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구영배는 이미 계획이 있었다

정혜인 2024. 7. 3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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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회생 신청하고 "사업 정상화 하겠다"
피해액 1조원 육박…자금 행방엔 '모르쇠'

구영배 큐텐 대표가 지난 29일 오전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이달 중순 티메프(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가 터지고 20여 일이 지나서였는데요. 구 대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와 함께 자신이 가진 큐텐 주식을 매각해서라도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구 대표의 사과가 있은지 불과 8시간 만에 티몬과 위메프는 돌연 기업회생을 신청했습니다. 기업회생 제도는 자체적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벗어날 수 없게 된 채무자의 회생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제도입니다. 사업을 재건하고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 최종적으로 채무를 갚을 수 있도록 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채무 상환이 중단된다는 점입니다. 기업의 회생이 목적이기 때문에 채무를 동결시킵니다. 아침에는 사재를 털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겠다더니, 오후가 되어서는 '지금은 빚을 갚을 수 없다'고 선언한 겁니다.

시간 끌기?

서울회생법원은 두 회사가 제출한 신청서를 검토한 후 계속기업가치를 산정해 한달 내에 신청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에 앞서 서울회생법원도 지난 30일 오전 티몬과 위메프에 대해 재산 보전 처분을 내렸습니다.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나기 전까지 채무자가 방만하게 사업의 경영을 하거나 재산을 도피·은닉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에 따라 채무자인 티몬과 위메프는 기업회생 여부가 결정날 때까지 채무를 변제하지 못합니다.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수 년에 걸쳐 채무 상환이 진행됩니다. 일부 채무는 탕감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티몬과 위메프가 시간을 끌기 위해 기업회생을 신청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당장 채무를 갚기 어려우니 기업회생 신청으로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구영배 큐텐 대표,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가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티몬, 위메프 대금 미정산 사태에 대한 위원들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물론 티몬과 위메프의 회생절차 개시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문부호가 붙습니다. 회생법원은 기업이 사업을 계속할 때의 가치가 현재 기업을 처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청산가치보다 높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회생 개시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티몬과 위메프의 회생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게다가 회생 절차 개시를 위해서는 채권단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판매자들이 여기에 동의할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당장의 생계가 걸려있는 판매자들이 수 년간 버티면서 채무 상환을 기다리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티몬과 위메프가 파산 절차를 밟게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회생 개시에 실패하면 두 회사는 파산 절차를 밟게 됩니다. 이 경우 자산을 팔아 빚을 갚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두 회사의 자산은 빚을 다 갚기엔 턱없이 모자랍니다. 또 담보를 제공한 채권자들이 먼저 돈을 돌려 받습니다. 판매자들에게까지 돈이 돌아올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경영 정상화

물론 티몬과 위메프는 회생을 신청한 이유에 대해 '경영 정상화'가 목적이라는 입장입니다. 회생 제도를 통해 "사업 정상화를 도모하고 궁극적으로는 채권자인 판매회원들과 소비자인 구매회원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티몬과 위메프가 경영 정상화를 내세우는 이유는 뭘까요.

티몬과 위메프가 지급하지 못한 판매대금과 환불액은 모두 빚입니다. 이 빚을 갚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재 티몬과 위메프는 사업 지속 가능성이 극히 낮아 외부 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모기업 큐텐에서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구영배 대표는 지난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현재 큐텐그룹을 통틀어 동원 가능한 자금은 800억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부 정산대금에 쓸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피해액은 1조원에 달할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수치입니다.

구 대표는 사태 해결을 위해 자신의 큐텐 지분이라도 매각하겠다고 하지만 이 주식 역시 현재는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습니다. 구 대표도 자신이 가진 지분의 가치가 예전에는 5000억원에 달했으나 현재는 이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직접 언급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티몬과 위메프가 매달릴 수 있는 가능성은 '사업 재개'뿐입니다. 사업을 다시 시작해야 돈이 들어오고, 이 돈으로 빚을 갚을 수 있겠죠.

이 때문에 티몬과 위메프는 기업회생 제도 내 자율 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도 신청했습니다. ARS는 기업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미루고 채무자와 채권자가 구조조정을 자율적으로 협상할 기회를 주는 제도입니다. 최대 3개월까지 회생절차 개시를 미룰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ARS 기간을 더 늘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 기간 외부 자금을 조달할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고, 기업의 영업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채권자와의 협상이 이뤄지면 회생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됩니다.

구영배 대표도 여전히 티몬과 위메프의 경영에 대한 뜻을 접지 않고 있습니다. 구 대표는 지난 29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더 높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은 솔직한 마음"이라고 언급한 대목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구 대표는 지난 30일 정무위원회에서도 경영 정상화 방안을 이미 마련했다고 여러 차례 언급하기도 했죠.

자금 유용 있었다

설사 티몬과 위메프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그 몫은 구 대표의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이 구 대표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구 대표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종합하면, 큐텐이 '위시'를 인수하는 데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대금이 사용됐다는 것이 사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큐텐은 지난 2월 1억7300만달러(약 2300억원)에 위시를 사들였는데요. 위시의 부채 등을 모두 상계해 실제로 지급한 현금은 2500만 달러, 한화로 약 400억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티몬과 위메프가 판매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대금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구 대표도 인정했습니다.

구영배 큐텐 대표가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티몬, 위메프 대금 미정산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물론 구 대표는 이 돈을 한달 내에 모두 상환했다고 강조했지만, 한 달간 티몬과 위메프의 자금을 유용한 '횡령'으로 볼 여지가 충분합니다. 게다가 티몬과 위메프에서 꺼내쓴 돈을 갚는 데는 위시의 자금을 사용하기까지 했습니다. 인수한 기업들의 자금을 '돌려막기' 하는 데 쓴 겁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티몬과 위메프의 재무를 '큐텐테크놀로지'에서 관리했기 때문입니다. 큐텐은 티몬과 위메프를 인수한 후 두 회사에 상품기획자(MD)와 마케팅 인력만 남긴 채 재무, IT 인력을 큐텐테크놀로지로 이관했습니다. 큐텐테크놀로지가 두 회사의 재무를 모두 관리했기 때문에 이 회사의 자금을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사라진 1조원 책임은 누가

구영배 대표는 큐텐테크놀로지 핑계를 대며 이런 대규모 정산대금 지연 가능성에 대해 몰랐다고 발뺌하고 있습니다. 구 대표뿐만 아니라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확인된 미정산 대금은 2134억원입니다. 정산기일이 다가오는 6,7월 대금과 환불액 등을 합치면 피해액이 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티몬과 위메프에 들어왔어야 하는 이 1조원의 행방은 현재 묘연합니다. 구 대표는 이 돈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티몬 환불을 위해 26일 새벽부터 서울 강남 사무실을 찾은 소비자들이 무더위 속 긴 줄을 서고 있다.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구 대표는 "새로운 산업에서 신규 사업자(엔트리 플레이어)가 새로운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전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해 '사기' 내지는 이상한 의도를 가졌던 것이라고 평가하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구 대표 말대로 이번 사태가 그가 고의로 벌인 것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룹의 경영인으로, 최대주주로서 '아무것도 몰랐다'며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구 대표는 스스로를 "무능한 경영인"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는 말은 '기만'입니다. 사태의 책임을 인정한다면 티몬과 위메프의 경영에서도 손을 떼야 할 겁니다. 구 대표가 진정으로 이번 사태의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지는 모습을 기대해보겠습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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