목표 중 하나는 ‘경제 역동성 강화’인데, 세수 감소를 각오한 우직한 부자 감세 열차가 과연 경제 역동성 강화라는 목적지 근처까진 도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정부는 이를 두고 상속세가 중산층 세금이 됐다며 이번 세제 개편은 중산층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소위 ‘경제적 자유주의’를 외치며 상속세 완화, 길게는 폐지를 주장하던 이들이 최근 새롭게 들고나온 논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에서 매우 놀랍다. 상속세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일관되게 국가 권력의 사유재산 침해를 거론한다. 자신 재산을 자신의 혈연에게 물려주는데 왜 국가가 간섭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상속세 자체가 본질적으로 상속을 하는 자가 아닌 받는 자가 납부한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상속은 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부의 이전일지 모르지만, 받는 자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불로소득이며 혈연관계라는 선택 불가능한 ‘운’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상속세에 적대적인 이들의 논리는 부가 무상으로 이전됨에도 불구하고, 단지 혈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특별한 근거 없이 조세를 회피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를 마치 조세정의와 같은 것으로 주장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즉 자신의 혈연에 불로소득을 발생시켜 대가를 들이지 않고 현재의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일종의 사적 ‘감정’을 경제적 자유라는 이념으로 포장해 그것을 조세정의라는 가짜 상품으로 만들어 팔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 이득만을 추구하는 행위라며 비난을 받자 최근에는 저출산 기조를 활용한 새로운 논리를 창조했다. 국내, 특히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해 상속세 부담이 늘면서 중산층은 주택을 상속할 수 없고, 그 중산층의 자녀는 상승한 주택 가격 탓에 주거를 마련할 수 없어 저출산이 악화되므로 중산층의 세 부담을 줄여 저출산을 해결하자는 식의 주장이다. 하지만 실제로 중산층의 세 부담을 경감시킨다 하더라도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고연령 중산층 가정에서 과연 주택을 ‘상속’받아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청년이 몇명이나 될지는 아무도 실증적으로 살펴보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전인수식 논리라 할 수 있다.
물론 현행 상속세의 공제 및 과표 기준이 무려 25년 전의 것이라, 변화한 경제 환경에 맞춰 기준을 손볼 필요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세제의 기준을 손보려면 다른 세제와의 형평성 역시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상속세를 개편하면서 자녀 공제를 5억원까지 증액하게 되면, 어떤 이는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고 5억원까지 상속할 수 있게 된다. 반면 현행 근로소득세 체계에서 과표가 5억원인 노동자는 무려 42%의 세율을 적용받아야 한다. 불로소득엔 세금 한푼 내지 않게끔 만들어주는 세상에서 왜 피땀 흘려 거둔 노동소득은 절반 가까이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는지, 그 사이의 논리적 모순에 대해 지적하는 상속세 폐지론자는 아무도 없다.
모든 조세를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가장 약탈적인 조세 제도는 다름 아닌 부가가치세가 될 것이다. 그 어떤 지출을 하더라도 국가에서 꼬박꼬박 10%의 세금을 붙여, 서민이든 부자든 모두의 지갑을 조금씩 얇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부가가치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조세는 다소간의 예외 사항이 늘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원칙에 근거해 행해져야 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특정한 세금을 감면하려면 줄어드는 세수를 보충하면서 역진성을 최소화해야 하며, 어떤 조세 제도가 너무 낡아서 현실에 맞게 수정하려면 다른 조세 제도와의 형평성을 맞춰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 권력이 할 일이다. 혈연관계에서 발로되는 감성을 조세정의인 양 포장하는 시각에 휘둘릴 일이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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